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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읽어볼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프루스트 [북적북적]

새해엔 읽어볼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프루스트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67 : 새해엔 읽어볼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북적북적> 청취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고 계신가요. 새해의 재미 중 하나는 '새해 계획'이 아닐까요. 계획의 달성 여부와는 별개로,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는 달성한 자의 기쁨을 약간은 미리 맛보고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올해 어떤 계획을 세우셨고, 지키고 계시고, 혹은 사흘마다 새롭게 작심 중이신가요?

'책읽기' 에도 새해 계획이 있죠. '몇 권을 읽겠다, 어떤 책은 꼭 읽겠다.' 처럼요. 책 읽기의 새해 계획이라면 저는 이 책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모든 현대소설의 출발점',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으로 불리는 소설로, 한 번쯤 들어는 봤지만 막상 읽을 엄두는 안 나는 책이기도 합니다. 야심차게 1권을 시작했지만 결국 책꽂이 어딘가에 꽂아두고 '언젠가 훗날'을 기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소설가 김연수 님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도 이런 얘기가 나와요. 이 책의 제일 앞부분은 새해 계획을 얘기하며 시작되는데, 그 중 하나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기'입니다. 1월부터 한 권씩 읽어서 12월에 끝내고 막걸리를 마시며 자축의 의미로 프루스트 전기를 읽는 것이 김연수 작가의 새해 목표였죠. '이 책을 읽지 않고 죽는다면 어떤지 내 인생에 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계획대로 됐을까요? 아닙니다. '자기 전에 10쪽씩만 읽으면 되는데도 그게 너무나 어렵다'고 썼습니다. 왜냐고요? '누워서 일단 1페이지를 읽어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이지 알 것"이라고 하네요.

'완독'에 이르는 길이 멀고 멀기로 유명한 이 책이지만, 올해는 새롭게 계획을 세워볼 만합니다. 계기가 생겼거든요. 민음사의 번역본이 10년의 대장정 끝에 드디어 완결된 겁니다. 번역가인 김희영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지난 연말, 13권의 완전체가 나왔습니다. '김희영 번역가님의 번역이 끝나면 나도 읽기 시작하겠다'는 핑계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어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1909년부터 1922년 숨을 거두기 전까지 14년동안 쓴 책으로, 1편 『스완네 집 쪽으로』부터 7편 『되찾은 시간』까지 모두 7편으로 이뤄진 연작소설입니다. (분량이 많아서 한국어 번역본은 권수가 많고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대를 배경으로, '나'라는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얼렁뚱땅 '이야기'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건, 이 소설은 줄거리를 요약하기 매우 어려운, 한 마디로 정리하기 불가능한 소설이기 때문이에요. 인터넷 서점에 있는 출판사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나'라는 화자의 성장과 시선에 따라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온갖 사유를 담아낸다. 그 속에 유년기의 기억, 사랑과 정념, 질투와 욕망, 상실과 죽음, 예술, 사회, 문화, 정치, 역사 등 '인간 삶'의 총체적인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작품'이라고요. '한 인간의 온갖 사유'와 '인간 삶의 총체적인 모습', 그걸 담은 프루스트의 독특한 문장은 독자가 읽어서 통과하고 도착해야만 하는 곳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소설에 대해 '진정으로 내게 큰 체험은 프루스트다. 이 책이 있는데 과연 무엇을 앞으로 쓸 수 있단 말인가'라고 극찬했고 알랭 드 보통은 '한 인간 삶의 완벽한 재현'이라고 했습니다. 백 년 동안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이 소설도 처음 출판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프루스트가 앞 부분을 써서 출판사를 찾아나섰지만 모든 출판사가 거절했다고 해요. 결국 신생 출판사가 자비로 출판하는 조건으로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다.

오늘 <북적북적>에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편인 『스완네 집 쪽으로』 중에서, 그 유명한 '마들렌' 장면을 읽어드립니다. 화자인 '나'는 어느 날 예고 없이, 추억으로 가는 문이 한꺼번에 열리는 듯한 경험을 합니다. 그 닫혀 있던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마들렌이었죠. 어느 추운 겨울날, 집에 돌아온 '나'에게 어머니는 평소 '나'의 습관과 달리 홍차를 마시지 않겠냐고 제안합니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트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중략)…

그러나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中

내 몸속에서 일어난 이 '특별한 일'은 바로 의식의 무대 뒤로 물러나 있던 추억의 장면을 무대 위로 불러내 되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위 문장에 이어 기억이 떠오르는 환상적인 장면은 오늘 업로드된 <북적북적>에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10년에 걸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번역한 김희영 번역가는 사명감과 용기를 갖고 번역을 했다고 합니다. 이 책의 특징인 '가지치기'와 '은유', 다른 것과 다른 장소를 계속 불러들이는 원문의 어순과 긴 호흡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고 합니다. '원문의 떨림'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요.

이렇게 '가지치기'와 '은유'가 많기 때문에, 이 책은 어느 책보다도 책에 흠뻑 빠져들어 읽을 때 그 묘미를 잘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맛과 향기, 소리, 촉감, 시각까지 오감을 모두 동원해서 읽게 되는 책이기도 하고요. 오늘 <북적북적>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큰 강물에 함께 발을 살짝 담가보시면 어떨까요. 지금은 무엇이든 계획할 수 있는 새해니까요.

*민음사'의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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