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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것이 담겼던 데뷔작"-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북적북적]

"내 모든 것이 담겼던 데뷔작"-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69 : "내 모든 것이 담겼던 데뷔작"-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영화든 소설이든 그 작가의 모든 것이 첫 작품에 담겨 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 만약 그 말이 옳다면 내게 그 작품은 영화 데뷔작이 아니라 분명히 이 책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이다."
('출간에 즈음하여' 中, 고레에다 히로카즈)

진짜 계묘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이번주의 책이 [북적북적]의 새해 첫 책이 됩니다. 새해를 이렇게나 기쁘게 권해드릴 수 있는 책으로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 [원더풀 라이프], [걸어도 걸어도], [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세상에 선물해 온, -제 '팬심'으로는 누가 뭐래도 현재- 아시아 최고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스스로 "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데뷔작'은 이것"이라고 말하는 작품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가 우리나라에서 지난 12월 말 출판됐습니다.

이번주 [북적북적]은 결방될 뻔 했습니다. 낭독에 대한 허가를 출판사에 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대목을 낭독하는지 미리 일본 출판사와 저자에게 알려 허락을 구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고 얘기가 됐습니다. '어쩔 수 없지' 단념하고 오늘의 책은 3주 뒤로 미루기로 했는데, 뜻밖에도 출판사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일본 출판사에 알렸더니 저자가 오늘 낭독 계획에 대해 듣고 '읽고 싶은 대로 읽으라'는 답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아…역시 거장이 다르긴 다르구나.' 솔직히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물론, 작가가 낭독 대목을 미리 알고 싶어 하거나 경우에 따라 허가하지 않아도 이상할 일은 전혀 아닙니다. 다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뤄보면, 비단 글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대가가 될수록, 자기 작품에 대해서 '내 손을 떠난 다음에는 그저 당신의 것이다'라는 태도로 응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어떤 이해를 또는 오해를 받든,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소화되든, 그저 당신의 것이다. 최종 독자뿐 아니라, 자신의 작품에 일종의 액자를 씌워 다시 소개하는 작업이 포함되는 낭독 팟캐스트의 경우라도 말입니다. 뒤에 소개해 드릴, 한국어판 출간에 저자가 보낸 글에서 본인 스스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한데, 역시 말뿐이 아닌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보통 '3단계'로 작업합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은 뒤, 책을 냅니다. (감독이 [어느 가족]을 찍은 뒤 이를 소설로 낸 [좀도둑 가족]을 4년 전에 [북적북적]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일하는 방식의 원형 역시, 오늘의 책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부터 시작된 걸로 보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0대에 방송사 외주 프로덕션의 다큐 피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외주 프로덕션'임을 강조하는 이유가 이 책에 나옵니다.) 그때 처음으로 스스로 기획하고 취재해 제작을 마친 작품이 1991년 3월에 방송된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라는 다큐였습니다. 당시 이 다큐는 일본 안에서도 꽤 큰 반향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다큐 방영 이후에도 취재를 계속해 책으로까지 낼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 책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저작은 저의 원점입니다. 스스로 기획한 첫 다큐멘터리이고 처음으로 이십 대에 쓴 책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책을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서 읽어주시는 걸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영화든 책이든 읽는 방법, 보는 방법, 받아들이는 방법은 만든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각자의 접근 방식으로 발견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손에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2022년 가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오늘의 책은 교보문고에서 유통되지 않습니다. 교보의 온라인 서점에도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찾아 읽는 분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이라지만, 책이 나온 지 30년도 더 지난 시점에야 우리나라에 나온 다큐 취재기에 대해서 "평소에 책을 구하시는 루트 외의 노력이 좀 더 필요합니다." 말씀드려야 하더라도 권해드릴 수 있는 책일지 저부터 가장 궁금했습니다. 거장은 데뷔작부터 정말 떡잎이 다른 것인지도 궁금했고요.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처음 했던 생각은 '30년이 지난 뒤에라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고맙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꽤나 정신없이 지내는 편인데도, 이 책에서 청년 고레에다가 만났거나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한 주를 보냈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네, 거장은 떡잎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청년 고레에다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는가, 혹은, 무엇이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는가, 그것이 이 작품에서 보입니다. 어째서 감독 스스로 "이 저작이 나의 원점"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아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 시스템에 으스러지는 개인에 대한 관심, 그렇다고 온정주의에 파묻히지 않는 예리한 시선, 그 예리한 시선의 뿌리인 (다시) 인간에 대한 깊은 존중… 우리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좋아하는 모든 이유가 이 책에 이미 모두 있습니다.
 
