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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저는 루나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싱가포르 36시간 취재기

[취재파일] "저는 루나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싱가포르 36시간 취재기

저는 루나를 하지 않았지만

5월 22일, 일요일 저는 휴일을 맞아 점심을 먹으려고 동남아 음식점에 갔습니다. 나시고랭과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저녁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 현지로 날아가 테라폼렙스 권도형 대표를 취재해야겠다"는 전달사항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동남아 음식을 먹고 있다가, 5시간 뒤 동남아 국가인 싱가포르로 떠나게 됐습니다.

비행기 탑승하는 취재진

저는 루나 코인에 투자한 적이 없습니다. SBS를 포함해 여러 언론이 테라-루나 코인의 폭락에 대해 보도하긴 했지만, 따로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권도형 대표를 취재하려면 배경 지식이 필요해, 급히 테라-루나 코인 급락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기사 대부분은 루나-코인의 폭락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봤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기사는 해당 코인의 알고리즘을 설계한 권도형 테라폼렙스 권도형 대표 발언과 행방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싱가포르, 두 가지 미션

권 대표는 5월 21일, SNS에 글을 남겼습니다. 자신이 지난해 12월부터 싱가포르에 체류해 있고, 이곳에서 회사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싱가포르 현지에 직접 가지 않는 이상 국내에서 확인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공항에서의 취재진 모습

저에게 주어진 취재 미션은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싱가포르에 권 대표를 직접 만나고 오는 것이었고, 나머지 한 가지는 테라폼렙스가 싱가포르에서 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 여부입니다. 하지만, 저희 출장팀(양현철 영상기자, 유진영 촬영보조)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몇 가지 없었습니다. 테라폼랩스 홈페이지와 법인등기부에 나오는 사무실 주소, 그리고 권 대표의 주거지입니다.
 

취재 시간, 36시간

싱가포르에 5월 23일(월) 새벽 1시쯤 도착했습니다. 귀국 비행기는 5월 25일(수) 새벽 1시입니다. 현지 사정과 SBS 뉴스 편성 시간을 고려할 때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은 36시간 정도였습니다. 23일(월) 아침 8시부터 24일(화) 저녁 8시까지입니다. 36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두 가지 미션을 모두 달성하는 게 출장팀의 목표였습니다.

취재 첫날의 홈페이지와 법인등기부에 나오는 테라폼랩스 사무실을 찾아가고, 두 번째 날에는 권 대표의 주거지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싱가포르 한국대사관과 한인 거주 밀집 지역을 가 도움을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① 홈페이지 주소 - "Terminated"

싱가포르에서 취재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간 곳은 홈페이지에 나오는 주소입니다. 사무실은 여러 금융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고층 복합건물의 32층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1층 안내데스크에 신분을 밝힌 뒤 출입 허가를 받고 32층에 갔습니다. 32층에 올라가니 테라폼랩스 회사명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로펌이 32층 전체를 쓰고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의 한 복합건물 내 안내판에 쓰여 있는 테라폼랩스

로펌에 들어가 문의했습니다. 직원 3명이 마침 보였습니다. 테라폼랩스를 아냐고 물었습니다. 자신들이 관리하는 업체 중 한 곳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테라폼랩스 직원이 이곳으로 출근하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이보다는 'Registered Office'라고 하여 회사 주소지를 이곳 로펌에 두고, 우편물이나 공문을 받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테라폼랩스의 공식 서신을 관리하는 일종의 물리적 창구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법률사무소 직원들을 만난 취재진

로펌 직원 얘기는,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나 직원들이 이곳에 올 리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더군다나 로펌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최근 이러한 관계도 해지(terminated)됐다고 합니다. 계약 기간이 만료(expired)된 건 아니라면서, 해지된 이유는 설명해 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① 법인등기 주소 "Not completed"

법인등기부상 본사 주소를 찾아갔습니다. 이곳도 고층 복합건물 37층에 입주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1층 안내데스크에서 출입을 허가받고 37층에 올라갔습니다. 37층은 대체적으로 어수선했습니다. 여러 기업들이 입주해 있었는데, 어느 곳은 사무실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공사 자재가 복도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다른 입주 업체 직원, 사무실 공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완료하지 않았습니다.

이 가운데 37층에 1/3 정도 면적을 쓰는 업체가 테라폼랩스로 추정됩니다. 지금은 문이 닫혀 있는 상태였는데, 문 틈 사이를 보면 '테라'라는 글씨가 벽에 크게 새겨져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37층에 근무 중인 다른 업체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테라폼랩스가 사무실 공사를 한창 진행하다가, 지난달쯤 돌연 공사를 중단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이곳을 찾는 테라폼랩스 관계자를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건물 관리인도 테라폼랩스가 37층 일부를 임대한 것은 사실이고, 공사가 최근 진행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곳 사무실을 테라폼랩스가 실제로 사용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테라-루나 코인이 폭락한 시점과 맞물려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보입니다.

