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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림동 조원로19길 의인들, 그들은 누구인가?

[취재파일] 신림동 조원로19길 의인들, 그들은 누구인가?

영상은 누가 촬영했을까?

 
SBS에 8월 11일 새벽에 영상 제보가 왔습니다. 8월 8일 밤, 집중 호우 당시 반지하에 고립된 한 남성을 시민들이 구출하는 모습입니다. 영상 분량은 약 3분이었습니다. 정말 생생했습니다. 생사 갈림길에 선 한 남성을 구출하는 장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담겼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버텨!" 반지하 고립 남성 구해낸 신림동 의인들 (지난 11일 8뉴스 다시보기)

이 영상은 나종일 씨가 촬영했습니다. 나종일 씨는 당시 신림동 조원로19길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한 쪽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다가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촬영하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나종일 씨는 영상에 나오는 시민들이 상을 받을 수도 있도록 해주고 싶어 언론에 제보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SBS를 포함한 여러 언론사가 나종일 씨의 제보가 있었기에 세상에 ‘조원로19길 의인들’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됐습니다. 나종일 씨도 다른 의인들과 마찬가지로 큰 역할을 한 장본인입니다.
 

반지하 고립 경위는?


취재진은 당시 반지하에 고립됐던 이승훈 씨를 8월 11일 오후 3시쯤 어렵게 만났습니다. 이승훈 씨가 살고 있었던 반지하는 빗물에 잠겼었던 만큼 당장 살 집이 없어 근처 숙박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건물 관리자가 이승훈 씨 연락처를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대신에 영상에 나오는 의인 한 명이 이승훈 씨의 지인 번호를 알고 있었고, 수소문 끝에 구조 현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신림동 조원로19길 의인들1

이승훈 씨는 지난 8일 밤, 기록적인 폭우 당시 집에 있었습니다. 빗물이 방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심각해질 줄 몰랐다고 합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불어난 빗물에 고립돼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승훈 씨는 잠깐 바닥에 있던 전선이 빗물에 젖지 않도록 선반 위로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던 사이 빗물이 정강이까지 차자 현관문을 열려고 했는데, 수압 때문에 열리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탈출로는 반지하 창문이었습니다. 바깥 상황은 더 좋지 않았습니다. 바깥 지면 수위도 이미 사람 다리가 잠길 정도였습니다. 반지하 창문 역시 수압 때문에 열리지 않았습니다.

신림동 조원로19길 의인들2
 

119신고 급증에 통신장애까지


이승훈 씨는 일단 119에 신고했습니다. 지난 8일 밤은 이미 여러 반지하 집이 침수돼 신고 전화가 급증했을 때입니다. 구조대가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통신장애까지 겹치면서 전화를 거는 것조차 잘 되지 않았습니다. 문자 메시지 전송도 1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이승훈 씨는 일단 지방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고, 회사 동료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회사 동료가 급히 현장에 왔습니다. 이때부터 조원로19길 의인들과 함께 구조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① 수영 의인
 
영상 속에는 여러 의인들이 등장합니다. 이 가운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건 은석준 씨입니다. 은석준 씨는 맞은편 다세대주택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당시 시민들이 근처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사람이 반지하게 고립돼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문제는 반지하 몇 호에 사람이 갇혀 있는지 구조하려는 시민들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석준 씨는 이미 빗물로 잠긴 반지하 복도 진입을 시도합니다. 당시 1층 공동현관문은 수압 때문에 열리지 않았습니다. 은석준 씨는 대신에 외벽을 타고 2층 복도 창문으로 진입했습니다.
 
신림동 조원로19길 의인들3
 
은석준 씨는 곧바로 1층을 지나 반지하 복도 쪽으로 내려가려 했습니다. 이미 반지하 계단이 물에 잠겨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지하 호수를 파악하려면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수위가 높아 바닥에 발이 닿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수영을 해야만 했습니다.
 
은석준 씨는 다행히 수영을 할 줄 알았습니다. 지체 없이 헤엄쳐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빗물이 더 불어난다면 은석준 씨 전신이 물에 잠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은 씨는 사람 소리가 들리는 호수를 확인했고, 이곳이 103호인 것을 파악하고 밖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나머지 시민들은 은 씨의 정보를 바탕으로 103호 반지하 창문을 깨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은석준 씨는 사람들이 유리창을 깰 때도 장비를 전달해주는 등 구조 순간까지 함께 있었습니다.
 
② 소화기 · 몽키스패너 의인
 
이승훈 씨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반지하 창문을 깼기에 가능했습니다. 당시 창문은 이미 빗물에 5분의 4정도가 잠겼습니다. 더군다나 반지하 창문 바로 옆에는 담벼락이 있습니다. 창문과 담벼락 사이 공간은 약 70cm입니다.
 
