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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산가족' 회담 제안한 날…김정은은 또 "천만에!"를 외쳤다

리선권 앞으로 보낸 통지문…리선권은 열혈 박수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하는 것이 맞았을까.

추석을 앞두고 남북이 발신했던 지극히 일방향적인 메시지를 보면서 머릿속에 이 문장만 남았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8일, 통일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에게 오래간만에 소위 '장'이 열렸다.(기사 쓸 거리가 생겼다는 정도로 풀어 쓸 수 있다.) 남북 관계가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상황에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이산가족 문제 해결하기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공개 제안한 것이다. 권 장관은 회담 날짜와 장소, 의제, 형식 등을 모두 열어두고 북한의 희망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응답하면 더 얘기해보자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회담 개최를 직접 제안한 것을 처음이다. 통일부가 넉 달 전 코로나19 방역 협력을 하자며 대북 제안한 적은 있지만 당시에는 실무 접촉 수준이었다. 물론 이런 의사가 온전하게 전달된 것도 아니다. 북한은 남북연락사무소를 통해 보내려고 한 우리 측 통지문을 수령하지 않았다. '수신 거부'나 마찬가지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회의 2일회의가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9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권영세 장관이 북한에 회담을 제안한 날 김정은 총비서는 핵과 관련한 법을 만들었다고 선포했다. 비핵화 얘기가 공식적으로 불법이 된 날이다. 북한이 보도를 통해 이를 발표한 것은 8월 9일이지만, 해당 발언이 나온 날짜는 8일이다. 즉 장관이 남북 간 대화를 이야기한 날이다. 권 장관은 '냉면 목구멍' 발언으로 잘 알려진 리선권 통일전선부장(우리 국정원장격) 앞으로 회담을 제안했는데, 리선권은 이날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에게 열렬하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김정은 리선권

김정은은 이날 '천만에!'를 외쳤다. 미국이 '사상최대의 제재 봉쇄'로 인민들 불만을 야기시켜 북한이 스스로 핵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이는 오판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김정은이 '천만에!'를 외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처음 '천만에!'가 나온 것은 두 달 전 7월 27일 정전협정기념행사에서였다. 이번이 미국을 향한 '천만에!'였다면 당시는 윤석열 정부를 향한 '천만에!'였다. 김정은은 선제타격론을 겨냥해 "그런 위험한 시도는 즉시 강력한 힘에 의해 응징될 것이며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했다. 공세적 발언이었다. 대통령 호칭 빼고 '윤석열이'라고 부른 것도 바로 이날이었다. 북한은 한미를 향해 열심히 '천만에!'라고 쏘아붙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주민들에게 부지런히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적인 사안이다. 그러니 추석을 앞두고 고령의 가족을 위해 정부가 메시지를 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산가족 입장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정부보다 이런 발표라도 하는 정부가 나을 것이다. 

다만 명분이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뜬금없는 제안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인도적 사안과 정치를 엮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원칙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야기하는 것이고 물밑의 현실은 현실이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남북 간 순전히 인도적 사안으로 통용되고 있는가. 특히 제안을 수용해야 할 당사자인 북한이 이를 인도적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윤석열 정부는 '담대한 구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담대하다는 평가의 주체가 누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북한이 어떤 입장을 보이든 간에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조이다. 김여정은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한다.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는 모욕적 발언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북한이 이산가족 회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제안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옳은 일이었을까.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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