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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쉽] 이 전쟁, 정말 9일에 끝날까?…오히려 확대 우려되는 러 vs 미 대결

우리에게 5월9일은 어버이날 다음날일 뿐이지만, 러시아에선 가장 중요한 기념일 중 하나다. 2천5백만 명의 목숨을 희생해가며 나치 독일을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하는 '대(大)조국전쟁 전승기념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2차대전 종전이 8월인 것은 미국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날을 기리기 때문이지만, 러시아는 독일의 항복을 받아낸 5월9일을 전승기념일로 기린다.

러시아는 1812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물리친 전쟁을 '조국전쟁', 히틀러의 독일군을 몰아낸 2차대전을 '대(大)조국전쟁'으로 부른다. 서방 정복자의 침략을 두 차례나 격퇴했다는 서사는 러시아 애국주의의 근간이 된다.
2020년 제75주년 러시아 전승기념일 군사퍼레이드.  모스크바 붉은광장 (사진: 게티이미지)

5월9일, 러시아에 왜 중요한 날인가?

모스크바 붉은광장 전승기념일 퍼레이드. 75주년이어서 특별히 성대하게 치른 2020년 행사는 코로나19속 준비로 인해 6월24일로 연기되어 치러졌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5월9일 전승기념일엔 러시아 군의 위용을 나라안팎에 과시하는 대규모 군사퍼레이드가 벌어진다. 가뜩이나 주목받는 이날, 올해는 세계의 관심이 더욱 집중될 전망이다. 5.9 전승기념일에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전쟁의 승리를 선언하고 전쟁을 끝낼 것이라는 전망을, 유럽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내놨다는 보도 때문이다.

이 얘기를 꺼낸 사람은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다. 헝가리는 동유럽의 나토 회원국인데, 그 지도자인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친러 성향에 권위주의적이어서 푸틴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재 역할을 자임하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여러차례 접촉해 왔다. 그런 오르반 총리가 지난4월21일 바티칸을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가 5월9일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교황 본인이 지난 3일 이탈리아의 한 일간매체와 인터뷰하며 공개했다.
[뉴스쉽] 프란치스코 교황과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푸틴, 5월9일에 모든 것 끝낼 계획 있어"

5월9일, 푸틴이 취할 수 있는 3가지 선택

개전 두달 반이 되어가는 참혹한 전쟁이 정말 다음 주면 끝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에서는 오늘도 러시아군의 파괴 행위와 우크라이나 군의 항전이 계속되고 있는데? 사실, 이 대화를 전한 교황의 이미지때문에 '끝낸다=평화' 라는 착시가 생길 뿐,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전한 '모든 것을 끝내기'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제시된 바는 없다. 오르반의 발언 진의를 알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외교관과 정보요원들이 총동원돼 뛰고 있는 상태다.

과연 러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 5월9일에 푸틴이 흔들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서방에서는 몇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돼 왔다. 외신보도들을 토대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푸틴이 공식적인 선전포고를 하고 총동원령/계엄령을 내린다.
2. 푸틴이 승리를 선언하고, 우크라이나 동,남부 점령지역 합병을 추진한다.
3. 푸틴이 승리를 선언하고, 전쟁을 끝낸다.

[시나리오1] 전면전 선전포고와 총동원령?

러시아군이 2월24일부터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한 적이 없다. 어디까지나 자기들 말로 '특수작전'을 진행하는 중이다.