야마노우치는 이 논고가 시론이며 어디까지나 사견이라고 밝힌 다음 공해의 가해자 기업과 행정청의 책임을 엄격하게 언급했다. 무엇보다 행정청을 공해 사건의 당사자로 지정하고 오염의 원인 규명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입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행정 담당관의 발언인 만큼 무게가 있다.

야마노우치가 여기서 "특수한 환경오염 사건"이라고 했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틀림없이 미나마타병이 있었을 것이다. 그 공해 환자의 구제와 공해의 원인 규명에 대해 이만큼 열렬하게 말했던 사람이 22년 후에는 정반대 입장에서 미나마타병에 대한 국가의 행정 책임을 부정한다. 그때 야마노우치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그는 22년 전에 자신이 쓴 이 글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야마노우치가 공해과에 배속되어 기본법 제정에 주력하고 있던 1966년의 세밑이 가까이 다가온 12월 26일, 야마노우치는 후생성의 상사 니야 데쓰로로부터 히비야로 호출되었고, 그곳에서 어떤 여성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사진은 두 장이었다. 한 장은 기모노를 입은 모습으로, 맞선용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또 한 장은 그 여성이 강아지와 놀고 있는 사진이었다.

"예쁘네요."

야마노우치는 이렇게 칭찬했다.

"해가 가기 전에 한번 만나보지 않겠나."

니야가 권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1990년 12월에 발생한 어느 일본 고위공무원의 자살입니다. 청년 고레에다는 이 관료,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를 생전에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가 주로 취재하고 만났던 것은 아내 도모코입니다. 도모코는 40대 후반의 자신과 10대 두 딸만 남겨놓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편의 장례를 치른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시점에 찾아왔을 청년 감독에게 '남편 죽음의 공공성'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다큐 방영 이후까지 이어진 긴 취재를 허락해 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당시 일본 사회의 시스템과 어떤 분위기를 매섭게 고발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편의 갑작스러운 자살을 맞은 어느 중년 부부의 삶에 대한 면밀하면서도 따스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야마노우치가 근무하는 후생성도 히비야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점심시간에 같이 식사를 하고 화랑을 돌아다니는 데이트를 거듭했다.

그 무렵부터 야마노우치는 항상 일로 바빠 데이트 약속 장소에 서류나 원고지를 잔뜩 싼 보자기를 들고 왔다. 일이 끝난 뒤에 만나도 야마노우치는 카페에 앉아 보자기를 풀고 도모코 앞에서 일을 계속했다. 도모코는 그런 야마노우치를 잠자코 지켜봤다. 가게 문이 닫히는 시간까지 그러고 있다가,

"그럼."
하고 헤어졌다. 그런 이상한 데이트가 이어졌다.

'어쩜 이리 멋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큰 보자기를 들고 걷는 야마노우치를 옆에서 보며 도모코는 생각했다.

그 무렵 야마노우치는 후생성 일에 몰두하고 있어 원고지를 향하는 일도 적어졌다. 시나 소설을 쓰는 생활에서 꽤나 멀어지고 만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시의 일기 첫 페이지에 1967년 1월 18일이라고 날짜가 적힌 시가 딱 한 편 남아있다. 시 제목은 [당신을 만나면]이다.

'당신을 만나면/당신을 만나지 못하게 될 날이 두려워/언제까지고 이야기하고 싶어져 괴롭다/그리고 당신과 이야기하면/당신과의 따분할 만큼 긴 나날이 두려워/이야기를 남겨두려고 괴롭다/서른 살이 되어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짓는 시. 열다섯 살 때 단아함의 절반도 안 되는 시여서 미안하다.'
 
