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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일찍 구속 안 시킨 검경 비난해야" 자필 답변서 입수

<앵커>

청주에서 의붓아버지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입은 중학생 딸과 그 친구가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후속 보도를 계속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복역 중인 남성에 대해서는 민사소송도 진행되고 있는데, 저희 취재진이 이 남성이 쓴 관련 답변서를 입수했습니다.

신정은 기자의 단독 보도 보시고,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기자>

의붓딸과 딸의 친구를 성폭행해 두 여중생을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죄로 항소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은 의붓아버지 A 씨.

친구 미소의 유족은 A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A 씨가 교도소에서 직접 쓴 민사소송 답변서를 SBS가 입수했습니다.

올해 3월부터 4월까지 5차례에 걸쳐 편지 형식으로 작성한 35장입니다.

A 씨는 죽어서도 속죄하겠다며, 이제는 더 속일 것도 없다면서도 정작 아이들의 죽음에는 책임이 없다는 듯이 자신을 일찍이 구속해야 했다며 수사기관 탓을 했습니다.

'경찰과 사법기관이 비판과 비난을 먼저 받았어야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됐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이들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파렴치한 놈이 돼버렸다며 유족에게 억울한 심정을 내비칩니다.

[김태경/서원대 교수·범죄심리 전문가 :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애들이 죽은 거야. 애들을 죽게 만든 건 날 좀 더 빨리 자백하게 만들지 못했던 무능한 경찰과 검찰의 문제거든' 이런 주장을 하는 거예요, 지금. 되게 섬뜩하죠.]

'남은 자식을 바라보며 살아라', '너무 조바심 내면 힘들어지니 흘러가는 대로, 바쁘게 살아야 딸 생각이 안 날 거'라고 '황당한' 조언까지 합니다.

[김태경/서원대 교수·범죄심리 전문가 : 마치 자기는 이거랑 상관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자기도 여기서 유족이어야 되거든요. 필요에 따라서 붙였다 떼었다 사람을 도구로 취급하는….]

유족에게 자신이 출소할 날까지 건강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전문가는 재판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유족을 향한 경고성 협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김태경/서원대 교수·범죄심리 전문가 : 듣기에 따라선 '기다리고 있어. 내가 찾아갈게' 일 수도 있어요. 진짜로 자식을 잃으면 그 비통함이 어떤지에 대한 한 자락의 공감도 없는 사람. 그게 굉장히 (마음에) 걸려요 계속.]

최근 등기우편으로 답변서를 받아본 유족은 SBS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 이미소 양 아버지 : 자기의 잘못으로 인해 이 모든 사달이 난 건데, 재판장님한테는 반성 후 사죄를 올리지만 피해자 가족한테 진짜 일말의 진심 어린 사죄 한마디도….]

(영상취재 : 박현철·윤 형, 영상편집 : 박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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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신정은 기자 나와 있습니다.

Q. 부실한 대처…당당한 가해자?

[신정은 기자 : 그렇습니다. 1년 전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가족 성폭력 사건에 대한 부실 수사와 피해자 보호체계의 문제점이 지적됐습니다. A 씨는 이런 언론 보도 등을 참고해서 이 답변서도 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미소 부모님의 고소로 지난해 2월 경찰 수사가 시작됐는데, A 씨의 체포영장은 한 차례 검찰에서 반려됐고, 일주일쯤 지나서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보완수사 하라며 검찰이 반려했습니다. 아이들이 숨지기 하루 전에도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취소하기도 하고요, 두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에야 A 씨가 구속됩니다. 의붓딸 아름이는 수사가 한창인 때에도 A 씨로부터 분리되지 못한 채 한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수사당국의 미흡한 대처가 A 씨의 방패막이 된 데 이어 이런 궤변의 근거가 된 것입니다.]

Q. 손해배상소송에서 돌변?

[신정은 기자 : 그렇습니다. 미소의 유족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자 이 답변서가 제출된 것인데요. 유족은 돈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두 아이가 한날한시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그 이유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혐의를 부인해온 A 씨가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야 아이들과 유족의 한을 풀 수 있다는 그 간곡한 뜻을 A 씨에게 전달했고요, A 씨가 답장처럼 써서 보낸 것인데, 진실을 밝히거나 자신의 죄를 반성하는 태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김태경/서원대 교수·범죄심리 전문가 : 태도가 조금씩 바뀌긴 하는데 내가 감옥을 살면 그만이지 뭘 더 바라냐는 메시지를 계속 줘요. 자기는 죗값을 받았고 그래서 나는 이제는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신정은 기자 : A 씨는 항소심 선고 징역 25년이 지나치다며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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