공사 중단, 주주총회서 해산 결정 시점과 비슷

② 법인등기 권 대표 주거지

권 대표의 주거지도 법인등기에 나와 있습니다. 운영 중이지도 않은 사무실 앞에서 권 대표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하여 출장 둘째 날에 권 대표 주거지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권 대표의 주거지는 싱가포르의 나심이라는 지역의 한 고급 아파트로 등록돼 있습니다. 1층에서 경비원에게 방문을 신고하고, 1층 공동현관문을 거쳐 올라갔습니다. 권 대표가 있을지도 모르는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법인 등기 참고해 권 대표 거주지 방문

집 앞에 도달한 순간 권 대표 혹은 그의 지인을 만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인기척이 들렸는데,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익숙한 한국 동요가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 나온 겁니다.

② 권 대표 주거지, 백인 남성 등장

얼마 있지 않아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예상과 다르게 30대로 보이는 백인 남성이 나왔습니다. 권 대표를 만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백인은 권 씨는 여기 없다며, 주소를 잘못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권 씨를 아냐고 묻는 말엔 즉답을 피했습니다. 집 안에 있는 아기와 동요 소리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백인 남성, 아니요, (권 대표 집이) 아닙니다.

백인이 건물에서 나가달라는 부탁이 있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까 마주친 경비원에게 백인 남성에 대해 물었습니다. 본인도 여기 근무하지 오래되지 않아 자세히 모르지만, 백인 남성이 이곳으로 이사 온 시점은 약 한 달 전이라고 했습니다.
 

사무실도, 주거지도…'한 달 전'에 무슨 일이?

한 달 전, 그러니까 4월 달에 권 대표 주변은 많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사무실 공사는 갑자기 중단됐고, 법인등기부상 권 대표 주거지에는 갑자기 백인 남성이 이사를 왔습니다. 4월은 테라-루나 코인이 급락하고 있던 시점이기도 합니다.

출장팀은 이 밖에도 싱가포르 한국대사관을 찾아갔고, 한인들을 볼 수 있는 식당가를 가서 권 대표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습니다. 권 대표를 목격했다는 식당 종업원도 만나볼 순 있었습니다. 하지만 테라-루나 코인 폭락 사태 이후 권 대표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한 상황입니다.

권도형 대표 사진(왼쪽)와 취재진의 뒷모습

두 가지 미션, 절반의 성공

애초에 두 가지 미션을 가지고 취재를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테라폼랩스 사무실 두 군데를 코앞까지 찾아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이 운영 중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권 대표를 만나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등기부상 집 앞까지 같지만, 직접 볼 순 없었습니다.

식당 종업원, 제가 기억하길 그(권도형)가 왔었어요. 누군가랑 같이 왔는데, 그게 누군진 모르겠네요.

권 대표, 만났다면 무엇을 물어봐야 했을까?

권 대표를 만약에 만났다면 무엇을 물어봐야 했을까요? 권 대표가 생각하는 코인의 급락 원인, 그리고 사기 혐의에 대한 입장을 우선적으로 듣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질문지를 만들어봤습니다. 결국 이 질문지는 쓸모가 없어졌지만, 이곳에라도 남겨봅니다.

1. 싱가포르에서 뭐 하고 지냈나요?
2. 국내 귀국하지 않는 건 테라-루나 코인 폭락과 연관 있나요?
3. 싱가포르 본사 사무실에서는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4. 서울남부지검이 수사 시작, 수사기관 연락받은 적 있나요?
5. 국내 투자자들이 사기 혐의로 고소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6. '코인 알고리즘을 부실하게 설계했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7. '앵커 프로토콜'로 모은 투자자 돈으로 '폰지 사기'를 했다는 의혹에 대한 입장은요?
8. 테라-루나 코인 설계는 언제부터, 어떠한 동기로 만들었나요?
9. 최근 폭락 사태,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10. 한국 정부가 세금을 과도하게 청구했다고 주장하는데 근거는요?
11. 지금까지 국세청에 납부한 세금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12. 귀국 계획, 혹은 앞으로 진행될 수사에 대한 입장은요?
13. 제2의 테라를 만들어 루나와 다시 연동하겠다는 계획, 어떠한 의도인가요?
14. 국내 투자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 출장 기간 동안 취재에 도움을 준 이은예 코디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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