그런데 러시아군은 만5천여 명의 병력을 잃고 전세계적인 망신을 당했다. 우크라이나 북쪽의 수도 키이우를 포기하고 동부와 남부로 병력을 집중했지만 아직 별다른 진척은 없다. 러시아군 수뇌부는 이런 현실을 치욕스러워 하며 푸틴에게 공식적인 선전포고와 국가총동원령을 내려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서방 정보당국들은 보고 있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내경제도 전시경제로 운용해 우크라이나 정복에 국가 총력을 쏟아붓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보와 무기 지원에 큰 역할을 해 온 영국이 주목할만한 전망을 내놨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말, '푸틴이 군사적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몇주 내에 국가총동원령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뉴스쉽]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 푸틴, 총동원령 가능성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도 지난 2일 "러시아가 9일 공식적으로 선전포고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과 영국이 공개한 정보의 정확성으로 볼 때, 이들의 발언이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나오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푸틴은 그동안 러시아 국내여론을 상대로 "이기고 있다", "전쟁이 오래 걸리는 것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가며 특수작전을 하고 있기 때문" 이라고 선전해 왔다는 것이다. 이제와서 전면전을 선언하고 총동원령, 계엄령을 발표한다면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이런 볼멘소리가 나오기 십상이다. "이기고 있다면서 왜 우리 아들들이 우크라이나로 징집을 가야 하며, 추가 전쟁비용을 대기 위해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나?"

이에 대해 푸틴은 '서방이 러시아를 말려죽이려 들기 때문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이유를 댈 가능성이 높다. (이 부분은 기사의 후반부에 추가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하기에 5월9일 전승기념일은 푸틴에게는 괜찮은 상징성을 가진 날이다. 나폴레옹을 물리친 1차 조국전쟁, 히틀러를 물리친 2차 조국전쟁에 이어서, 미국과 나토를 물리칠 제3차 조국전쟁을 승리해야 한다고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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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퍼레이드를 연습중인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톡의 러시아 병사들. 오는 9일엔 러시아 전역, 심지어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도 군사퍼레이드가 열릴 전망이다. (사진: 타스통신-연합)
크렘린 궁의 페스코프 대변인은 전승절에 러시아가 전면전을 선언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사실이 아니며 말도 안 된다"라고 답했다. 국영 타스통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가 이날 총동원령을 발표할 것이란 관측에 대해서도 페스코프 대변인은 "그럴 가치가 없다"고 부인했다. 러시아의 거짓말 이력을 감안할 때 말을 믿기보다는 행동을 봐야 하지만, '전면전/총동원설'이 현실화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시나리오2] 푸틴, '상징적 승리' 선언하고 일부지역 합병 추진?

'국제위기감시기구(International Crisis Group)'의 러시아 분석가인 올레그 이그나토프는 CNN에 "푸틴은 현재 공격을 집중하는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할 것"이라며 "전승절은 자신에 대한 지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중요한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쉽] 올레그 이그나토프, 푸틴은 전승절에 승리 선언 원할 것
전시 총동원령은 아무리 푸틴이라지만 상당히 부담이 따르는 선택이다. 서방의 분석가들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에 지상군 전력의 65%를 밀어넣었고 그중 1/4은 병력과 장비손실로 인해 전투불능 상태다. 해군은 최대규모 기함을 잃었다. 12명 상의 장군이 살해당했다. 총동원령을 내린다한들 승리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미국 영국 독일 등 경제력이 훨씬 큰 나토 회원국들이 계속 무기와 물자 지원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1940년대의 소련이 독일군을 꺾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이 무제한으로 무기와 전쟁물자를 지원해 줬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핵을 제외한 무기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지원한다. 2차대전 당시 영국과 소련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던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을 1945년 9월 이후 77년 만에 다시 발동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민주주의 방어를 위한 무기대여법에 서명하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지난 2일 (사진: 게티이미지-AFP)
그래서 푸틴이 취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수는, 5월9일을 기해 '상징적인 승리'를 선언하고, 지금까지 얻은 것을 '굳히기'에 들어가는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실제 군사적으로 전쟁을 이긴 것이냐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정보가 차단된 러시아 국민들에게 그냥 그렇다고 우기면 되기 때문이다.
[뉴스쉽] 우크라이나 전황 지도(1)

현재 러시아의 군사작전은 수도 키이우 일대는 포기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돈바스 지역 등 동부는 러시아 본토와 맞닿아있고 러시아계 주민 비율이 높아, 분리독립 후 러시아 연방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움직임이 예전부터 있던 곳이다. 동부와 남부를 잇는 마리우폴, 남부의 중심 항구 오데사 등은 우크라이나가 바다를 통해 외부세계와 교역하는 관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를 장악하면 수도 키이우와 중서부 우크라이나를 동,남,북 3면에서 틀어막고 서서히 질식시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동부와 남부 점령지를 교두보삼아 나중에 보다 유리한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뉴스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봉쇄 추진 전략 지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에 지난 3월초 점령한 도시 헤르손(Kherson)에서, 주민들이 부쉈던 레닌의 동상을 재설치하고 러시아 화폐인 루블의 사용을 강제하는 등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 '러시아 정체성' 심기 작업을 시작한 상황이다. '주민들이 원한다'는 명분을 조작해, 우크라이나 동·남부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만드는 작업을 5월9일을 기점으로 시작하거나 선언할 수 있다.

