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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아듀, 장 뤽 고다르…"다 잘된 거야"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43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출간된 어느 영화 서적 표지에 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인상적인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선글라스를 쓰고 담배를 입에 문 채 필름을 들여다보고 있는 한 영화 감독. 영화는 ‘감독의 예술’임을(요즘엔 그때그때 다른 것 같습니다만)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사진. 바로 누벨바그의 기수이자 ‘현대영화의 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랑스의 영화 거장 장 뤽 고다르의 젊은 시절 모습입니다.
다 잘된 거야 영화

       LA에서 ‘오징어 게임’의 낭보가 전해지던 날, 스위스에서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장 뤽 고다르 91세로 사망. 1930-2022. 

사실 너무나도 전설적인 이름이라 장 뤽 고다르 감독이 타계했다는 뉴스에 잠깐 어리둥절했습니다. 아, 이분이 아직 생존해 계셨구나.
  장 뤽 고다르는 영화를 재발명했다는 평가를 받는 감독입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데뷔작인 “네멋대로 해라(1959)”는 점프컷과 들고 찍기(핸드헬드), 배우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하기 등 새로운 영화 문법으로 미국의 영화감독 D.W. 그리피스가 정초한 이래 (지금까지도) 세계영화계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문법을 뒤흔들었습니다.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시청자에게 직접 말하는 장면은 장 뤽 고다르의 유산인 것이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장 뤽 고다르의 타계 소식에 “국보를 잃었다”며 애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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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친숙한 프랑스의 영화인이라면 또 누가 있을까요? “라붐(1980)”, "유 콜 잇 러브(1989)"의 소피 마르소를 으뜸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때 중고생들의 '책받침 여신'이었고 한국 TV광고에까지 나왔던 적이 있으니까요. 때마침 오랜만에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 한 편이 국내에서 개봉했습니다.  제목은 “다 잘된 거야”.
  ‘끝을 선택하고 시작된 조금 다른, 작별’이라는 카피가 인상적인,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지난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입니다.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져 얼굴 한 쪽과 오른쪽 신체가 마비된 아버지 앙드레. 때로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게 된 아버지는 병실로 찾아온 딸 엠마뉘엘(소피 마르소)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합니다.
 
  “한 달 후면 나는 85세다. 이젠 거동도 불편하고 평범한 일상 활동도 힘들어졌다. 좋아하는 일도 즐길 수 없고. 내가 열 살만 젊었어도 싸워 볼텐데 사실 이마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해. 더는 이 상태로 살고 싶지 않다. 이런 삶은 원치 않아. 그러니 나는 이젠 죽고 싶다. 이게 내 뜻이야…도와줘. 끝낼 수 있게.”

  소피 마르소와 여동생은 혼란에 빠집니다. 평생 고집스럽고 이기적으로 굴었던 아버지라 마음을 돌리기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아버지의 죽음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딸들에게 다정한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그러나 노인이 된 아버지는 아이가 됐습니다. 돌봄 관계가 역전된 겁니다. 딸들은 양가적인 감정이 듭니다. 
  소피 마르소는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피동적 존재인 동시에 스스로 죽음을 실현할 수 없는 아버지의 죽음을 이뤄내야만 하는 능동적 주체가 돼버렸습니다.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주자니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고 고집불통 아버지의 간곡하고 단호한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그것대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윤리적 문제이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생활의 문제-
 
   프랑스처럼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에서도 현재는 안락사, 존엄사, 조력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이라도 인위적으로 죽음을 맞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고, 법과는 별개로 현대 의료 기술의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마지막까지 죽음을 ‘저지’하지 않는 것은 불효라는 죄책감이 따라옵니다. 때로는 환자를 위한 것인지 산자를 위한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소피 마르소는 결국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의 한 전문 기관을 수소문합니다. 영화는 이후 부모 자식 간의 글자 그대로 ‘생이별’을 향해 가는 굉장히 어색하고도 정신적으로 힘겨운 순간을 향해 절뚝거리며 나아갑니다.

영화 "다 잘된 거야" (제공: 더쿱디스트리뷰션)
     이 영화에서 아버지 앙드레 역을 맡은 앙드레 뒤솔리에는 장 뤽 고다르와 함께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고(故)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한 바 있는 노장 배우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프랑소와 오종 역시 프랑스의 국립영화학교인 라 페미스에서 에릭 로메르를 사사했습니다. 이래저래 이 영화는 장 뤽 고다르와 인연이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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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뤽 고다르는 존.엄.사.로 세상을 떴습니다. 고다르의 사망 소식을 처음으로 전한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고다르 지인을 말을 인용해 고다르는 (심각하게) 아프지는 않았으며, 여생을 보내던 스위스의 법이 허용하는 의학적 도움을 받아 죽음을 선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고다르가 여러가지 난치성 질환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살만큼 살았다”며 명확한 의식으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했으며(wanted to die with dignity) 조력자살(assisted suicide)로 숨졌다고 장 뤽 고다르의 오랜 법률자문역의 말을 빌어 전했습니다. 또 고다르는 자신의 죽음 방식이 알려지기를 원했다고 리베라시옹은 전했습니다. 조력자살은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가 직접 복용해 죽음에 이르는 적극적인 존엄사입니다. 고다르 별세 당일 프랑스 대통령실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토론에 돌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개념과 관련해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 존엄사, 조력사, 조력자살 등 다양한 단어가 등장하는 것만 봐도 이 문제가 앞으로 큰 사회적 이슈로 부상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 뤽 고다르의 대표작 “네 멋대로 해라”의 원제는 “숨의 끝”(À Bout de Souffle)입니다.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1983년 할리우드 리메이크 버전의 영어 제목은 브레드리스(Breathless)”.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정치화다"라고 부르짖었던 장 뤽 고다르는 마지막까지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고 정치적으로 떠났습니다. 자신의 영화처럼. 내 멋대로. 숨의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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