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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갯속'의 IPEF…한국에 기회될까, 도전될까

[취재파일] '안갯속'의 IPEF…한국에 기회될까, 도전될까
지난해 10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화상으로 진행된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 창설 추진을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IPEF가 어떤 형식이 될 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반적인 FTA와는 성격이 다르다. '협정(Agreement)'이라는 명칭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무역, 조세 및 반부패 등 크게 4개 분야에서 참여국들이 준수할 규범 또는 규칙을 정하는 느슨한 다자 협의체가 될 것이란 관측만 무성하다. 한 고위 외교 소식통은 "(창설 추진을 밝힌) 미국도 스스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듯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은 24일로 예정된 IPEF 출범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들은 ‘참여 검토’라는 애매한 입장을 밝혀 왔지만, 대통령실이 나서 IPEF 참여를 확인한 것이다. 자연스레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IPEF를 중심으로 한 경제 안보에 방점이 찍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경제 안보에 무게 실린 정상회담..한미 정책 우선순위의 간극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 전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으면 북한 문제, 그렇지 않다면 반도체 공급망 등 경제 안보 이슈가 정상회담에서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애초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북한 문제 등 전통적 안보 이슈보다 경제 안보 이슈에 무게를 둬 계획됐음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이번 정상회의에 미국 상무장관은 바이든 대통령과 동행하지만, 국무·국방장관은 함께 오지 않는 것도 의제의 무게추가 어디에 실렸는지를 예상케 하는 단초다.
 
이런 상황은 윤석열 정부에서 몇 가지 도전과 과제를 안긴다. 우선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나라와 미국의 우선순위 차이 문제다. 미국 정부, 특히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한 문제가 미국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우선순위에서 빠지거나 내려왔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경제 이슈를 중심으로 계획된 것도 미국 측 의사가 많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북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있어 여전히 최우선 과제다. 윤 대통령이 시정 연설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의 추가 핵 실험 정황까지 파악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대통령실은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의 재가동 및 활성화가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핵 위협시 미국이 이른바 핵 우산을 제공하는 걸 논의하는 채널의 재가동을 논의하겠다는 것으로, 이번 정상회담의 안보 의제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4년 째 중단된 대화 채널을 재가동하고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내용이지만,  이것 만으로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안보 의제의 중요성이 이전 정상회담과 비교해 높아졌다고 보기에는 모자라다. 북한 문제에 대한 한미 양국의 정책 우선순위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IPEF는 대 중국 견제용이 아니라고 하지만…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사진=연합뉴스)

IPEF 참여와 관련된 최대 과제는 역시 중국의 예상되는 반발을 최소화 할 전략 수립이다. 정부 당국자는 IPEF는 대중국 견제용이거나 포위용이 아니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어제 기자들과 만나 “(IPEF는) 상품과 서비스 시장 개방을 목표로 하는 기존의 전통적 무역협정과 달리 공급망이라든지 디지털이라든지 청정에너지와 같은 새로운 통상 이슈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 통상 협력체를 구축한다”는 의미라며, “여기에 중국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중 FTA의 후속 협정 논의 과정에서 민감한 공급망을 서로 원활하게 주고받는 시장 개방 논의까지 중국과 진행하고 있다”며, “IPEF가 단순히 어떤 강대국끼리의 공급망의 디커플링, 혹은 적대적 리커플링 이렇게 보실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IPEF를 반 중국 동맹이라고 언급한 적도 없다”며,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서라면 IPEF를 추진할 필요없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복귀하면 될 일이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중국이 CPTTP 가입 신청을 했지만, CPTPP의 서비스 등 분야의 고도화 수준을 고려했을 때 중국이 CPTTP에 실제 가입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이니, 중국 견제용이라면 CPTTP 재가입만으로 미국이 중국 견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IPEF는 기본적으로 중국에게도 개방되어 있다”며, “중국이 참여국에서 상호 신뢰를 담보할 수 있다면 IPEF가 중국을 배제한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할 목적으로 IPEF가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 “현실적으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게 가능하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중간재 등에 중국산 부품이 다수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공급망 이슈에서 생선 뼈 발라내듯 중국만 콕 집어서 배제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취지다.
 

의도를 상대방이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중요한 국제 관계

 
하지만, 외교 안보 이슈에선 실제 의도와는 상대방이 다른 상대방의 의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지가 중요하고, 상대방 의도에 대한 인식이 관계를 규정할 수 있다. 군비 경쟁이라는 것도 방어를 위한 군비 확대가 상대방에게는 공세적 의도로 인식되는 과정이 반복된 결과 벌어졌던 일이다. 의도와는 달리 상대방이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IPEF는 대 중국 견제용이 아니라는 반복적 강조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IPEF는 대 중국 견제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이 12일 정례브리핑에서 IPEF와 관련해 "평화·발전의 시대적 조류에 순응해 지역 국가 간 상호 신뢰와 협력을 증진하고, 개방·투명·포용·평등·상호 신뢰와 상호 이익의 이념을 실현하고, 주권 존중, 내정 불간섭 등의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진 외교장관과 영상통화 하는 왕이 외교부장 (사진=중국 외교부 홈피 캡처, 연합뉴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디커플링’의 부정적 경향에 반대하고,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을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밝혔다. 첫 상견례 성격의 환담 자리에서 나온 이례적인 날카로운 발언으로, 한국의 IPEF 참여에 대해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문제는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이다. 외교가에서 “IPEF는 다자 협력체이기 때문에 중국이 특정 국가만 콕 집어서 보복할 가능성을 낮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하지만, 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을 당했던 적이 있는 한국 입장에서 남의 얘기하듯 전망하기는 어렵다.
 
의도에 대한 상대방의 인식은 고정돼 있지 않다.  때문에 IPEF 참여의 의미를 중국 측에 잘 설명하고, IPEF를 반 중국 견제용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만의 하나의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중국이 IPEF에 참여하는 특정 국가에 대해 경제 보복을 했을 때, 이에 대한 IPEF 참여국의 공동 대응 방안 마련도 필요해 보인다. 사드 배치는 한국보다 미국의 필요에 의해 배치된 측면이 컸지만, 사드 배치로 중국이 한국에 대해 경제 보복을 할 때 미국은 나서지 않았다.

(사진=중국 외교부 홈피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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