미국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대사인 마이클 카펜터는 지난 3일, 정보 보고를 토대로 한 국무부 회견에서, 러시아가 5월 중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도네츠크·루한스크를 러시아에 병합하기 위한 엉터리('sham') 주민투표를 진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는 이미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에도 이런 수법을 쓴 바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카펜터는 또, 러시아가 헤르손을 3번째 친러 인민공화국으로 선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쉽/ 마이클 카펜터, 러시아, 엉터리 주민투표로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 합병 추진 가능성
이 주민투표가 자유로운 비밀투표 방식으로 치러지지 않을 것임은 불보듯 뻔하다.

"푸틴, 우크라이나에 '한국식 분단' 추진"

이를 통해 러시아가 노리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한반도처럼' 만들려는 시나리오라는 분석도 있다.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장은 지난달 국방부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한국처럼 둘로 쪼개려 한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러시아의 침공을 예견한 그는 푸틴이 수도 키이우 점령 실패 후 전략을 수정했다며 "우크라이나판 남한과 북한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스쉽]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장, 푸틴이 한국 시나리오 추진
그러면서 "러시아는 러시아 국경에서 크림반도까지 육로로 연결할 의도를 갖고 있으며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하나의 독립체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나리오3] 푸틴이 승리를 선언하고 전쟁을 끝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희망하는 시나리오가 이것이지만, 현재의 전장 상황과 국제적 대립구도를 볼 때 현실성이 가장 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군의 완전 철수와 확실한 전후처리, 관계국들의 안전보장 없이 애매하게 전쟁이 끝날 경우, 러시아는 서방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시점을 노려 우크라이나를 다시 침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그런 가능성의 싹을 잘라놓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전략 변경] 이 기회에 러시아를 꺾어놓겠다?

지난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이 전쟁에는 러시아와 서방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어떤 선이 있었다. 전쟁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면서도 러시아의 교전상대국이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비행금지구역 설정 요청을 미국이 끝까지 거부한 점, 구소련제 미그 전투기를 우크라이나에 넘겨주는 문제를 두고 동유럽 나토 회원국들과 미국이 서로 등을 떠밀었던 일 등이 그 예다.
러시아 vs 미국의 직접적 대결로 전쟁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 (c)SBS 뉴미디어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상당히 달라졌다. 미국에서는 '전쟁의 목표가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 초기에는 '우크라이나 방어'가 목적이었는데, 이제는 '러시아의 장기적 무력화'로 변경되었다는 관측이다.

