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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어민 나포 전 북송 검토…내부 반론에 서훈 "그냥 해"

탈북 어민 나포 전 북송 검토…내부 반론에 서훈 "그냥 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이 2019년 탈북 어민들이 탄 어선을 나포하기도 전부터 북송 방식을 검토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실무진 설득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우려를 표했으나,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그냥 해"라며 이미 정해진 방침을 밀어붙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검찰은 당시 남북 관계 경색 국면을 타개하려는 의도에서 청와대와 국정원이 무리한 북송을 추진했다고 보고 이를 공소장에 담았습니다.

오늘(9일) 국회를 통해 입수한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은 어선을 나포하기 전부터 강제 북송 방침을 세우고 실무진에 지침을 하달해 급박하게 송환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보실과 국정원이 북한 선박을 나포한 뒤 어민들을 북으로 돌려보내는 방안을 협의하기 시작한 건 2019년 11월 1일부터였습니다.

당시는 해당 선박이 우리 해군의 퇴거 조치에도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하를 계속 시도하던 때입니다.

서훈 당시 국정원장은 11월 1일 김준환 국정원 3차장에게 "동료 선원을 다수 살해한 흉악범이 남쪽으로 오려도 시도하고 있다"며 이들을 법적으로 북한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결국 나포된 어민들이 11월 3일 중앙 합동 정보조사에서 동료 어민들을 살인했다고 자백하자 서 전 원장,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이튿날 노영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회의를 열어 강제 북송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정 전 실장이 이를 승인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검찰은 강제 북송의 법적 근거가 없고, 정당화할 근거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급하게 강제 북송 방침을 세우게 된 데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고 봤습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협상 결렬로 남북관계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11월 4일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초청하는 친서를 보낼 예정이던 정부로서는 어민 북송을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북한을 존중하고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기회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 검찰 조사 결과입니다.

특히 북한이 그해 6월 삼척항 무단 입항 사건으로 귀순한 북한 주민 2명을 우리 정부가 돌려보내지 않는다며 경고성 대남 통지문을 보낸 뒤라 북한과의 화해·협력 성과가 더욱 절실하던 시기였다고 검찰은 봤습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나 안보 관계 장관회의 대신 노 전 실장 주재 회의에서 결론을 내리기로 한 점 역시 정 전 실장의 대통령 해외순방 수행 일정과 서 전 원장의 국정감사 일정을 고려해 최대한 빨리 북송을 마무리하려는 목적이었다고 검찰은 결론 내렸습니다.

공소장에는 이런 방침 아래 정 전 실장, 서 전 원장 등이 어민들의 귀순 의사와 실무진 의견에 반해 북송을 밀어붙이는 과정이 자세히 드러나 있습니다.

서 전 원장은 11월 3일 오후 국정원 대공수사국장으로부터 어민들이 중대범죄를 자백했다는 보고서를 보고받자 "흉악범인데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되나"라고 말합니다.

다음 날 새벽엔 김준환 전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탈북어민 처리 문제를 갖고 청와대에서 결론을 낼 모양인데 원의 입장을 보내줘야 한다. 16명이나 죽인 애들이 귀순하고 싶어서 온 거겠냐. 자기들 살려고 온 것이지. 우리는 북송하는 방향으로 조치 의견을 넣어서 보고서를 만들어줘"라고 말합니다.

김 전 차장이 "대공수사국 설득이 가능하겠습니까. 두 번이나 실무부서에서 반대한 것을"이라고 반문하자, 서 전 원장은 "그냥 해. NSC에서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으니까. 우리는 그냥 그 의견을 내"라고 지시했습니다.

11월 4일 노 전 실장 주재 회의에서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북송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냈지만, 노 전 실장은 "남북 간 특수관계를 고려할 때 북송이 가능하다"며 강제 북송으로 잠정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법무비서관에게 "오후 중으로 신속하게 강제 북송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 추가 법리를 검토해 정의용 실장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문건 역시 북송 방침에 따라 수정됐습니다.

11월 3일 서 전 원장의 지시를 받은 김준환 전 차장은 대공수사국장으로부터 '어민들의 중대범죄 자백' 관련 보고를 받던 중 강제 수사 등이 필요하다는 '검토 및 조치의견' 내용 상당 부분에 'X자'를 표시하며 "왜 그러세요. 송환을 전제로 하는 보고서인데, 이걸 넣을 필요가 있나"라며 강제 북송 결정에 맞도록 보고서를 수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틀 뒤 김 전 차장으로부터 수정 보고서를 보고받은 서 전 원장은 "NSC에서 결정됐는데 대공 혐의점 희박이 뭐야?"라면서 귀순 요청 부분을 삭제하고 '대공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결론'으로 수정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렇게 수정된 보고서는 통일부에 전달됐습니다.

검찰은 "당시는 합동조사팀의 대공 혐의점 유무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귀순 의사가 명확한 상태였음에도 조사 내용이나 진행 상황과는 다른 내용이 기재된 허위 보고서가 강제 북송 결정에 따라 작성됐다"고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합동 조사 결과 보고서 역시 '귀순 의사 표명'이나 '귀순'에 관한 내용은 모두 삭제하고 '나포'·'월선'으로 대체해 주요 조사 사항인 '귀순 의사'가 없었던 것처럼 작성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윗선 방침에 따라 합동 조사가 서둘러 종료되면서 통상 이뤄지는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하지 못해 해당란은 모두 삭제됐고, 귀순자 처리 절차에 따라 조사하려던 당초 계획도 삭제하는 등 부실 보고서가 만들어졌다고 검찰은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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