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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윤석열 정부 '선한 정책'의 '악한 결과' 경계해야

만병통치약 정책은 없다

[깊은EYE] 윤석열 정부 '선한 정책'의 '악한 결과' 경계해야

'만병통치약' 정책은 현실에 없다

우문이지만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과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후보가 각기 다른 공약을 내건 이유가 뭘까. 그것은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 만병통치약 같은 정책은 없기 때문이다.

풍력이나 태양열 같은 친환경 수단을 선택하면서 전기료는 낮추는 에너지 정책이 있다면 후보들이 다른 공약을 내걸 이유가 없다.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주면서 고용을 늘리는 일자리 정책이 가능하다면 선택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

교육평준화를 하면서 학력수준은 높이는 교육정책, 재건축 재개발을 억제하면서도 집값을 안정시키는 부동산 정책, 아픈 역사의 책임을 끝까지 물으면서도 미래지향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외교정책 같은 것도 최고의 정책이다. 하지만 현실에는 없다.

어떤 정책이든 그 기저에는 가치가 내재되어있다. 그런 가치들은 아쉽게도 대부분이 다른 가치들과 상충하는 것들이 많다. 자유와 평등, 개발과 환경보호, 성장과 분배, 안전과 효율, 기회의 균등과 결과의 균등 같은 것들이 그렇다.

정책은 불가피하게 이런 상충되는 가치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방점이라도 두는 게 현실적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겠다는 것은 정치적 수사로는 훌륭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경험적 진실이다.

친환경은 모두가 원하는 현재와 미래 가치다. 막대한 비용증가라는 '악한 결과' 없이 태양열과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친환경 에너지 체계 구축이라는 '선한 의도'를 실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재인 정부의 장관들은 국정감사에서 탈원전을 이유로 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었지만, 한전은 올해 4월과 새 정부 출범이후인 10월 두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대폭 올릴 수밖에 없다고 예고하고 있다. 그 배경은 한전의 영업손실이 지난해 6조 원에 육박했으며, 올해는 최대 20조 원에 이를 거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원인 중에 하나가 원전이라는 효율을 버린 것이다.

대구시 인구만큼의 좋은 일자리 사라지고 나쁜 일자리 생겨나

선한 정책이 선한 결과를 담보한다면 정책 선택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명분도 좋고 결과도 좋은데 그걸 선택하지 않을 정부가 어디 있겠는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선한 의도와 함께 선한 결과를 장담했다. 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며 공공일자리를 늘리면 국민의 소득이 올라갈 거고, 그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면서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고용증대와 국가발전이라는 선한 결과를 낳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선한 의도는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단적인 통계로 보면, 좋은 일자리로 불리는 풀타임 일자리의 근로자 수는 2020년 말 기준 1,889만 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말에 비해 무려 195만 명이 줄었다. 반면, 세금으로 만든 단기 일자리는 213만 명 늘었다.

대략 대구시 인구만큼의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에서 '나쁜 일자리'로 대체됐으며, 청년 구직난과 비정규직 불안은 오히려 가중됐다.

성장과 복지 동시해결은 불가능

윤석열 당선인의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이란 공약 역시 그런 측면에서 살펴볼 구석이 많다. 이미 이전 정권들이 많이 내세웠던 '물 좋고 정자 좋은' 구호였기에 기시감 역시 높다. 게다가 보수와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아직까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이뤘다고 평가받은 정권은 없었다.

가장 좋은 분배는 좋은 일자리를 통해 이뤄진다. 좋은 일자리가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 완화와 더불어 기업 자체의 혁신 및 구조개혁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낙오하는 근로자가 생기고, 또 노동유연성을 높이다 보니 비정규직이 늘어나 분배기능이 취약해지게 된다.

그런데도 이전 정부들은 성장과 복지가 자연스럽게 선순환하는 것으로 포장해왔다. 양립할 수 없는 가치나 속성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것은 정치 구호로는 가능하지만 현실 경제에서는 불가능하다. 억지로 동시에 강행하다 보면 상호 가치 충돌로 둘 다 망가질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도 따지고 보면 일자리·복지와 성장을 동시에 강행하려다 실패한 사례이다.

그래서 항상 매몰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수사지만, "파이를 키워서 나누자"는 게 보다 현실적일 수 있다. 성장 우선 정책으로 조세수입을 늘리고, 여력이 커진 재정의 분배 기능을 통해 좋은 일자리에서 탈락한 이들을 집중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선한 정책'의 '악한 결과'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파이를 키우는데 성공했던 과거 사례들이 "키운 파이가 과연 나눠졌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키운 파이가 나눠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심각한 소득 양극화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극심한 진영 갈등의 원인도 바로 그 것이다.

먼저 해야 할 것에 집중하되, 나중에 해야 할 것도 잊지 않고 반드시 해내는 것이 성장과 복지를 포함한 모든 정책에서 이른바 '선순환'의 조건이다. 실질보다는 명분에 집착한 정책, 현실보다는 이념에 천착한 정책, 상충되는 가치를 한꺼번에 버무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정책은 그 '선한 의도'가 '악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고철종 논설위원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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