이런 분석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지난달 24일 미국 블링컨 국무장관과 오스틴 국방장관이 함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한 일이다. 미국의 대외관계를 총괄하는 두 장관이 함께 전쟁터를 찾아 지원을 약속한 것 자체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인데, 그 여정의 길고 험난한 정도는 우크라이나를 도와 러시아를 약화시키려는 미국의 의지를 보여준다.
굳은 표정으로 폴란드행 수송기에 오르는 블링컨 미 국무장관. 지난23일 미 앤드류스 공군기지 (사진: 동행취재단 사후공개-로이터, 연합)
두 장관은 미국 수도 워싱턴 근교의 공군기지에서 미군 수송기를 타고 먼저 폴란드로 향했다. 폴란드에서는 극비리에 자동차로 갈아타고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이동했다. 그런데 중간에 이들의 비밀 키이우행이 공개되어버렸다. 러시아의 위협이나 방해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두 장관은 여정을 취소 또는 변경하지 않고 키이우 행을 강행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는 기차로 갈아탔다. 키이우까지 기차로만 11시간을 달렸다.
4월24일, 키이우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에서 만난 오스틴 미 국방장관(좌)-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중)-블링컨 미 국무장관(우). (사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로이터)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폭 지원을 약속한 뒤 폴란드로 나온 두 장관은 기자회견을 했다. 여기서 오스틴 국방장관이 한 말이 큰 파장을 낳았다. 그는 "미국은,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에서 한 것과 같은 짓을 앞으로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도록 확실히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뉴스쉽]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 러시아의 약화 원한다
데이빗 생어는 뉴욕타임스에서 30여년간 미국 외교안보 정책결정 최상층부를 취재해와 웬만한 당국자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언론인이다. 그는 오스틴 국방장관의 발언이 '미국의 진정한 목표는 앞으로 수년간, 아마도 푸틴이 집권하는 동안 침략행위를 못 하도록 러시아의 국력을 저하시키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스틴 국방장관의 발언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 것을 백악관이 요청했다면서도, 데이빗 생어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몇주 전까지 미국의 대응은 우크라이나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러시아의 군사행동을 중단시키고 그들이 협상테이블에 앉도록 강제하려는 데에 주안점이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봐도 그렇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러 양국 군대가 직접 충돌하면 3차대전이 날 것을 우려했다. 러시아 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잔학성을 지적했지만 러시아 자체의 근본적 약화를 추진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
[뉴스쉽] NYT 데이빗 생어, 미국의 새로운 전략-러시아 약화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발언은 새로운 전략적 목표를 시사한다. 미국이 서방국가들을 선도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려는 대규모 무기지원 패키지를 봐도 더욱 공세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지원의 규모와 속도는 2차대전 이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과 나토 주요국들이 왜 이렇게 태도가 바뀌었느냐고? 우크라이나의 승리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상황이 고조되면 리스크도 커진다. 일이 잘못될 가능성도 많아진다."

[리스크] 푸틴은 어떻게 반격할까

문제는, 러시아의 반응이다. 미국의 목표가 '우크라이나 방어'가 아니라 '러시아 약화'임이 분명해지면, 푸틴은 러시아 국민을 상대로 이런 선동을 할 명분을 얻게 된다.

'보아라, 어머니 러시아에 치욕을 안기려는 저 침략자들의 음모를! 본때를 보여주자. 조국을 지키기 위해 더 가열차게 싸우자! 조국은 여러분의 희생을 요구한다!'
75주년 전승기념일 연설을 하는 붉은광장의 푸틴. 올해는 어떤 연설을 할 것인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서양 말에 '곰을 찔러본다(poking the bear)'라는 말이 있다. 성을 내면 감당 못 할 상대를 공연히 자극해 일을 키운다는 뜻인데, 러시아를 필요이상 자극하면 곤란하다는 말을 할 때 흔히 이 표현을 쓴다.

푸틴은 지난 3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공급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러시아군은 서방이 지원한 무기의 집결지를 미사일로 공격하고 있지만, 그 대상은 우크라이나 영토 내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사태가 악화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나토 회원국(이를테면 폴란드) 내의 무기 집결지를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걸핏하면 핵무기 선제사용 위협도 일삼는다.

이 경우 "나토 회원국 영토를 1인치까지 방어하겠다"고 공언해 온 바이든 대통령은 매우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과연 정말로 러시아와 무력 충돌을 벌여야 할 것인가. 그 사태가 핵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을까.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미국 공영 PBS방송 토론에 출연해 "미국의 전략 변경은 푸틴의 판돈을 키워주는 나쁜 수"라고 우려했다.
4월21일 바티칸 궁에서 마주 앉은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좌)와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바티칸 미디어, AFP)
저대로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달리 어떻게 해 볼 방법도 마땅치 않은 푸틴 때문에 세계는 불과 석 달 전엔 생각할 수 없었던 위험한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평화의 선의로 가득찬 프란시스 교황은 '모스크바로 찾아갈테니 만나자'고 푸틴에게 제의했다. 푸틴은 가타부타 답이 없다.

(구성: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콘텐츠디자인: 옥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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