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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미국 '트럼프 수사'…그냥 '남의 나라 일'일까

[월드리포트] 미국 '트럼프 수사'…그냥 '남의 나라 일'일까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관심 사항이 아니지만 요즘 미국에서 가장 큰 뉴스는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 관련 수사입니다. 워낙 혐의도 많은 데다 사안도 간단한 게 아니어서 우리에게는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그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여온 다소 직설적이고 기이한 행태들 때문에 우리 국민들에게는 희화화된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1월 미 의회 난입 사태 때 지지자들이 모여 있는 의회 의사당 쪽으로 자신이 타고 있던 차를 돌리기 위해 운전석으로 넘어가 운전대를 탈취하려고 했다거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시위가 한창이던 때 백악관 주변을 가득 메운 시위대를 보고 "그냥 쏘면 안 되느냐", "다리에 쏘면 안 되느냐"고 했다는 증언까지… 통상적인 정치인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언급되면서 더욱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트럼프 수사, 미국을 흔들다

경찰차가 뉴욕의 트럼프 타워 앞에 주차되어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렇게 우리에게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수 있는 그이지만 이 전직 대통령을 둘러싼 수사는 미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거의 새 정권 초기마다 반복돼 온 터라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미국에서 전직 대통령 수사는 초유의 일입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유명한 닉슨 전 대통령조차 탄핵 직전까지 몰릴 만큼 수많은 증거들이 쏟아졌음에도 스스로 사임하자 사건은 일단락됐습니다.

물론 이런 미국의 정치 풍토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미 워싱턴포스트의 칼럼이 대표적입니다. 현지 시간 10일 이 신문 인터넷판에는 '미국, 전직 지도자 수사하는 민주 국가에 합류'라는 제목의 칼럼이 올라왔습니다. 필자는 "우파 언론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세계의 종말이 다가왔다고 느낄 것"이라며 FBI의 트럼프 전 대통령 자택 수색에 반발하는 공화당 지지층을 비꼬았습니다.

하지만 백악관 자료 유출 혐의 수사에 따른 걸로 보이는 FBI의 마러라고 별장 압수수색과 세금을 덜 내기 위해 가족 기업 자산 가치를 조작했다는 의혹으로 트럼프가 직접 검찰 조사를 받은 걸 놓고 공화당과 트럼프 지지층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게 몇몇 극열 지지층의 과잉 반응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사회 분열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현지 언론의 진단입니다.
 

뉴욕타임스 "아주 위험한 도박"

뉴욕타임스는 이번 압수수색과 관련한 10일자 기사 제목을 "High-stakes Gamble in Divided Nation"(분열된 나라에서 아주 위험한 도박)이라고 달기도 했습니다. 기사 도입 부문만 잠깐 소개해 보겠습니다.
 
"It was also a high-risk gamble by Attorney General Merrick B. Garland that the law enforcement operation at Mar-a-Lago, the former president's sprawling home in Florida, will stand up to accusations that the Justice Department is pursuing a political vendetta against President Biden's opponent in 2020 and a likely rival in 2024."

"전직 대통령의 플로리다 집을 압수수색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2020년 대선 상대였고 2024년 아마도 경쟁자가 될 전직 대통령에게, 법무부가 정치적 복수를 하고자 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란 점에서 그것은 또한 갈렌드 법무부 장관이 실행한 아주 위험한 도박이었다."
 
실제로 공화당과 트럼프 지지층에서 '마녀사냥', '사법권 무기화' 같은 비난이 쏟아지자 압수수색 직후 입을 굳게 다물었던 갈렌드 장관도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자신이 직접 승인했으며 연방법원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영장을 발부했다고 공식 확인했습니다 '정치적 수사'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어 압수수색에 대해 '상당한 근거'가 있다면서 이 사안에 대한 '상당한 공익'을 근거로 마이애미 연방법원에 압수수색 영장 내용을 공개해 달라고 청구했다고 밝혔습니다.

메릭 갈랜드 미 법무장관

문제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이런 일들이 미국 내 정치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는 독특한 전직 대통령 한 사람 정도로 보일지 몰라도 트럼프의 주장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조하면서 극단적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와 관련된 기사에 붙은 댓글들을 보면 같은 사안에 대해 미국인들이 서로 얼마나 다르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천조국'에서 보는 '반면교사'

제가 굳이 이른바 '천조국'인 미국 걱정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이런 극단적 대결 정치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데 주목했습니다. 최근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적, 사회적 갈등은 작지 않은 이슈입니다. 지역 간, 세대 간, 빈부 간 갈등에 이어 정치적 관점을 둘러싼 대립이 정치인들을 넘어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상당한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란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최적점을 찾아가는 과정인 만큼 시끄러운 게 당연합니다. 다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적대시하고 상대편에서 하는 행동을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면 생산적인 합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나만 옳고 상대는 격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곳에서 민주주의가 설 자리는 없을 겁니다. 지금 미국의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 관련 소식도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는 아니지 않을까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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