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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한국에 '우영우'가 있다면, 미국에는 '빈센트'가 있다

김지나ㅣ미대 나온 글쟁이. 미국에서 패션 비즈니스로 활동 중인 칼럼니스트.

우정 협력 합동 (사진=픽사베이)
어느 날부터인가 내 딸은 '빈센트'라는 남자아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좋아하는 남자아이인지 슬쩍 물어보면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도 틈만 나면 빈센트 이야기를 했다. 그 아이가 궁금하던 차에 딸아이가 빈센트와 프로젝트를 같이 하기로 했다며 빈센트 집에 데려다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난 당연히 'OK'를 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이름도 멋지고...) 그때 우리 아이가 6학년, 이제 막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에 접어드는 딸이나, 사춘기 딸을 둔 엄마나 그 어느 때보다도 딸의 남자친구라는 존재에 예민한 때였다.

한적한 동네였다. 띄엄띄엄 잔디들 사이로 자그마한 집들이 단정하게 놓여있었고 오래되었지만 고즈넉하면서 푸근했다. 내가 사는 메릴랜드는 한국과 위도가 정확히 같은 선상(38.5도)에 있어서인지 사계절 또한 일치할뿐더러 그날그날 날씨마저 비슷하다. 개나리 피는 4월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노랗고 자그마한 개나리꽃이 첫봄을 알리고, 단풍 드는 한국의 10월처럼 여기에도 나뭇잎들이 울긋불긋 해지며 가을맞이에 들어선다. 감상에 젖어 언뜻 고향의 향기에 취할 때쯤 저 멀리 자그마한 정원에 호박 넝쿨이 눈에 확 들어왔다.

빈센트 집이었다. 초인종을 누르니 삽살개와 비슷하게 생긴 누런 강아지가 손님을 반기며 문이 열렸는데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빈센트 엄마의 모습이었다. 어? 나와 같은 얼굴을 한 한국 여자였다. 약간은 곱슬한 머리를 하고 하얀 얼굴에 살짝 주근깨가 있는 단아한 모습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동양 사람을 만나다니. 다른 건 둘째 치고 너무나 반가웠다. 그리고 그 옆 작은 꼬마가 내 딸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빈센트였다. 근데 체구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우리네로 말하면 난쟁이 같았다(한 3~4살 된 아이쯤). 왜소증이었던 것이다. 인종이 섞여서인지 동양적인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목구비는 서양적이라 빈센트라는 이름처럼 매력적으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안내를 받아 일단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은 까만 자개장이 시선을 압도했다. 커다란 난이 쳐진 액자며 8폭짜리 병풍이며, 하다못해 오래된 기다랗고 가는 곰방대까지 한국의 한옥에서나 볼 수 있는 고풍스럽고 멋스러운 장식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2세대로 그 시절의 향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사는 진정한 한국인이었고 남편은 잘생긴 미국인이었다. 부지런하고 영특한 한국 여자와 매너 좋고 조용한 미국 남자가 만나 아들딸을 낳고 그림같이 사는 가족이었다.

그날 이후에도 딸아이의 입에서 빈센트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더니 둘이서 러닝 메이트로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나와 빈센트 엄마는 틈나는 대로 집에서 포스터 만드는 일과 간식거리를 날랐다. 아이들을 도와주는 선거인단도 꽤 모였다. 10여 명의 어린아이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학교 발전에 뭐가 좋을지를 토론하고 공약을 만들었다. 아이들이라고 우습게 봤다가는 큰코다치겠다 싶었던 게, 스쿨버스 시간 조정부터 학교 아침방송까지 시정하고 싶은 사항들을 포스터에 삐뚤빼뚤 써 내려갔다. 미국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빈센트의 왜소증은 안중에도 없는듯했다. 오히려 키가 작아 안 쓰럽게 생각했던 나의 불확실성에 대한 염려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딸아이와 빈센트가 함께 다닌 학교.

