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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쉽] 끝나지 않는 파티는 없다…거품 붕괴와 저성장의 도래

[뉴스쉽] 끝나지 않는 파티는 없다…거품 붕괴와 저성장의 도래
테라-루나, 그 죽음의 소용돌이가 재테크의 벌판을 휩쓸고 지나갔다. 처참하게 깨진 계좌를 보며 울부짖는 투자자들의 비명이 아직도 귓가를 울린다. 테라는 가격이 1달러에 고정되는 '스테이블 코인'을 표방했다. 테라 가격을 루나로 지탱하고 루나 가격을 테라로 받친다는 설계다. 이 설명을 듣고 떠오른 생각은, '왼발이 물에 빠지기 전에 오른발 딛고, 오른발 빠지기 전에 왼발 딛으면 물 위를 달릴 수 있다는 소리와 비슷한 거 아닌가?' 라는 것이었다.

전혀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그렇게 해서 물 위를 달리는 동물이 있긴 있다. 바실리스크 도마뱀이다.
[뉴스쉽] 물 위를 달리는 도마뱀, 바실리스크 도마뱀
바실리스크 도마뱀은 작고 가볍다. 나이와 크기에 따라 몸무게가 2~200그램 정도다. 한 발로 물을 찰싹 때려 미세한 에어포켓을 순간적으로 만들고, 그 발이 물속으로 잠기기 전에 물을 뒤로 밀어내며 다른 발로 같은 기술을 쓴다. 이걸 1초에 20번 한다. 그러면 초당 1.5미터까지 물 위를 달릴 수 있다. 하지만 3초 정도 지나면 가라앉기 때문에, 천적을 피해 도망칠 때 등 급한 순간에만 이런 비기를 활용한다고 한다.

사람도 바실리스크 도마뱀과 같은 방법을 쓰면 물 위를 달릴 수 있을까? 하버드 대학의 과학자들이 계산을 해 봤다. 그 결과는 기사 말미에 추신으로 달아 놓을 테니 잠시 후에 확인하시고, 일단은 본론으로 돌아가자.

가상자산의 가치를 다른 가상자산으로 받치고, 그 시스템에 닥칠 수 있는 위기를 또 다른 가상자산 (비트코인)으로 담보한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어떻게 믿고 피땀 흘려 번 돈에 빚까지 얹어 '몰빵'을 했을까? 그때는 '음, 신뢰할 만 하군'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설계가 왜 지금은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릴까? 시장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장에 돈이 넘칠 때는 '돈 넣고 돈 복사'가 끝없이 될 것 같았다. 시장에 돈이 흘러넘치니 취약한 신뢰성 위에 설계된 코인의 결함이 드러나지 않았다. 미국이 달러의 돈줄을 조이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뉴스쉽] 달러의 수도꼭지가 잠긴다 (하단 바 직선으로 교체)

투자의 현인 워렌 버핏의 명언 중 이런 말이 있다. "물이 빠져 봐야,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번에 테라-루나 사태가 터진 것도 결국 미국 연준발 달러 썰물과 관련이 있다. 수면이 내려가니까 취약한 근거 위에 쌓아 올린 가상 자산의 알몸이 드러난 셈이다. 앞으로도 수면은 점점 더 내려갈 것이고, 알몸이 드러나는 자산은 테라-루나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연준의 돈 거둬들이기 (금리 인상)는 아직 초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뉴스쉽] 워렌 버핏, 물이 빠져봐야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스콧 마이너드 구겐하임 파트너스 글로벌 투자책임자(CIO)는 "올여름까지 나스닥은 작년 11월 고점 대비 75%, S&P500은 올해 1월 고점 대비 45%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그가 이 발언을 한 수요일, 나스닥은 고점 대비 28%, S&P500은 18% 하락했다.) 스콧 마이너드는 또한, 지금이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때와 비슷한 상황이며, 연준은 경기 침체를 각오하고 금리를 올릴 것이고, 증시 투자자들을 도와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살벌한 전망을 했다.
[뉴스쉽] 스콧 마이너드 구겐하임 파트너스 글로벌 투자책임자, 연준은 아랑곳하지않고 금리 올릴것이고 투자자들 구제해주지 않을 것

미국은 얼마나 돈을 거둬들이려는 걸까

미국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제를 살리기 위해 8조 달러가 넘는 돈을 풀었다. 아래 그래프는 그 추이를 보여준다. 눈여겨볼 부분은 2012년 경과 2018년경이다. 이 두 시기에, 연준은 돈을 좀 거둬들일까 하다가 못한다. (그래프가 살짝 꺾이는 듯하다가 다시 올라간다.) 2020년부터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다시 무지막지하게 돈을 푼다.
[뉴스쉽] (하단 바 수정) 미국 연준이 그동안 푼 달러 총 8조 달러 -연준 자산 증가 그래프

시장에 풀려나간 과잉유동성은 세계경제가 코로나19 충격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주긴 했지만 결국 각국의 주식, 부동산, 암호화폐 등 온갖 자산의 가격에 거품이 끼게 했고, 물가도 밀어 올렸다. 올 들어 산불처럼 번져가는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수년간 너무 많은 돈이 전 세계로 풀려나갔기 때문에 초래된 현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코로나로 인한 중국의 봉쇄 장기화 등 공급 이슈는 바싹 마른 숲에 던져진 불씨 같은 역할을 했다.

