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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멀어진 낙원'…"인플레이션 진정 갈 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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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긴축 완화 시장 기대 확산, 증시 안정 계속될까?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일부 채권시장이 마비되는 상황 속에서도 주식시장이 안정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나스닥지수는 지난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10%나 상승한 데 이어 지난주에도 안정된 모습을 이어갔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낮았던 것으로 나타나면서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가 늦춰질 것이라는 기대가 투자 심리를 호전시켰다.

미국 노동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10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는 7.7%, 1개월 전보다는 0.4% 상승했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9월보다 0.5%p 하락했고, 전월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9월과 같은 수치다.

시장이 주목한 것은 전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다. 10월 전월 대비 물가 상승률은 0.4%로 지난 9월과 상승률이 같았지만, 시장이 예상한 상승률 0.6%보다 0.2%p 낮아진 데 투자자들은 주목했다.

특히 가격 변동이 심한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핵심 물가 상승률은 9월 0.6% 상승에서 10월에는 0.3% 상승으로 오름폭이 절반으로 줄었다. 6.6% 상승하면서 1982년 이후 가장 높았던 연간 핵심 물가 상승률은 6.3%로 낮아졌다. 세부 품목별로는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생필품 가격이 평균 0.4% 하락했다. 중고차와 트럭은 2.4%, 의류는 0.7%, 의료비 서비스는 0.6%가 각각 하락했다.

금융시장은 지난 9월 예상보다 높은 상승률을 나타내면서 연준이 3연속 기준금리를 0.75%p 인상하도록 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지난 것으로 해석했다. 이에 따라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0.75%p씩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에서 0.5%p씩 올리는 빅 스텝으로 완화할 것이고, 내년 상반기로 예상되는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도 5.5%에서 5.0%로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했다.

10월 미국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파란 선(종합), 붉은 선(핵심 물가)
10월 미국 전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

이코노미스트 "10월 물가 상승률은 가짜 신호…고용과 소비 여전히 뜨겁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5일 기사에서 미국의 지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물가가 정점을 지나 안정세로 돌아선 만큼 연준이 통화 긴축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유발했으며, '가짜 신호(Head Fake)'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미국 연준이 작년 가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물가 상승이 일시적일 것으로 잘못 판단했고, 지난 7월 투자자들이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것으로 기대했다가 낭패를 본 것처럼, 10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도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각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경기가 둔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아직도 구인난이 계속되고 있고, 소비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가 상승 없이 경제 성장이 계속되는 골디락스(goldilocks)는 오래전 얘기, 물가 상승 억제 목표치 2% 달성까지는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다는 얘기다.

10월 미국의 일자리는 26만 1천 개가 증가해 9월 31만 5천 개보다는 증가 규모가 축소됐지만, 전문가들의 예상치 19만 1천 개를 크게 웃돌았다. 실업률도 3.7%로 9월보다는 0.2%p 상승했지만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 계속되고 있다. 임금 상승률도 4.7%로 코로나19 이전 3%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 현재 구직자 1명당 일자리 수는 1.9개가 있는 상태다. 일자리는 늘고 있지만, 일할 사람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가 만연했던 지난 2년 동안 지급한 지원금 등으로 미국인들이 쌓아 놓은 가처분 소득이 2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등 소비자들의 넉넉한 주머니 사정으로 개인 소비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 16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10월 소매 판매는 전달보다 1.3% 증가했다. 최근 8개월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임금과 기대인플레이션, 물가 상승세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조짐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경우 중고차에서 시작된 물가 상승세가 다른 품목으로 확대되고 있고, 일본도 식품에서 시작된 물가 상승세가 다른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소득 상위 36개국을 분석한 결과 4% 이상 가격이 오른 상품의 비중이 작년 6월 60%에서 67%로 확대됐다고 보도했다. 물가 상승률이 낮은 일본의 경우에도 분석 대상 상품의 3분의 1이 4% 이상 올랐다.

선진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좌), 선진국 기대인플레이션율(우)

전방위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임금의 경우 미국의 인상률은 6%에 달했다가 다소 낮아졌고, 영국도 임금 상승률이 정점을 지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평균 5%를 기록한 유로존의 임금 상승률은 가속화하고 있다. 독일의 철강회사 미탈(Metal)의 경우 노동조합이 8%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고, 뉴질랜드와 노르웨이 그리고 스웨덴의 임금도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6일 발표된 영국의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1%로 2차 오일쇼크 직후인 지난 1981년 10월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스(130%)와 전기(66%) 가격이 치솟은 가운데, 식품과 비주류 음료 가격도 16.4% 올라 1977년 이후 가장 높았다.