그런 징후는 내가 미국에 도착했던 20여 년 전부터 감지했음을 깨달아야 했다. 학교에서는 심한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사전 조율을 통해 아이의 키에 맞게 수도꼭지나 문 손잡이를 낮추는 작업을 했다. 또 그 아이를 도와줄 전담 선생님이 배정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어릴 때부터 다운증후군, 또는 자폐거나 휠체어 타는 아이는 물론 거의 침대에 누워서 학교에 오는 아이를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 장애를 가진 아이를 위해 친구들끼리 서로 도와주려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장애인을 이상한 눈으로 본다는 자체가 이상할 정도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학교생활을 한다.

왜소증이라 더 당당해 보였을까. 뭐하나 승산이 없을 것 같았던 아이들이 회장과 부회장의 영예를 안았다. 그렇게 행복한 중학교 생활이 시작되었고 아이들 친구가 어른 친구도 되어 서로 들락날락 분주히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동네 근처 기다린 외길에 트레일러가 줄줄이 달린 커다란 트럭과 작은 자동차가 충돌한 사고 현장 장면이 TV에서 실시간으로 중계 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동차에는 다름 아닌 빈센트 가족이 타고 있었다.

자동차가 트럭과 정면충돌하면서 몸집이 작은 빈센트는 그대로 튕겨 나가 길에서 숨을 거두고 운전을 했던 엄마 또한, 의식불명이 되어 헬리콥터로 후송되는 도중 운명을 했다. 헬리콥터에서 촬영되는 모습은 기차가 선로를 잃어 휘어져 버린 고장 난 장난감처럼 너무도 참담한 장면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아이와 친구들은 충격에 매일 울음바다였고 어른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장례식장에서 그렇게도 찬란하게 살다가 떠난 샛별을 기리는 슬픔으로 친구들의 눈물은 빈센트의 처절하도록 하얀 얼굴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빈센트의 얼굴을 새긴 동그란 배지를 만들어 한동안 가슴에 꽂고 다녔고 졸업 앨범에도 빈센트의 밝은 모습이 남겨졌다. 그 뒤 몇 해는 기일마다 꽃다발을 들고 무덤에 가 슬픔을 애도했다.

빈센트가 비장애인과 똑같이 바이올린을 켜고 수영을 하고 회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보통 아이처럼 똑같이 키운 부모의 몫이 일차였겠지만 더 중요한 이차적인 이유는 바로 국가 차원에서 그들을 위한 다각적인 기반 시설과 끝없이 지원된 후원금이었고 제일 중요한 이유는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평등에서 기반 된 올바른 시각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장애인이다. 나를 비롯해 나의 가족, 나의 친구가 어느 순간 장애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선천적 장애가 있는 사람이 주위에 참으로 없다 싶을 만큼 꽁꽁 숨겨진 곳 또한 한국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 한 가지는 장애를 앓는 자식을 가진 부모들의 로망이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얼마 전 방영된 한 드라마에서는 다운증후군을 지닌 그림 작가가 등장하면서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변호사 우영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드라마가 한국을 뒤흔들고 있다. 자폐는 정도에 따라 다양한 행동의 차이를 보이는데 미국에서 자폐는 그야말로 흔한 병 중 하나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있다. 스스로 자폐가 있다는 말을 '난 우울증이 있어'처럼 가볍게 말하는 정도이고 내 딸은 정신 상담 중에 알게 되었다며 '나는 ADHD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가볍게 지나가며 흘리듯 말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도 자신은 ADHD라고 말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빈센트의 배지는 아직도 딸아이 방 커튼 모서리에 꽂혀 있다. 언뜻, 밝게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슬픈 미소를 지어본다. 장애아로 태어나 빈센트처럼 찬란한 이름을 남긴, 그렇게 짧은 생애를 마친 아이를 난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우영우가 장애는 그저 조금 불편한 일일 뿐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걸 똑똑히 보여주며 한국인들의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는데 기여하고 있다면, 꼬마 빈센트는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불편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당당하고 멋지게 웃을 수 있다는 행복한 희망을 전해준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인-잇 #인잇 #김지나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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