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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비하인드] 그들은 왜 '감염'을 숨길까

그들은 왜 감염을 숨길까
※ '코로나 비하인드'는 코로나19 취재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SBS 보도본부 생활문화부 박수진 기자의 취재기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사에는 담지 못했던 박 기자의 취재물과 생각들을 독자들께 풀어놓습니다. [편집자 주]

두 줄. 분명 아침에 검사 했을 땐 한 줄이었는데, 혹시 몰라 퇴근길 아파트 주차장에서 해본 자가검사 키트에 선명한 두 줄이 찍혔습니다. 아침부터 미열이 있었는데 저녁이 돼서야 명확히 나타난 겁니다. A씨는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문 앞에 옷이랑 감기약이랑 세면도구만 꺼내놔 줘." 혼자 머물 수 있는 숙소를 급히 찾았고, 아내가 내놓은 짐을 들고 그 길로 '자체격리'에 들어갔습니다.

A씨가 집을 나와 '자체격리'를 시작한 지 오늘로 나흘째입니다. 그는 아직 PCR 검사나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확진 의심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업이라 회사에 출근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업무상 미룰 수 없는 미팅은 회사 밖 외부 공간에서 한 차례 참석했습니다. 이외 사람은 최대한 만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편의점이나 식당은 음식 포장을 위해 몇 번 방문했습니다. 아직 '한 줄'은 보지 못했습니다.

(3일용) [코로나 비하인드] 그들은 왜 '감염'을 숨길까

자발적 숨은 감염자, '샤이 오미크론'

'숨은 감염자' 또는 '샤이 오미크론'. A씨처럼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음에도 정식 검사를 받지 않아 정부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발적 숨은 감염자'라고 표현해야 좀 더 정확합니다. 감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숨은 감염자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집계는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자발적, 비자발적 숨은 감염자들을 합치면 국내 확진자 규모는 지금보다 2~3배 많을 걸로 보고 있습니다.

'샤이 오미크론'이라는 말은 국내 언론에서 먼저 사용되기 시작됐습니다. 이 말이 처음 기사에 등장한 건 지난 3월 7일 한국일보의 <"차라리 PCR 검사 안 받겠다"... 늘어나는 '샤이 오미크론'>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쓴 류호 기자에게 이 표현을 사용하게 된 계기를 물었습니다. 류 기자는 "우리나라에서 '샤이~'라고 하면 자신의 상태나 성향을 숨기는 사람들로 통용되는데, 오미크론 유행으로 검사와 의료체계가 대폭 바뀌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 같았다"며 "확진자라는 걸 숨기고 싶다, 숨기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걸 알게 됐고 방역당국이 놓치고 있는 이들을 역설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을 고민하다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대중들이 이른바 '샤이 오미크론'에 대해 인상 깊게 인지하게 된 대표적인 사건(?)도 있었는데요, 지난 달 1일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한 글과 사진이었습니다. 자신을 배달원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두 줄'이 선명한 자가검사 키트 사진과 함께 "PCR 검사 받고 확진자 되면 밖에 못 돌아다닌다고 해서, 그래서 안 받으려고요"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배달 갔는데 손님이 코로나 걸려서 미안하다고 간식거리를 줬는데, 저도 코로나 걸려서 괜찮다고 했는데도 챙겨주더라"며 과자 꾸러미 사진을 인증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을 그대로 인용한 기사들이 쏟아지며 논란이 되자 글은 삭제 됐습니다. 당사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이 내용이 정말 사실인지 저는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 글이 '샤이 오미크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깨우게 한 계기가 된 건 분명해 보입니다.

자가진단 양성인데 배달 계속한 배달기사 사연글

자체 격리 중인 "확진 의심자" A씨

감염을 숨기는 이유는 뭘까. 그게 궁금했습니다. 취재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숨은 감염자입니다'라고 드러내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블로그나 게시판에 비슷한 취지의 글을 남긴 사람들에도 쪽지를 보내보기도 했지만 충분한 피드백을 받진 못했습니다. 그러다 A씨의 사례를 알게 됐습니다.

그는 30대 직장인입니다. 자신이 "확진 의심자"라는 사실은 아내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쓰며 1인 숙소를 구했고, 매일 자가검사 키트를 하고, 약국에서 구입한 테라플루, 타이레놀, 목감기 약 등을 먹으며 '버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38~39도까지 열이 올랐지만 이틀이 지나니 사라졌고, 현재는 목이 잠기는 정도를 빼면 별다른 증상은 없다고 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고, 사람을 최대한 만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왜 검사를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필 격리하기 가장 어려운 상황에 두 줄이 떴어요. 제가 하지 않으면 대체가 안 되는 일이 회사에 있었는데 그걸 미룰 수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아프지 않았어요. 평소 감기 걸렸을 때 정도의 증상만 있더라고요. 검사 받아서 일 꼬이고 시끄러워지는 것보다 검사 안 받고 알아서 조심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A씨의 사정이 공감되는 면도 있었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는 이기적인 선택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이기적인 행동이다'라고 묻자 A씨는 "맞는 말"이라고 수긍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비판받아도 할 말 없다고 생각은 해요.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어요. 오미크론 유행이 확산하고 하루 확진자가 수십만 명씩 나오면서 정부가 검사나 격리 체계를 많이 바꿨잖아요. 요즘 병원 가면 양성 판정 받고 나오는 사람과, 다른 진료를 받기 위해 방문한 비 확진자가 한 공간에 섞여 있어요. 대중교통, 식당도 마찬가지고요. 이미 어디서 감염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노출 시킨 게 정부의 방역 정책인데, 검사 안 받고 버티는 개인만 처벌하면 되는 건가요? 확진돼서 재택치료해도 개인이 알아서 약 사먹고 버티는 건 마찬가지지만, 격리를 해야 해서 발생하는 개인의 문제를 정부가 책임지진 않잖아요."

