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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두 학살, '퐁니'와 '미라이'…국방부 항소, 정당한가 [취재파일]

미군이 촬영한 1968년 3월 16일 베트남 미라이 마을의 주민들. 이들은 촬영 직후 모두 미군에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재판부는 지난달 7일 베트남전 피해자 응우옌티탄 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응우옌티탄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1968년 2월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안구 퐁니 마을에서 벌어진 해병대 청룡부대의 민간인 70여 명 사살 사건이 우리 법원에서 사실로 인정된 것입니다.

불편한 진실입니다. 일단 겸허히 수용해야 하는데, 군으로서는 쉽지 않은가 봅니다. 국방부가 판결에 불복하고 어제(9일) 항소했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기록들을 확인해봤지만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은 없으니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는 것이 국방부 항소의 이유입니다.

하지만 군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기록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퐁니 사건 한 달 뒤 자행된 미 육군 23사단의 미라이 학살 사건도 철저히 은폐됐습니다. 23사단과 미군 베트남 사령부의 보고서 어디에도 미라이 학살 기록은 없었습니다. 하물며 베트남 파병 우리 군의 기록은 말해 무엇 하겠습니다. 그나마 미라이 사건은 용감한 양심들 덕에 발생 1년여 뒤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미 육군도 미라이 학살 사건의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학살을 인정했고, 육군 개혁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학살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 군과 많이 다릅니다. "베트남은 진솔한 사과 한마디를 원한다", "왜 그렇게 일본을 닮아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퐁니 사건을 목격한 참전 군인의 토로가 무겁게 들립니다.

같은 듯 다른 퐁니와 미라이


1968년 1월 30일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이른바 구정 대공세를 벌였습니다. 남베트남 전역의 군부대에 대규모 기습 공격을 가했습니다. 이에 청룡부대 1대대 1중대는 괴룡 1호라는 작전명을 내걸고 반격에 나섰습니다. 괴룡 1호 작전 중 2월 12일 퐁니와 퐁넛 마을에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민간인 70여 명이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퐁니 학살 사건입니다.

미 육군 23사단 11여단 20연대 1대대 찰리 중대의 미라이 사건도 구정 대공세의 반격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별다른 공격도 없었는데 찰리 중대원들은 1968년 3월 16일 미라이 마을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사살은 기본이었고, 부녀자 강간에, 젖먹이를 우물에 던져 죽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희생자는 최대 500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부대 기록물에는 두 작전의 민간인 피해 내용이 적히지 않았습니다. 미라이 사건의 경우 작전 지원에 나섰던 헬기 조종사가 민간인 학살을 목격하고 상부에 보고했지만 묵살됐습니다. 사단장까지 사건 은폐에 가담했습니다.

두 사건 공히 자칫 묻힐 뻔했습니다. 다만 미라이 사건은 이듬해 양심적 제보자가 나타나 진상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육군의 저항에 학살 가담자 26명 중 소대장 1명만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사건의 실체는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퐁니 사건은 31년 만인 1999년 언론 보도로 빛을 봤습니다. 다시 24년이 더 흘러 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우리 국방부는 외면했습니다.

현장 조사 없이 과거 기록만 내미는 국방부


국방부는 어제 항소하면서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습니다. 군의 입장과 논리를 설명해달라는 기자 요청에 국방부 관계자는 난처한 듯 "이종섭 장관 등의 기존 발언을 참고하라"고 답했습니다. 이종섭 장관은 지난달 17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미군이 조사한 것을 보면, 주월미군사령관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라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저희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군의 당시 조사는 믿을 바 못 됩니다. 퐁니 사건 한 달 뒤 벌어진 미라이 사건도 숨겼는데 퐁니 사건인들 객관적으로 살펴봤을 리 만무합니다. "미군 기록에 없으니 학살은 없었다"는 국방부의 논리는 허술합니다. 무죄를 주장하려면 현장 조사, 증언 청취 등을 통해 확고한 반론의 증거를 내놔야 할 텐데 그런 움직임은 없습니다.

반면 퐁니 사건을 뒷받침하는 미군의 또 다른 기록과 미군 병사의 증언은 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재판부는 "주월한국군이 '한국군으로 변장한 베트콩들의 소행'이라는 취지로 조사해 진상을 은폐했다", "한국 정부는 1969년 중앙정보부를 통해 광범위하게 조사하고도 외교적 문제 등을 이유로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미라이 사건의 미군처럼 우리 군도 퐁니 사건을 은폐했다는 것입니다.

청룡부대가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았으면 참 좋겠지만, 했다면 우리 군은 베트남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명분의 전장이든 군인은 무고한 민간인을 해쳐선 안 됩니다. 군 출신 국회의원, 재향군인회 등은 "피아 구분이 어려운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반발하는데, 문명사회의 군법은 상황 여하를 막론하고 죄 없는 민간인 사살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 월남전 용사의 명예를 폄훼하지 말라"는 예비역들의 주장도 나오는데, 과거의 오점을 깨끗이 털어내야 현재의 명예를 논할 수 있습니다. 어렵더라도 이런저런 과거를 진솔하게 반성했을 때 우리 군의 명예와 신뢰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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