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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윤석열 대통령의 '전 정권' 트라우마

[취재파일] 윤석열 대통령의 '전 정권' 트라우마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질의응답, 도어스테핑을 찬성한다. 불통에 가까웠던 전 정권이나 아예 침실에 틀어박혀 '잃어버린 7시간' 논란을 불렀던 전전 정권에 비하면 훨씬 긍정적이라고 본다. 메시지 관리가 안 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이는 권력의 관점이다. 대통령의 출근길이 생중계되고 이 나라 최고 권력자가 국정 현안에 대해 직접 의견을 밝히는 건 국민에겐 좋은 일이다. 단언컨대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면 그건 곧 정권이 위기라는 신호일 거다.

그러나 최근 윤 대통령의 아침 메시지는 거의 사고 수준이다. 대표적인 게 "지지율은 의미없다"는 발언이었다. '지지율은 별로 의미 없는 것이고 국민만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거의 자가당착에 가까운 말이다. 지지율이야 오르기도 내리기도 하는 것이라지만 어쨌든 국민을 상대로 조사하는 것이다. 지지율은 의미가 없는데 국민만 바라보겠다면, 그 지지율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을 상대로 조사했단 말인가. 본인을 유력 대선 주자로 밀어올린 것도 바로 그 지지율이었다.

요즘 특히 두드러지는 건 대통령의 '전 정권' 타령이다. 전 정권의 실패로 들어선 게 현 정권인데, 주요 현안마다 전 정권을 탓한다. 대부분 인사 논란이 벌어질 때였다. 검사 출신 금감원장 인선을 두고 말이 나오자 "과거에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나"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최근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박순애 교육부총리에 대한 검증 부실 비판에는 이틀 연속 '전 정권'을 소환했다. "전 정권과는 비교할 바는 아니다",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 같은 말들이다.

그러나 이는 전 정권의 일부 인사 실패를 감안하더라도 다분히 주관적인 말일 수밖에 없다. 전 정권보다 훌륭하다는 게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한 건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전 정권 장관들과 다 일해본 것도 아닐 테고, 혹은 대통령 보고서에는 게임처럼 장관 후보자들 능력치가 숫자로 찍히기라도 한단 말인가. 과연 대통령의 저 말에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상당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배제하는 '분열의 언어'일 수밖에 없다.

임명장 받는 박순애 사회부총리 (사진=연합뉴스)

나아가 최근에는 객관적 비판을 '공격'으로 치환하는 권력의 고질병까지 비친다. 끝끝내 임명을 강행한 박순애 교육부총리 후보자 임명장 수여식에 "언론에, 야당에 공격받느라 고생 많이 했다"는 말이 그것이다. 장관 후보자, 그것도 한 나라 교육 수장이 혈중알코올농도 0.251%로 몸도 제대로 못 가눈 채 운전대를 잡았다고 사실 그대로 지적한 걸 어떻게 공격으로 부를 수 있단 말인가. 같은 논리라면 대통령이 검사 시절 줄기차게 했던 권력에 대한 수사도 모두 공격으로 불러야 하나.

혹자는 조국 전 장관 수사 이후 핍박받았던 윤 대통령의 '전 정권 트라우마'를 이유로 들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그 핍박이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긴 했지만 그때 겪었던 고초와 좌절, 모욕감이 대통령 정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 대한 적대감이 '그래도 우리는 전 정권보다 낫다'는 우월감의 준거가 된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설령 정말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인사 실패의 변명이 될 순 없다. 지도자의 책임과는 별개의 문제다. 역사적으로도 지도자의 트라우마는 마이너스면 마이너스였지 플러스가 된 적이 거의 없다.

5년 만에 정권이 바뀐 건 국민의힘이 잘해서라기보다 민주당이 못 했다는 게 중론이다. 전 정권보다 잘 하라고 국민이 뽑아준 게 이 정권이란 얘기다. "그래도 전 정권보다 낫지 않느냐"는 말은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다. ' "민주당도 그러지 않았느냐"는 대답은 민주당의 입을 막을 논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민주당처럼 하지 말라고 뽑아준 거 아니냐"는 국민의 물음에 대한 답변은 될 수 없습니다' 라는 여당 대변인의 말은 지금 대통령과 권력자들이 가장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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