(3일용) [코로나 비하인드] 그들은 왜 '감염'을 숨길까

'샤이 델타'는 없었는데 '샤이 오미크론'은 왜?

A씨의 주장을 두둔하긴 어렵습니다.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 지침을 준수하는 국민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지난달 15일 발표한 '코로나19 국민 인식조사'를 봐도 응답자의 78% 이상이 감염 의심 증상이 나타나거나 밀접접촉자로 연락을 받으면 스스로 검사를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숨은 감염자'들의 주장 중 고민해볼 지점은 있다고 생각됩니다. A씨만큼 자세히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 취재원은 없었지만, 그를 비롯해 취재를 하며 직간접적으로 소통하게 된 '숨은 감염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전하는 메시지가 '일관되지 않다', '혼란스럽다'는 주장입니다.
"거리두기는 계속 풀리잖아요. 하루 20~30만 명씩 확진자 나오지만 '감소세'라고 말하고요. 풍토병으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접촉자나 동거 가족 격리 안 하게 된 거나, 역학조사나 GPS 추적 안하는 것도 이젠 괜찮아졌다는 뜻 아니에요? 그런데 격리는 왜 하는 거죠?"

"위중증 환자,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위험한 감염병 이라면서도 정부는 이제 크게 손을 쓰지는 않을 거라는 신호를 계속 주잖아요. 재택치료해도 보내주는 것도 없고요. 이러면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건 무책임한 처사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불편을 감수하며 방역 지침을 준수하고 있지만, 오미크론 유행으로 방역과 의료체계에 잦은 변화가 생기는 과정에서 혼선이 커지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이런 현상은 오미크론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 됐습니다. 델타 변이가 한창 유행하던 지난 해 말, 당시 일일 최대 확진자는 지금의 40분의 1수준인 7천 명대에 불과했지만 중증화율과 치명률이 높았던 탓에 감염에 대한 우려는 훨씬 더 컸습니다. (당시엔 '샤이 델타'란 표현도 없었고, 자발적으로 감염을 숨긴다는 의미의 '숨은 감염자'의 존재도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중의 감염 위험 인식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변이가 거듭되며 코로나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면서, "감염될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위험하진 않다"는 인식이 커졌습니다. 실제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연구팀의 지난 3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서도, '내가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이 전체의 27.8%였는데 전 국민 대상으로 시행한 인식 조사 중 최고치를 기록했고, '감염 되면 그 결과는 심각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47.9%로 그동안 조사 중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3일용) [코로나 비하인드] 그들은 왜 '감염'을 숨길까

방역당국 신뢰도 하락…국민 수용성 높이려면?

이 과정에서 정부와 방역당국에 대한 신뢰도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감염병 대응 주체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전체의 52.4%와 63.3%가 정부(청와대, 지자체)와 방역당국(복지부, 질병청)을 신뢰한다고 답했는데, 약 2년 전인 2020년 6월 기준으로 보면 방역당국의 신뢰도는 83%에서 23%p, 정부의 신뢰도는 6.7%p 하락했습니다. 여전히 전체의 과반 이상에서 신뢰를 얻고 있긴 하지만 코로나 초기 높은 신뢰도와 비교하면 지금은 그 신뢰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 '코로나19 국민 인식 조사' (3.15)

유명순 교수는 SBS와 인터뷰에서 이를 두고 "방역 당국 신뢰도가 전체적으로 하락 중인 건 맞지만 아직 과반을 넘고 있어서 신뢰도 하락이 현재 나타나는 현상(숨은 감염자)의 주된 원인이라고 말하기엔 뒷받침할 근거가 좀 더 필요해 보인다"고 해석했습니다.

다만 "오미크론 우세화 상황에서는 이전처럼 강력한 조치나 엄벌의 방식으로의 직접 개입형 방역 정책보다는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방역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국민의 연대와 참여가 뒷받침될 수 있도록 소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의 정책 변화의 흐름도 '자율 방역'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과거의 정책과 새로운 정책이 혼재되고 있습니다. 이런 과도기 속에선 정부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국민 소통 노력이 필요한데, 이게 부족해 '왜 이랬다저랬다 하느냐'는 반발과 혼란이 커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유 교수는 "소통 관점에서는 검사-격리가 자신의 보호이자 전파 확산을 막아서 내 가족과 주변을 보호하는 사회적 동기와 기여가 있는 것임을 잘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3일용) [코로나 비하인드] 그들은 왜 '감염'을 숨길까

정부는 현재 1급 감염병인 코로나19를 2급 감염병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2020년 감염병 분류체계를 4군 체계에서 등급 체계로 바꾼 이후 1급 감염병 등급이 하향된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 2급 이하로 내려오게 될 경우 현재의 격리 지침은 물론 검사 기준도 바뀔 수 있습니다. "금방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게 방역당국의 이야기지만, 이미 조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당국의 브리핑이 있었던 만큼 국민들의 인식은 '코로나 등급이 낮아진다'에 맞춰지게 됐습니다. 충분한 설명과 소통이 생략된 설익은 발표는 혼란을 초래하고, 정책의 신뢰도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코로나 감염을 숨기는 행위는 분명한 개인의 이기심이지만, 어쩌면 정부 정책과 국민 수용성의 괴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변이가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취재 : 박수진, PD : 김도균, 일러스트 : 김정연,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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