미국 연준은 오랫동안 2% 정도의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통화를 운용해 왔다. 미국 경제에서 매년 2% 정도는 물가가 올라야 소비자는 너무 기다리지 않고 돈을 쓰고, 기업들도 잘 돌아간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지난 4월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무려 8.3%였다. 3월 8.5%에 비해서는 살짝 완화됐지만 여전히 물가상승 압력이 강하게 존재하는 상황이다. 금리인상과 통화량 축소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뉴스쉽) 미국 인플레이션, 월별 물가상승률 막대그래프
결국은 시중에서 돈을 좀 거둬들여야 (어려운 말로는 유동성을 흡수해야) 인플레이션을 잠재울 수 있다. 어느 만큼 돈을 거둬들여야 할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최한 '모든 것의 미래(Future of Everything)' 이벤트에서, 물가를 확실히 잡을 때까지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매파적(hawkish) 발언을 했다.
[뉴스쉽] 제롬 파월 연준의장, 물가 확실히 잡았다는 증거 있을때까지 금리 인상할 것
과거에 보면 연준 의장은 시장 충격을 감안해 완곡한 어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날 파월 의장의 발언은 표현의 강도가 상당히 세다. "(금리인상을 중단하기 전에)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립 금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불확실하다"는 말도 했다. 중립금리란 경기를 부양하지도 억제하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를 말한다. 파월의 말인즉슨, 숫자를 정해놓지 않고 인플레가 확실히 꺾였다 싶을 때까지 금리를 올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성장 훼손해서라도 물가 잡겠다?

파월 의장은 연준의 인플레이션 통제 의지를 의심해서는 안된다고도 말했다. 이는 역으로 보면,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연준의 의지를 시장이 의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자칫하면 경기가 꺾일 텐데... 연준도 좀 저러다 말겠지.' 하는 심리가 시장에 깔려있었다는 얘기다.
(뉴스쉽) 미국 도시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미 노동부와 연준 자료로 만든 꺾은선그래프
인플레이션 억제는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주체들이 물가와 임금의 인상을 당연시하게 되면 노동자는 임금을 받아도 실질구매력이 줄어 살기가 힘들어지고, 기업도 가격을 올려 받는 데에 한계가 있으니 이익이 줄어든다. 물가를 잡기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미 이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연준이 좀 더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렸어야 하는데 멈칫거리다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도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파월 의장은 경기가 꺾이는 한이 있어도 일단은 인플레를 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뉴스쉽) 제롬 파월 연준의장, 인플레 억제 의지 의심 말라, 인플레 잡다가 침체 올 수도 있고 고통이 따를 수도 있다
파월은 "경기 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 성장을 늦춰야 할 것" "인플레이션을 낮추는데 고통이 뒤따를 수 있다" 등등의 발언이 파월 의장 입에서 나왔다.

연준이 금리를 올려도 기업들은 돈을 벌고 경기는 연착륙할 수 있을 거라던 시장의 기대도 꺾였다. 이제는 저성장을 넘어 역성장 우려로, 경기 둔화를 넘어 침체 걱정으로 바뀌는 중이다. 한 달 전과도 온도차가 확연하다.

경기 침체 예상하며 현금 쌓아두는 기관투자가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지난 6일에서 12일 사이 288명의 기관투자가(펀드매니저)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72%는 앞으로 12개월 동안 경기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1995년 BofA가 펀드매니저 설문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비관적인 응답이라고 한다. 응답한 펀드매니저의 77%는 세계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세계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성장은 안되는데 물가는 오르는 상태를 말한다. 정책당국이 대처하기 가장 어렵다.)

펀드매니저들은 최대의 위협으로 매파적인 연준(31%), 침체(27%), 인플레(18%)를 꼽았다. 이들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현금보유 비중을 9·11테러 당시 이후 최고 수준으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쉽) 뮤추얼펀드의 총관리자산 중 현금보유 비율, 뱅크오브아메리카 조사, 커지는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현금 비율을 역대급으로 높였음
주요 은행인 웰스파고도 "올해 말과 내년 초 완만한 침체가 기본 가정"이라고 밝히고,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1.5%로 내렸다.