기대인플레이션율도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 연준이 지난달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득 중위 국가의 일반인은 앞으로 1년 후 물가가 5% 오를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기업들의 1년 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7%로 2018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금융 위기 발생 시 주가 추이, 단위: 월 (자료: 브릿지워터)

불확실성 여전…"인플레 잡기에 의도하지 않은 피해 불가피"

지난 2일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세 번째 자이언트 스텝을 발표하면서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통화 긴축의 척도를 금리 인상의 속도와 폭, 기간 3가지로 분류한 파월은 지금까지 충분히 빠르게 금리를 올린 것은 맞지만, 앞으로 금리 인상 기간이나 폭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상의 속도는 좀 늦출 수 있지만, 얼마나 더 오랫동안 얼마만큼 금리를 더 올릴지는 현재로서는 단언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연준의 통화 긴축이 너무 늦었고, 이미 물가가 너무 올라 통화 긴축이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유발하지 않고 물가 안정 효과를 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파월 미국 연준 의장도 경기 침체를 유발하지 않고 물가가 안정되는 연착륙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말했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경기 침체와 실업률 상승이 유발되는 수준까지 금리를 올리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중앙은행의 금융통화정책이 금융시장을 통해 실물경제에 전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금융시장의 안정은 연준의 의도와 상반된 결과이고, 앞으로 통화 긴축이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와 통화량을 조절하는 금융통화정책은 그 여파가 광범위하지만, 언제 어떻게 그 효과가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언제 갑자기 실업률이 급등하고, 경기가 공황 상태에 빠질지 누구도 확실히 예측할 수 없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당분간 강한 금융 긴축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5월 발생한 테라와 루나 사태에 이어 지난 11일 발생한 세계 3위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 사태는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버블 붕괴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3조 달러에 육박했던 전 세계 가상화폐의 시가총액은 지난 20일 현재 8천300억 달러 수준으로 줄었다. 작년 초와 비슷한 수준으로 급격히 형성된 버블이 얼마나 빨리 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금융 위기 발생 시 회복 기간: 1. 주가 2. GDP 3. GDP 대비 국가 부채, 단위: 월 (자료: 브릿지워터)

"금융 위기 시 주가 원상 회복에 10년…신중한 판단 필요"

미국의 헤지펀드 브릿지워터(Bridge Water)의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지난 100년 동안 GDP 3% 이상이 축소된 48개 금융 위기를 분석한 보고서 '금융 위기를 항해하는 원칙(Principles for Navigating Big Debt Crises)'에서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도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에 따라 주가가 6회에 걸쳐 반등하는 약세장 속의 랠리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기간 동안 주가는 16%에서 48%까지 반등하기도 했지만, 대공황 시기 주가는 최고치 보다 최대 89%가 하락했다. 금융 위기 발생 시 주가는 평균 50%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브릿지워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금리를 올리고 신용 공급을 축소하는 레버리지 축소(deleveraging)로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 경제활동이 이전 상황으로 회복하는 데는 평균 5년에서 10년이 걸렸고, 주가가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는 평균 10년 정도가 걸렸다.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이라는 말도 바로 이런 현상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통화량을 축소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이다. 초저금리와 막대한 초과 유동성이 초래한 버블을 끄기 시작한 지 이제 8개월, 각국 중앙은행들의 레버리지 축소는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오는 24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현재 3%인 기준금리를 또 한 번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연준도 다음달 13일과 14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열고 현재 3.75~4%인 기준금리를 0.5%p 이상 올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 금리가 플러스 상태가 돼야 잡힌다는 말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7%, 기대인플레이션율은 5%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최소한 기대인플레이션율 5%보다는 기준금리를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제임스 블러드(James Bullard)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주 목요일 미국 CNBC 방송에서 "현재의 기준금리는 물가를 잡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적정 기준금리는 5%에서 7% 사이임을 시사했다.

물가를 잡기 위한 각국 중앙 은행들의 통화 긴축은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예상하지 못한 위기를 몰고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중하고 보수적인 투자자들의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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