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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피의자보다 못한 놈들" 수사관에 막말한 검사 감찰

[단독] "피의자보다 못한 놈들" 수사관에 막말한 검사 감찰

한 초임 검사가 수사관들에게 "피의자보다 못한 놈들"이라는 등의 막말을 해 감찰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전지검 A 검사는 지난해 12월 초, 대전지검 수사관들의 회식 자리에 합석했다. 당시 만취 상태였던 A 검사는 자리에 있던 수사관들에게 "내가 조사하는 피의자보다 못한 놈들", "당신들은 공익근무요원보다 못한 곳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리에 있던 수사관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검찰에 따르면 A 검사는 다음 날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당사자들을 찾아가 직접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소문은 전국 검찰청으로 퍼져나갔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인 블라인드에도 관련 글이 올라왔다. 이 가운데 '대전지검 검사가 술자리에서 주임수사관들 모욕한 거 나만 열받아?'라는 글에는 1백 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그런 사람이 한둘일까" "모멸감을 느낀다"는 등의 내용이다. 일선 수사관들 사이에선 "술 취해서 한 말이라고 해도 도가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전지검은 A 검사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대전지검 관계자는 현재 감찰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A 검사는 27일 발표된 평검사 인사에서 다른 지청으로 발령이 났다.
 

검사는 '배트맨', 수사관은 '로빈'이라는데…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검찰 내부에선 이 소식이 전국 검찰청, 특히 수사관들 사이에서 한동안 화제가 됐다. 극히 일부의 사례이고 만취 상태에서 나온 말이라 하더라도 수사관들에 대한 일부 검사의 비뚤어진 인식을 보여줬다는 취지에서다.

검찰에서 수사관은 묵묵히 일하는 조연에 가깝다. 올해 1월 기준 우리나라에 검사는 모두 2,138명, 수사관은 모두 6,144명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주로 검사가 주연이고 수사관은 잘 나오지 않지만 실제로는 수사의 많은 실무를 수사관들이 담당한다. 피의자 검거, 계좌 추적, 포렌식, 압수수색 등 그 영역도 광범위하다. 사법경찰관리로서 지위도 법에 명시돼 있다. 법조계에선 검사와 수사관의 관계를 흔히 '배트맨'과 '로빈'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중요한 파트너란 뜻이다.

검찰 안에선 유능한 검사가 되려면 '수사관 복'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종종 나온다. 수사의 큰 그림을 그리고 지휘하는 건 검사의 일이지만 때로는 수사관들이 수사의 성패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유라 말' 찾은 수사관…수사에 결정적 기여도

삼성 최순실 정유라

대표적으로 알려진 일화 가운데 하나가 지난 2017년 '국정농단 특검' 당시 한 수사관이 결정적 물증인 '정유라의 말(馬)'을 찾아냈던 사례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430억 원대 뇌물을 건넨 혐의로 청구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자 특검 내부에선 비상이 걸렸다. 당시 특검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때 한 수사관이 "최서원(전 최순실 씨) 비서의 이메일 내역을 확인해보자"고 했고, 그 결과 삼성 측이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의 말을 사 준 내역이 발견됐다고 한다. 자칫 흔들릴 뻔한 수사 동력이 다시 살아날 수 있던 계기였다. 이후 삼성 측이 정유라에게 지원한 말은 대법원에서 '뇌물'로 최종 인정됐다. 특검 수사가 마무리될 즈음, 특검팀 소속 검사들이 해당 수사관을 찾아가 감사를 표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 수사관은 현재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근무하고 있다.

강력계 형사들의 전유물처럼 알려진 '잠복 수사'로 핵심 피의자를 붙잡은 무용담도 여럿 전해진다. 지난 2021년 말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 수사 때 있었던 일화다. 당시 주요 피의자 한 명이 잠적했는데 통신 추적을 통해 오피스텔 한 곳이 은신 장소로 특정됐다. 문제는 그 오피스텔에만 수백 세대가 살고 있었다는 점. 일일이 벨을 눌러볼 수도 없는 노릇에 수사관들이 잠복근무에 들어갔다. 피의자가 모습을 드러낸 건 몇 주가 지난 그해 12월,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이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 기소된 다음 날(4일)이었다. 아마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건지 유유히 집 밖으로 나와 한 참치집으로 들어가는 그를 수사관들이 조용히 따라갔다. 피의자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을까, 식사를 어느 정도 마칠 때까지 기다리던 수사관 한 명이 피의자에게 다가갔다. "가시죠." 저항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극히 일부 사례"라지만…"씁쓸하다" 반응도

물론 A 검사의 사례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는 게 검찰 내 평가다. 검찰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서 요새는 수사관들에게 하대하거나 막말하는 검사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게 대부분 검사들의 이야기다. 한 중견 검사는 A 검사의 사례를 "극히 일부의 사례이자 해프닝에 가깝다"며 "수사관을 파트너로서 존중하고 협력하는 분위기가 더 많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한동안 검찰 내부에서 화제가 되고 사건 관련 블라인드 게시물에 "그런 사람이 한둘일까"라는 댓글이 달린 건 한 번 되돌아볼 일이다. 대전지검 안팎에선 "초임검사가 실수한 걸 가지고 너무 그런다"며 두둔하는 취지의 말이 나와 황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20여 년 경력의 한 검찰 수사관은 "검사와 수사관 모두 자기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초임 검사의 실수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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