몇 번째인가의 데이트 때였다. 평소처럼 화랑에서 그림을 본 두 사람은 카페로 들어갔다. 거기서 야마노우치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일을 언급하며 말했다.

"나는 상급공무원 시험을 봐서 2등으로 합격했소.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복지 업무를 하고 싶어서 스스로 후생성을 골라 들어온 거요."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도모코에게는 자랑으로 들리지 않았다.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구나.'

도모코는 순수하게 생각했다. 그때 이미 멋없고 서투른 야마노우치를 사랑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는 1990년 12월 잠적했다 집으로 돌아와 목을 맸습니다. 그는 당시 일본 환경부에 해당하는 부처에서 '넘버3'라고 할 수 있는 기획조정국장이었습니다. 우리로 따지면 행정고시에 그 해 차석으로 합격해 사실 평생의 출세가 보장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와 일본의 사회 시스템이 너무도 비슷해 이런 부분이 굳이 부연설명 없이도 바로바로 이해되는 면이 많습니다.) 그런 그가 환경 장관의 어떤 중요한 출장에 수행하기를 거부하고 사라졌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다.

그의 죽음에는 배경 설명이 필요합니다. '미나마타병'이라고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미나마타병'은 일본의 대표적인 공해병으로서, 정부와 산업계가 어용학자들을 동원해 오랫동안 그 존재와 원인 자체를 부정하다가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던 병입니다. 정부와 해당 기업이 마지못해 책임을 인정한 뒤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보상의 범위나 정도에 대한 논란이 수십 년에 걸쳐 이어졌고, 피해자들에 대한 모함도 다양한 층위로 커졌습니다. '미나마타병'은 그 병의 심각성뿐 아니라, 피해자들에 대한 심각한 차별 때문에 사회학적으로도 연구가 많이 된 사건입니다.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의 전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어떤 정도로든 겪었고, 또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미나마타 병'을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이름만 바꿔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진행된 양태와도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는 미나마타 주민들이 보기엔 당시 일본 정부의 얼굴이었습니다. 책임을 인정해 달라, 산산이 부서진 삶에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는 미나마타 주민들에게, 국가와 산업의 미필적 고의로 너희의 삶이 이렇게 망가진 것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요지의 말을 되풀이하던 사람. 정부가 어차피 제대로 된 해결책을 들고 나오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핵심 담당자였습니다. 영화로 찍는다면, '악당 넘버2' 쯤으로 캐스팅돼야 할 위칩니다. 그런 그가 미나마타에 가보겠다는 장관의 수행을 거부한 채 어딘가를 헤매다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이 사람이 악당이라면 우리 모두 마음이 편할 겁니다. 하지만 고레에다가 사후에 추적한 그의 삶은 어떻게 보아도 그렇게 재단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기막힐 정도로 간단한 그의 유서 전문이 실려있습니다. 그의 아내나 딸들 입장에서라면 특히,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유서입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나가다 이 유서에 다다르면...이 책을 펼쳐 들기 전까지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남긴 최악의 유서 때문에 목이 메는 것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야마노우치는 늘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젊은 직원 한 사람 한 사람과 밥을 먹으며 복지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는 이상할 정도로 설교 냄새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은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에요. 이건 복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행정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의 기본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 대처하려고 해야 합니다. 자신의 입장만으로 판단하면 복지업무는 안 됩니다."

"권력에 지면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올바른 사람 편을 들어야 합니다. 강자 편을 들어서는 안 되지요. 숫자를 믿고 오는 사람들 중에서도 올바른 사람이 한둘은 반드시 있을 겁니다. 그걸 가려내 소수자의 소리 없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지의 진수는 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자립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복지의 역할입니다. 때로는 힘내라, 정신차리라고 질책하는 것도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중략)….. 예정된 2년의 파견 기간이 지났을 때 직원들 사이에서 야마노우치 과장에게 좀 더 재임해 달라고 할 수 없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민생부장인 단보 다쓰로가 후생성 인사과장을 찾아가 직접 호소했다.

