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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헌법에 없는 단어 '자유민주주의'의 함의

'자유' - 윤 대통령 35번, 문 전 대통령 0번의 의미

일반인들은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하지만, 학자들이나 정치인들 사이에선 아주 민감한 게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용어의 선택적 사용이다.

5·18 기념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은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자주 언급하는 용어다. 후보 때부터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수호하겠다고 했고, 5·18 기념식에서는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에 앞서 취임식에서는 '자유'라는 단어를 총 35차례 언급했다.

이렇게 자주 언급하는 것은 자유라는 가치를 통치이념의 기초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에는 그 어디를 찾아봐도 '자유민주주의'란 단어는 없다. 다만, 헌법 전문에 보면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와, 헌법 제4조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라는 구절에서 비슷한 단어가 있을 뿐이다.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정신이라는 것은 그렇게 법해석을 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라는 단어 앞에 달린 '자유'라는 단어의 유무는 우리 사회에서 진영별로 꽤 민감한 함의를 갖고 있다. 상이한 이념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 헌법

윤 대통령이 취임식 때 35번 언급한 '자유'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식 때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 때는 개헌안 논의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헌법 조항에서 삭제하려다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자유'의 의미는 그 본원적 개념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학자들 간의 분분하고 세밀한 철학적 논의에서 벗어나, 우리사회에서 현실적으로 확인되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는 뭘까.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세우는 정치는 대체로 결과의 평등을 중시한다. 따라서 국민 개개인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든, 현재 시점에서 국민 간의 불평등을 줄이는 분배정책을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로 삼는다.

또 '민주주의'는 국가와 집단의 역할을 중시한다. 정부가 여러 정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서, 시장의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하는데 역점을 두려고 한다. 다시 말해 정부의 조정기능을 중시하며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의견을 많이 수용해왔다.

그에 비해 우리 현실 속의 '자유민주주의'는 개인과 기업의 자율성을 중시하면서, 시장에 되도록 개입하지 않으려는 경향성을 갖는다. '결과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에 방점을 두면서 능력에 따른 차등을 인정하는 동시에, 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시한다. 시장실패에 따른 양극화에는 사전 개입보다는 나중에 개입해 그 불평등을 줄이는 사후적 조치를 선호한다.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차이
※이 표는 학술적 분류가 아니라 국내 현실 정치가 두 단어를 이용해왔던 행태에 따른 분류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윤 대통령 통치철학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자유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경제의 이론적 토대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며 이 역시 윤 대통령의 경제철학이기도 하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실은 그동안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외쳤던 수많은 정부가 '선순환'에 실패하면서, 파이를 키웠지만 나누지 못했던 트라우마가 우리 국민에게 각인돼 있다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심하다고 평가받는 대한민국의 소득 양극화가 그 증거이다. '결과에 대한 승복'은 '기회의 평등'이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양극화로 인해 '기회의 평등'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우리의 현실로 볼 때, 성장 우선의 경제에서 분배를 얼마나 잘 조율해 낼 것인가가 윤석열 정부의 가장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고철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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