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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청와대는 어떻게 될까요?

상식적 정책과 합리적 행정 절차를 기대하며

청와대 외경 (리사이징)

지난 21일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통령 업무 보고가 문화계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새 정부 들어 개방된 청와대의 활용 방안을 보고했는데, 미술관을 위주로 한 '복합문화단지'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은 콘텐츠 제작 지원을 비롯한 다른 모든 문화 정책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우선 청와대 본관 1층과 관저 일부, 영빈관을 미술관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에 대해 일부 미술계는 환영 의사를 밝혔지만, 문화재 관계자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청와대의 구본관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에 야당이 포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옛 조선 총독 관저로 쓰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철거된 건물을 '원형 복원'하겠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문체부가 뒤늦게 '미니어처' 형식의 모형 제작이라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문체부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25일에는 문화재청의 자문기구로 문화재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문화재위원회가 긴급 모임을 갖고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나 역사성을 고려한 조사·연구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활용 방안이 나온 데 우려"를 표명했고, 공무원노조 문화재청지부도 '청와대의 역사성과 개방의 민주성을 도외시하고 거대하고 화려한 궁전으로 되돌리는 퇴행'이라며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급기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도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청와대 활용 방안에 대해 정부 내 혼선과 소통 부재 상황이 노출됐다"며 "국무총리 산하에 TF를 만들어 시한을 갖고 좀 더 면밀하게 활용 방안을 마련해 국민들께 발표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밝혔습니다. 여러 기관들이 시간을 갖고 협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을 문체부가 성급하게 독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18일 대통령실이 청와대와 주변 지역 활용을 논의하기 위해 관리·활용 자문단을 구성하겠다고 했는데, 불과 3일 만에 문체부가 대통령에게 활용 방안을 보고했습니다.

청와대 외경 (리사이징)

그렇다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청와대 활용 방안은 실제로 어떻게 될까요? 정책 발표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몇 가지 실수를 하긴 했지만, 문체부 정책 추진 방향의 큰 틀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모든 설명 자리에서 청와대 개방에 대해 '위대한 역사적인 결단'이었다고 전제한 뒤 시작합니다. 그만큼 청와대 활용 주도권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어느 정도 합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정책 독주'로 비쳐지는 것 정도는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27일 열린 최응천 문화재청장의 취임 간담회는 그런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김포 왕릉뷰 아파트나, 훈민정음 상주본 회수 등 한두 가지 현안 질문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청와대 활용 방안 관련 질문이 1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문화재청장을 비롯해 주무국장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문화재청이 독립된 법령을 기반으로 독립적인 문화재 행정을 펼치는 기관이지만, 직제상 문체부의 소속기관이고 정해진 정부의 방침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청와대 외경 (리사이징)

문체부의 정책 방침대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청와대의 복합문화단지 탈바꿈에 절차상 두 가지 변수가 남아있긴 합니다. 우선 문화재청이 발주한 '경복궁 후원 기초조사 연구용역'입니다. <한국건축역사학회>로 용역 주체도 결정됐고, 조달청을 통한 계약만 앞두고 있습니다. 이 조사를 어느 정도로 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건축역사학회>가 석 달에 걸쳐 지표 조사(지표상에 노출된 유물·유적에 대한 확인을 통해 매장 문화재의 분포 유무를 판단하는 작업)를 진행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발견이 이뤄진다면 일체의 개발 행위가 중단되게 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반인 청와대 관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지표 조사를 얼마나 철저히 관리하느냐에서 문화재청의 의지를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청와대 경내에 대한 문화재 지정입니다. 문화재로 지정된다고 해서 미술관 활용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상당한 제약이 생기게 됩니다. 청와대가 경복궁 후원 영역이었고, 일명 '미남불'로 불리는 석조여래좌상 등 지정 보물 6점을 비롯해 주요 문화재들이 있어서 청와대 전체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문화재 지정 여부는 문화재위원회가 결정하지만, 원칙적으로 소유자나 관리자가 먼저 문화재 지정을 신청해야 합니다. 청와대의 관리 주체가 문체부로 넘어간 뒤 문체부가 스스로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원칙적으로 문화재청장 직권으로 절차를 시작할 수는 있지만 현재의 흐름에선 그 확률 또한 극히 낮다고 봐야겠죠.

청와대의 미술관 활용 방침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삼청동 일원에 이미 미술관과 박물관이 여러 개 있고, 송현동에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미술관 건립도 추진되고 있기는 하지만, '미술관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논리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추진 결정의 정당성과 절차의 합리성은 갖추는 것이 맞습니다. 문체부의 활용 방안 발표 당시 본관과 관저, 영빈관 등을 미술관으로 활용하더라도 원형 훼손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그러려면 '원형'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원형'에 대한 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그림을 거는 방식과 공조 시스템을 비롯한 작품 훼손 방지 설비 설치 등을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의 하나 조사를 해보니 본관과 관저, 영빈관에는 도저히 미술품 설치가 어렵다고 결정될 경우 비서동이나 경호동처럼 역사문화적 가치가 덜한 청와대 내 다른 건물을 활용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상식에 맞는 결정이 이뤄지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일이 진행되는 것, 그렇게 힘든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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