골드만삭스CEO 데이비드 솔로몬 또한 앞으로 1-2년 사이 경기가 침체(recession)될 가능성이 30%를 넘는 것으로 계산된다며 기업들의 자금난을 예상했다. (미국 국립경제조사국(NBER)은 실질 GDP가 2분기 연속 감소하면 '리세션'으로 정의한다.)
(뉴스쉽)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의 전망- 경기 침체와 기업 자금난 예상
UBS 글로벌 웰스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마크 헤펠은 로이터 통신에 "투자 심리와 자신감이 여전히 흔들리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3R(금리, 경기 침체, 위험)에 대해 더 명확해질 때까지 불안정하고 고르지 못한 시장을 보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뉴스쉽) UBS 글로벌웰스 최고투자책임자 마크 헤펠, 3R-금리, 경기침체, 리스크-가 분명히 드러날때까지 험한 장세 예상
세계적 은행인 모건스탠리가 자회사를 통해 집계하는 세계 23개 주요국 증시의 MSCI 선진국 지수(MSCI World equity index)는 올 들어 급락하는 양상이다. 좀 반등하는 듯하다가 더 많이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반등할 때 속아서 따라 들어간 투자자들이 상당한 손해를 봤을 것이다. 지난해 말 고점 대비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프는 아직 코로나 발생 이전보다 위에 있다. 바닥을 확신하기엔 일러 보인다.
모건스탠리가 전세계 선진 23개국 증시를 모니터링해 만든 MSCI 선진국 지수. (MSCI 홈페이지 캡처)

미국 기업들, 이익이 줄고 있다

몇 달 전까지는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장이 그리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드물지 않았다. 그런 전망은 '기업들이 그래도 돈을 벌고 있지 않느냐'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이익이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대 유통기업인 월마트는 매출은 늘었지만 연료비와 인건비 등의 상승으로 이익이 전망치에 못미쳐 주가가 하루에 11.4% 하락했다. 또 다른 대형 유통업체 타겟(Target)도 분기 주당 순이익이 전망치에 28% 못 미쳤고, 전년 동기 대비 40% 감소했다. 발표 다음날 타겟의 주가는 24.9%나 폭락했다. (아래 그래프)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이후 하루 최대 낙폭이다. 이들의 주가하락은 세계적인 악재가 되어 각국증시에도 충격을 줬다.
실적발표 다음날 개장과 동시에 추락한 대형유통업체 타겟의 주가 그래프 (Yahoo finance 캡처)

대형유통업체들의 이익 감소는 미국 소비자들이 돈을 쓰고 있긴 하지만 지갑이 점차 얇아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가격이 저렴한 PB상품을 더 많이 찾고, 의류나 신발 등 대신 식료품 지출 비중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경기의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 주택시장에도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미국의 4월 주택 착공 건수는 전월보다 0.2% 감소했고, 향후 주택시장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신규주택 허가 건수는 전월보다 3.2% 줄었다고 미 상무부가 발표했다. 주택담보 대출 금리가 오르고 건축자재값과 인건비가 계속 뛰니 집을 덜 짓게 되는 것이다.

미국시장 얘기를 자세히 쓴 이유는, 달러의 흐름에 따라 이게 다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미국 경기가 식으면 우리의 수출도 영향을 받는다. 미국 경제가 재채기를 하면 우리나라는 독감에 걸린다는 말도 있다. 주식하는 분들은 이미 피눈물 나게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뉴스쉽] (대표이미지) 끝나지 않는 파티는 없다- 거품붕괴와 저성장의 도래

끝나지 않는 파티는 없다…이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투자의 열기에 흥청망청 들뜨게 했던 이른바 '불장' 은 속절없이 끝났다. 끝나지 않는 파티는 없다. 아파트 주식 코인 가상부동산 NFT 등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값을 밀어 올리던 과잉유동성의 거품은 가라앉고 있다. 자산의 실제 가치는 거품이 꺼진 이후에 드러날 것이다.
거품이 가득할때는 잔 안에 맥주가 얼마나 들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c)SBS 뉴스쉽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골이 있으면 산이 있듯이, 언젠가는 이 고통스러운 시기도 넘어가고 투자의 파티는 또다시 열릴 것이다. 그때 이 고통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 반성을 잘해 두어야 한다. 실체를 모르는 것에 투자하지 말고, 남의 돈 무서운 줄 알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고,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았어야 한다. 사는 게 기술이라면 파는 건 예술이다. 팔아야 내 돈이다. '이번엔 다르다', '이것은 다르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경기부양을 위해 국가가 화폐를 마음껏 발행해도 된다는 이른바 '현대통화이론(MMT)' 주장하던 사람들 지금 어디 갔나.

상식과 기본을 잘 지켜야 오래 살아남는다.
[뉴스쉽] 물 위를 달리는 도마뱀, 바실리스크 도마뱀
[추신] 글 앞에서 소개한 바실리스크 도마뱀처럼 물 위를 달리려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도마뱀이 물 위를 달리는 메커니즘을 밝혀낸 하버드대 엔지니어링 및 응용과학부 제임스 글래신과 토마스 맥마흔 교수가 1996년에 계산을 뽑아봤다. 체중 80kg인 성인이 물 위를 달리려면 시속 108km로 뛰면서, 보통 사람이 언덕을 올라갈 때 내는 근력보다 15배 큰 에너지로 물을 박차야 한다. 즉, 안된다는 소리다.

누군가 왼발 오른발 빨리 움직이면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식의 논리로 투자를 권유하거든, 솔깃해하지 말고 거르시기 바란다.

(구성: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콘텐츠디자인: 옥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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