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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스포츠 94편] '인종차별 반대' 동참했다가 평생 배신자로 낙인찍힌 백인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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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머그의 스포츠야사 토크 프로그램 '입으로 터는 별별스포츠'! 과거 스포츠에서 있었던 별의별 희한하고 기괴했던 일들을 스포츠머그 최희진 기자와 스포츠기자 경력 32년인 SBS 스포츠취재부 권종오 기자가 함께 소개해드립니다.
 
이번 편은 조국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올림픽 영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육상 남자 200미터 시상식 때 올림픽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미국의 두 흑인 선수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펼친 겁니다.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치켜들었습니다. ‘블랙파워 설루트(Black power salute)’라 불리는 침묵시위로,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인종차별을 규탄한 겁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모든 정치적 표현을 금지하는 올림픽 헌장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두 선수를 올림픽 선수촌에서 추방했고, 미국 올림픽위원회도 이들의 선수 자격을 박탈했습니다. 당시 미국 출신의 백인인 브런디지 IOC 위원장은 심지어 ”일부 몰지각한 니그로들의 추태“라며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은메달리스트였던 호주의 피터 노먼 역시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노먼은 백인이었지만 두 선수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뜻을 같이 하며 시상식 때 가슴에 OPHR(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s, 인권을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 배지를 달았습니다. 이로 인해 노먼은 조국 호주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당시 호주에서도 ‘백호주의’라는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이 만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주 주류 사회에서는 흑인들의 뜻에 동참한 노먼의 행동을 못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노먼의 시련은 스미스와 카를로스 두 미국 선수들보다 더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이후 흑인 민권운동의 영웅으로 대접받았지만, 노먼은 조국 호주에서 오랜 기간 멸시와 냉대에 시달리다 2006년 10월 64세를 일기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노먼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노먼의 장례식에 참석해 관을 운구했습니다.
 
노먼이 세상을 떠나고 6년 뒤인 2012년 8월 호주 연방의회는 노먼에게 ”호주인들의 처사가 가혹했다“며 뒤늦은 사과를 했고, 호주 올림픽위원회는 2018년 노먼에게 사후 유공 훈장을 수여하며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습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은메달리스트 피터 노먼의 이야기 별별스포츠에서 감상하세요.
 
(글·구성 : 최희진, 영상취재 : 홍종수·신동환, 편집 : 김석연, 디자인 : 인턴 김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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