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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21세기 중국, 146년 전 일본…그들이 말하는 '자주(自主)'

[월드리포트] 21세기 중국, 146년 전 일본…그들이 말하는 '자주(自主)'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요즘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탓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특히 중국의 팽창을 막으려는 미국이 동북아, 그들 용어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거세게 충돌하면서 주변국들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로 좁혀 보자면 안보 분야에서는 단연 '사드(THAAD) 배치' 문제가 화두입니다.

사드가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느냐를 둘러 싸고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중국의 주장처럼 중국의 안보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건 아니라는 게 중론입니다. 핵심은 사드의 AN/TPY-2 레이더가 중국 내 탐지에 이용되느냐 하는 건데 관련해서는 논란이 한창이던 당시 SBS 국방 전문 기자가 썼던 글로 대신하겠습니다.
▶ [취재파일] '종말 모드' vs '전진배치 모드'…사드 레이더의 심각한 오해

 

사드에 대한 중국의 집착

지난 9일 박진 외교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왕이 외교 부장을 만났습니다. 미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공급망 대화, 이른바 '칩4' 참여에 대한 우리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역시나 사드 문제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한중 장관 회담 결과 보도자료를 내놓은 것과 별개로 따로 사드 관련 논의 내용을 담은 자료를 게시한 것만 봐도 중국이 얼마나 이 부분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측 자료에는 사드와 관련해 '안보 우려 중시', '적절한 처리' 등의 언급이 양국 외교 장관을 주어로 표시돼 있었지만 우리 측 설명에는 그런 내용은 없었습니다. 우리 외교부는 양국 외교 장관이 사드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 교환을 하고,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양측은) 서로 안보 우려를 중시하고 적절히 처리하도록 노력해 양국 관계에 영향을 주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도 회담 결과를 소개하면서 "기본적으로 양국 외교 장관 모두 깊이 있게 각자의 사드 관련 입장을 명확하게 개진했다"며 "동시에 중국 측이나 한국 측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향후 한중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는 점에 명확하게 공감했다. 이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중국이 말한 '안보 우려 중시'는 주한미군의 사드 레이더가 중국의 전략적 동향을 탐지할 수 있다는 중국 측 문제 제기에 대한 존중, 또 '적절한 처리'는 이른바 사드의 '3불', 그러니까 사드 추가 배치 금지,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 동맹 불참을 요구한 걸로 해석됩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1한(限)'으로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의 운용도 제한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중국의 반발

사드와 관련된 한중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압축하면 ①사드에 대한 양국 입장을 각자 명확히 했다 ②그럼에도 사드 문제가 한중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눈에 띄는 건 중국이 결사 반대하던 '칩4' 참가를 결정하고 사드 배치도 국익에 따라 판단한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중국 측 반발이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회담 후 중국 외교부가 올린 내용입니다.

박진 장관, 한중 외교장관회담 참석 (사진=연합뉴스)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박진 외교부장과 2022년 8월 9일 회담을 하는 동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의 안보 우려를 중시해 양국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선처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2017년 10월 중국과 '사드 봉합'에 합의할 당시 분위기는 훨씬 화기애애 했지만 사실 드러난 결과만 놓고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른 점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당시 우리 외교부가 발표한 협의 결과입니다.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간 협의결과>

최근 한중 양국은 남관표 대한민국 국가안보실 제2차장과 콩쉬안유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부장조리 간 협의를 비롯해 한반도 문제 등과 관련하여 외교 당국 간의 소통을 진행하였다.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차 확인하였으며 모든 외교적 수단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기로 재천명하였다. 양측은 이를 위해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한국 측은 중국측의 사드 문제 관련 입장과 우려를 인식하고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는 그 본래 배치 목적에 따라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 것으로서 중국의 전략적 안보이익을 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중국 측은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를 반대한다고 재천명하였다. 동시에 중국 측은 한국 측이 표명한 입장에 유의하였으며 한국 측이 관련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하기를 희망하였다. 양측은 군사 당국 간 채널을 통해 중국 측이 우려하는 사드 관련 문제에 대해 소통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중국 측은 MD 구축,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 협력 등과 관련 하여 중국 정부의 입장과 우려를 천명하였다. 한국 측은 그간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혀온 관련 입장을 다시 설명하였다.


양측은 한중 관계를 매우 중시하며 양측 간 공동 문서들의 정신에 따라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발전을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양측은 한중 간 교류 협력 강화가 양측의 공동 이익에 부합된다는 데 공감하고 모든 분야의 교류 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양측은 군사당국 간 채널을 통해 중국 측이 우려하는 사드 관련 문제에 대해 소통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정도가 좀 더 다른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시나 큰 틀에서 달라 보이진 않습니다. 이 발표 뒤 우리 측은 사드 문제가 '봉합'됐다며 제재 조치 완화를 기대했지만 중국의 관영 영문 매체 글로벌 타임스는 "양측은 한중 간 교류 협력 강화가 양측의 공동 이익에 부합된다는 데 공감하고 모든 분야의 교류 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협의 결과 문구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문화와 경제 협력이 예전만큼 회복되기는 어려울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중국의 제재 조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자주(自主)'로 포장된 외교 전술

안보와 경제 등 모든 측면에서 미중 간 패권 다툼이 더 치열해지고 있는 최근 상황에서 중국 턱 밑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를 지나치게 압박할 경우 미국 쪽으로 완전히 돌아서게 만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자면, 중국은 우리가 공을 들였을 때도, 상대적으로 우리 목소리를 더 냈을 때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미중 간 경쟁 구도라는 복잡한 함수는 좀 더 들여다 볼 부분이 있겠습니다.

중국의 이런 속내는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앞두고 내놓은 중국 관영 매체의 사설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 환구시보와 그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9일 '한국이 독립적이고 자주적 외교를 견지하면 자연히 존중을 받을 것'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사설은 윤석열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면담하지 않은 데 대해 "중국 사회는 한국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외교와 중국에 대한 합리성, 특히 일본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합리성을 보인 것으로 간주한다"고 평가하며 "그 결과 한국은 중국 사회로부터 인정과 존중을 받았다"고 적었습니다.

'자주'라는 말로 한국이 미국 사이에 일정한 거리 두기를 요구한 건데, 이 대목에서 문득 생각난 게 있었습니다. 146년 전 강화도 조약입니다. 1876년 조선이 일본과 맺은 강화도 조약은 '제1조 조선은 자주(自主)의 나라로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로 시작됩니다. 여기에서도 '자주'가 등장합니다. 물론 이 때 사용된 '자주'는 청나라의 종주권을 부인하기 위해 일제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용어입니다. 미국이 우리 종주국일 리 없으니 지금 상황과는 맞지 않습니다.

다만 일본이 '자주'라는 용어를 써서 조선을 청에서 떼어 내려 한 것이나 지금의 중국이 '자주'라는 말로 한미가 더욱 밀착하는 걸 경계한 것이나 기본적인 맥락은 같아 보입니다. 146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강대국 사이에 놓여 있고 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 받고 있다는 점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사진=외교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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