"야마노우치 씨가 주력하고 있는 동화 대책 사업도 드디어 궤도에 오른 참입니다. 후생성으로 복귀한 후의 승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돌아가는 시기를 반년만 늦춰줄 수 없겠습니까?"

단보는 솔직하게 요청했다. 후생성 직원 쪽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보통은 폐가 되니까 빨리 돌아가게 해 달라고 하는데 좀 더 있게 해달라는 말을 들은 경우는 후생성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담당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로 따지면 기획재정부 같은 데 들어가라는 권유를 받으며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던 사람이 자진해서 복지행정에 몸을 담아 '천직을 만났다'며 정력적으로 일했고, 일본에 그 개념조차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복지정책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어째서 '환경부 No.3'까지 올라가서 미나마타의 희생자들에게 절망을 던지는 정부의 얼굴이 되었을까요.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요. 잠적했던 그는 왜 집으로 돌아와 목숨을 끊었을까요. 이 책의 제목에는 왜 '구름'이 들어가 있을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좋아하는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그는 결코 창작자이자 관조자로서 앞서서 감정과잉으로 치닫거나 최루성의 무언가를 유도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야마노우치 도요노리에게 마음을 빼앗기긴 했지만, 그를 무턱대고 옹호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원래 다 그런 거지 뭐' 같은 무딘 태도를 취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이 취재한 야마노우치의 지인들과 언론은 고인에 대해서 '그런 자리에 있기에는 너무 문학적인, 너무 진지한,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그것이 마치 객관적인 평가인 양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사회생활을 좀 해본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거리고 지나갈 것 같은, 크게 틀리지만도 않은 말들입니다. 하지만 고레에다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는 곤란한 일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던 입장의 고위 관료일 뿐 아니라, 일본이 경제발전과 산업화에 (다시) 주안점을 두고 '복지를 버리던' 시대의 정부 책임자였다는 것을, 한 남자의 갑작스러운 자살을 둘러싼 진짜 풍경, 전체 풍경을 차근차근 짚어냅니다.

시스템 탓만 하는 것도 진부하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는 그 안에서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당시 시스템의 '핵심 나사' 중 한 명이었던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도 개인으로선 일종의 희생자였을 뿐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지나가도 되는 걸까. 아마도 끝이 나지 않을 물음들입니다. 구름도 대답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의 삶이 자살로 끝을 맺은 것은 참으로 쓸쓸하고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그런 마지막 외에 다른 길이 그에게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은 제가 '스포일'해도 되지 않을까요. 고레에다 감독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애초에 도모코를 만난 목적이었던 TV 다큐가 나간 후에도 그녀를 계속 만나며 취재합니다. 도모코에게도 그 2년은 그냥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자살 이후 2년 뒤 고레에다 감독에게 "지금 다시 한번 할 수 있다면, 우리 부부는, 분명히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말하며 환하게 웃습니다.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를 읽으며 저는 제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기자로서 제가 했던 일들, 봤던 일들, 알았던 일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이 끈질기게 고찰하고 보여주는, 개인을 으스러뜨리는 시스템이란 수레바퀴와 그 수레바퀴에 맞서는 가족과 공동체의 연약하고 한없이 느슨하면서도 강력한 힘. 고레에다 감독의 인간에 대한 깊은 존중을 새삼 다시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백한 문고판입니다. 하얀 표지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교보문고에서 구할 수도 없습니다. 책에서 반복되는 행정 용어들의 가독성이 높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본의 과거 시사 이슈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보니, 낭독할 부분을 골라내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한 번 집어 들면 놓을 수 없으시리라는 것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새해를 이렇게나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열 수 있어서 기쁩니다. [북적북적]과 함께 해주시는 여러분의 새해에, 문득 책장을 접고 고개를 들어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는 순간들이 몇 번이나 찾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새해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체크포인트 찰리'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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