시민들이 빗물 속으로 손을 넣어 유리창을 깨는 건 쉽지 않습니다. 물의 저항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때 김진학 씨와 권우재 씨가 활약합니다. 이들은 주변 장비를 활용해 창문을 깨기로 합니다. 권우재 씨는 소화기로 창문을 수차례 내리쳤습니다. 김진학 씨는 소화기로도 깨지지 않자 몽키스패너로 다시 창문 깨기로 시도합니다.
 
신림동 조원로19길 의인들4
 
김진학 씨가 창문 가장자리 부분을 계속해서 가격했고, 이때 창문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권우재 씨도 쉴 새 없이 소화기로 창문을 쳤습니다. 안에 있던 이승훈 씨가 빠져나올 만한 공간이 생겼습니다. 이승훈 씨는 얼굴 부위까지 빗물이 차오른 상황에서 극적으로 나올 수 있게 됐습니다. 김진학 씨와 권우재 씨 모두 창문을 깨다가 손을 다치기도 했습니다. 김진학 씨는 부상 정도가 심했는데, 손가락 세 바늘 꿰맸습니다.
 
신림동 조원로19길 의인들5
 
③ 담벼락 의인
 
박종연 씨도 현장 최전선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박종연 씨는 이미 대각선 쪽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고립된 두 명을 구출한 의인입니다. 두 반지하 가구에서 각 한 명씩 구조하고, 이승훈 씨가 갇힌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현장이 담벼락에 때문에 접근이 어렵게 되자, 급한 마음에 담벼락을 넘어 가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담벼락에 올라선 박종연 씨는 구조 현장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보탰습니다.
 
신림동 조원로19길 의인들6

 ④ 직장 동료 의인
 
영상에는 계속해서 고립된 이승훈 씨에게 말을 건네는 인물이 나옵니다. 이승훈 씨의 회사동료입니다. 이승훈 씨가 반지하게 갇히자 도움을 요청해 현장에 오게 됐습니다. 동료 분은 인터뷰 요청을 거듭 고사해 할 순 없었지만, 이번 구조 과정에 역할을 한 의인입니다.
 
동료 분은 구조될 때까지 ‘침착해’, ‘조금만 버텨’ 등 여러 말을 건네며 이승훈 씨를 안심시켰습니다. 이 동료 분은 이승훈 씨가 극적으로 탈출하자 안아주는 모습이 영상에도 담겼습니다. 3분짜리 영상 가운데 가장 뭉클했던 순간이기도 합니다.
 
신림동 조원로19길 의인들7
 
⑤ 경찰 의인

 
SBS 영상에서 소개하지 못한 의인이 한 명 더 있습니다. 맞은편 다세대주택에 사는 서울 관악경찰서 소속 경찰 공무원 이태의 경장입니다. 이태희 경장은 경찰 공무원 신분으로 의인 인터뷰를 하는 게 부담스럽다며 다른 의인들을 더 치켜세워달라고 했습니다.
 
이태희 경장은 담벼락 의인 박종연 씨와 함께 조원로19길 일대 다세대 주택에 밖으로 대피하라고 알렸습니다. 그리고 반지하게 갇혀 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방범창을 깨고 구출해냈습니다. 이승훈 씨가 구조될 때도 현장을 지켰습니다.
 

폭우 속 반지하, 그리고 수압


반지하는 이번 폭우로 그 위험성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같은 날 신림동에서는 일가족 3명이 반지하 집에서 미처 나오지 못해 숨지기도 했습니다. 반지하 집에 빗물이 유입될 때 수압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가로 1m, 세로 1m인 넓이 1㎡ 공간은 수위가 1m 되면 물의 무게가 1톤이 됩니다. 바닥 면적이 넓어지면, 그만큼 수위가 조금만 높아져도 물의 무게가 금방 1톤이 됩니다. 내부에서 물의 무게를 이겨내고 문을 연다는 건 많은 힘이 필요합니다. 일가족 3명이 숨진 반지하 집도 현관 복도 면적이 직접 측정해보니 대략 5㎡입니다. 이곳에서는 빗물 높이가 20cm 만 차도 그 무게가 1톤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신림동 조원로19길 의인들8

따라서 반지하 집에 있을 때 빗물이 들어오면 일단 밖으로 나오는 게 상책입니다. 빗물 유입이 빠르지 않다면, 오히려 현관문을 열어놓고 다른 귀중품을 챙기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현관문 외에 다른 비상 탈출구가 있는지 숙지해야 합니다. 반지하 집은 창문이 비상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때 방범창이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방범창은 내부에서 해체가 가능한 것을 쓰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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