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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는 해방되었습니다"…문 전 대통령, 양산으로 가는 길

문재인 전 대통령의 9일 퇴근길과 10일 귀향길의 주인공은 어쩌면 문 전 대통령이 아니라 '시민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인파가 모여 물러나는 대통령을 배웅하는 장면은 그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지지층이 결집한 측면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는 '불행한 전직 대통령'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일반 시민들의 열망도 버무려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까지의 길을 현장 취재하며 기억에 남는 장면을 정리해봤습니다.
 

취임식 참석…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만남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서 만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면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만난 건 2017년 탄핵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인수위 없이 취임했던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4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었습니다. 당시 사면 이유로는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거론됐는데, 문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에게는 여러 가지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게 주변 참모들의 전언입니다. 취임식에서 문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과 3~4초 간 간단한 인사를 나눴는데요,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박 전 대통령 표정이 무척 밝았습니다.
 

1천여 명 모인 서울역광장…"섭섭해하지 말길, 해방된 것"

10일 서울역에 모인 지지자들과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문 전 대통령 내외는 관용차를 타고 낮 12시쯤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서울역광장엔 1천여 명의 시민들이 운집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전날 퇴근 당시를 회고하며 "역대 대통령 가운데 누가 그렇게 아름다운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 덕분에 저는 마지막까지 행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일부 시민이 "가지 말라"고 외치자 문 전 대통령은 "제가 퇴임하고 또 시골로 돌아가는 것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해방되었습니다. 뉴스 안 보는 것만 해도 어디입니까"라며 웃기도 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향후 계획에 대해 "반려동물 돌보고 농사짓고 주민과 막걸리도 마시겠다"고 했는데, '자유인' '해방'과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한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드디어 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앞 중계 모습

문 전 대통령이 양산 평산마을 사저에 도착한 10일 저녁 사저 앞쪽 모습입니다. 사저와, 일반 시민들이 오가는 도로 사이에는 논밭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논밭을 가로질러 사저로 통하는 진입로는 겨우 차 1대 지나갈 정도의 폭인 데다, 경호 직원들이 통제하고 있어서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저 뒤편에 옅은 회색 건물이 사저인데요,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만 8시 뉴스 때에는 캄캄해서 TV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참모가 사저를 가보면 문 전 대통령이 자연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양산 도착한 '첫날엔 사저에 정치인 들이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많은 정치인들이 양산을 찾았지만 10일엔 평산마을 주민 50여 명을 사저로 초대해 다과를 함께 하며 인사한 것이 공식 일정의 전부였습니다.
 

사저 도착 이튿날…찡찡이 안은 문 전 대통령

양산 사저에서 고양이를 안은 문재인 전 대통령

11일 오전 문 전 대통령이 사저에서 반려묘 찡찡이를 안은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문 전 대통령이 얘기한, 자유인으로 돌아온 모습을 직접 확인한 셈입니다. 문 전 대통령은 반려견 마루와 반려묘 찡찡이, 취임 후 입양했던 토리는 물론, 2018년 평양 방문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선물 받았던 풍산개 한 쌍 '금강·송이'를 양산 사저에서 키울 예정입니다.
 

청와대 참모 · 측근 그룹은 이튿날 사저로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찾은 청와대 참모들 (사진=연합뉴스)

청와대에서 마지막까지 문 전 대통령을 보좌한 참모들은 양산 도착 이튿날인 11일 오전 사저를 찾았습니다. 사진을 보면 박수현 국민소통수석과 박경미 대변인, 신지연 1부속비서관, 김외숙 인사비서관,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 등이 눈에 띕니다. 참모들은 9일 양산에 도착했지만 근처 통도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루하고 다음 날 문 전 대통령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을 보고 나온 한 참모는 "문 전 대통령 얼굴이 어제는 부어 있었는데 오늘은 부기가 빠져 5년 전 얼굴이 돌아왔다"고 전했습니다. 5년 내내 청와대에 있었던 참모 중 오종식 청와대 기획비서관과 신혜현 부대변인은 양산 사저에서도 계속 문 전 대통령을 보좌할 예정입니다.

양산 사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 양정철 전 비서관, 김태년 의원
양산 사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 (출처: 임종석 전 비서실장 페이스북)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인 임종석 전 실장을 포함해 양정철 전 비서관, 김태년 의원 등 측근 그룹도 같은 날 사저를 찾았습니다. 임 전 비서실장은 문 전 대통령을 보고 나온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저에서 문 전 대통령과 찍은 사진과 함께 "편안해 보이셨습니다. 대통령님 퇴근과 양산 가시는 길에 뜨겁게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라는 짧은 글을 남겼습니다.
 

"잊혀진 삶"…그러나 이달 공개 일정 남아

문 전 대통령은 "잊혀진 삶"을 살겠다고 했지만, 이달에 두 번 정도 공개 일정이 남아 있습니다. 첫 번째는 22일로 예상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에서 열리는 쿼드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계기에 한국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데, 이때 문 전 대통령을 만나자고 요청해왔다고 합니다. 만남의 장소는 양산이 아닌 서울이 될 거라는 게 대체적 관측입니다. 또 그다음 날인 23일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모제에 참석합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 추모제에서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오는 23일 추모제에 참석한다면 5년 만에 자리하는 셈입니다. 이 자리에서 어떤 내용으로 연설을 할지, 그것이 임박한 지방선거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가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문 전 대통령은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현실 정치가 문 전 대통령을 쉽게 놓아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임종석 전 비서실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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