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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현실 속 더 글로리는 없다'…줄줄이 기소된 학폭 피해 부모들

최근 넷플릭스의 드라마 '더 글로리'의 두 번째 시즌이 공개되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단숨에 넷플릭스 1위 콘텐츠로 올라갔고, 여기에 담당 PD의 과거 학폭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여러 가지 이슈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물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할 수 없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 가해자를 벌하고, 피해자를 구제해야 하는 게 정답일 겁니다. 그런데 현장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의 어머니들과 관련한 실제 사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초등학교

8살 아들 친구에게 "너 신고!"…아동학대 무죄

먼저 인천으로 가보겠습니다. 한 어머니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의심한 8살 아들의 친구를 찾아가, 삿대질하며 고성을 질렀다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사건은 지난 2021년 인천의 한 초등학교 후문에서 발생했습니다. 문 앞에서 아들 친구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A 군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가 우리 아들을 손으로 툭툭 치고 놀린다던데 계속 지켜보고 있다"며 "한 번만 더 그러면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거야"라고 경고한 겁니다.

당시 학교에서 나온 A 군은 태권도 사범을 따라 친구들과 함께 줄을 서서 학원에 가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어머니는 이미 사건 발생 넉 달 전 아들로부터 "학교에서 (친구가) 돼지라고 부른다"는 말을 듣고 인천시 한 교육지원청에 A 군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결국 이 일에 대해 같은 해 12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A 군에게 삿대질하고 고성을 지른 행위가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는 거죠. 검찰은 벌금 30만 원에 약식 기소했지만, 어머니는 억울하다며 지난해 4월, 아예 정식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이 재판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결과는 무죄였습니다. 인천지방법원은 당시 행동이 부적절했지만, 정서적 학대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판결 이유에 대해 법원은 "피고인은 자녀가 A 군으로부터 이미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인식한 상태에서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런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 과정에서 욕설하거나 신체 접촉은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 어머니의 행위는 다소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런 행위가 정신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로서 A 군의 정신건강을 해칠 정도는 아니었고, 정서적 학대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식 재판으로 가지 않았다면 이 어머니는 유죄로 벌금을 냈겠죠. 결국 이렇게 무죄를 받았지만 2년의 세월 동안 겪은 스트레스와 소송 비용 등도 만만치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판결이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이번엔 비슷한 시기, 부산에서 발생한 사건을 살펴보시죠.
 

딸 학폭 가해자에 "괴롭히지 마!" 소리친 엄마…아동학대 "유죄"

지난 2021년 9월, 해당 사건 어머니는 중학생 딸이 울면서 집에 돌아오는 모습을 마주합니다. 딸은 같은 반 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해 우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에 화가 난 어머니는 가해 학생이 다니는 학원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수업 중이던 가해 학생을 불러내 소리쳤습니다. "내 딸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고 말도 걸지 말라 했지. 그동안 동네 친구라서 말로 넘어갔는데 이제는 참지 않을 거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또 수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갈 때도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마라. 내 딸에게 말도 걸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소리쳤습니다.

실제 이 학생은 지난 2021년 8월부터 10월까지 해당 어머니의 딸을 괴롭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서면 사과, 접촉 금지, 사회봉사 5시간 등의 조치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만 가해 학생은 피해 어머니의 위협에 대해 자기 부모에게 두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이 어머니의 행동에 위협을 느꼈고, 또 찾아올까 걱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결국 해당 어머니는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고,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판결을 한 부산지방법원은 벌금 100만 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범행 이후 피해자가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피고인이 또 찾아올까 걱정된다고 말한 점 등을 고려하면 아동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다만 "피고인이 자신의 딸에게 추가적인 피해를 주지 말라는 취지로 주의를 준 점과 해당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여러 조치를 받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검찰

유무죄와 상관없이 결국 기소…중요한 건 "사적 제재를 금한다"

유죄든 무죄든 결국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하는 건, 양쪽 모두 검찰은 아동학대법 위반으로 기소했다는 사실입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떤 이유에서든 사적 제재(私的制裁)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가 담긴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적 제재, '법률 국가 또는 공공의 권력이나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 개인이나 사적 단체가 범죄자에게 벌을 주는 일'이죠. 드라마 '더 글로리'의 복수도 그런 것이겠고요. 사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사적 제재가 매우 위험한 행위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실제 지난 2021년 출소한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을 한 20대 남성이 찾아가 둔기를 휘두른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법조계에선 사적 제재의 위험성에 대해 한목소리로 동의했습니다.
 

다만 여전히 답답한 것…'법대로 합시다'만 정답일까?

조두순과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 이것도 이른바 정당방위 아니냐라는 말씀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 저도 그런 고민을 하기도 했고요. 대한민국 헌법 제12조를 살펴보시죠.
 

제12조 ①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 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이 부분이 이번 사안과 관련한 중요한 부분일 겁니다.

어디까지가 보호이고, 어디까지가 사적 제재일까요. 물론 가해 학생 측에서도 내 아이가 왜 과한 아동학대를 당해야 하느냐, 왜 사적 제재를 받아야 하느냐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러니 '법대로 하자'라는 말도 맞기는 하지만, 역시나 그것만이 정답인지 고민이 됩니다. 최근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사태도 떠오르고요. 다만 피해자든 가해자든 과연 이런 과정들이 이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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