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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대 대선 출구조사 발표 전 돌아다닌 '찌라시'의 진실은?

SBS 출구조사 담당자의 '받은글' 팩트체크

정혜진 취재파일 출구조사 봉투

출구조사 업무를 맡으면 '결과를 미리 알려 달라'는 부탁에 난감할 때가 많았습니다. 예전에는요. 그런데 이번 대선에선 '이런 게 돌아다니는데 맞느냐'는 질문이 더 난처했습니다. 여느 선거보다 출구조사 관련 속칭 '찌라시'도 유난했습니다. 받은글, 정보글, 받), 취재정보 등 이름도 다양했고요. (참고로, '미리 알려달라'는 부탁은 최근엔 거의 없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사람은 진위 판단이 어려운 숫자를 앞세워 거짓말을 합니다. 출구조사 담당자 눈에는 숫자를 앞세워 출구조사 프로세스나 디테일을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찌라시에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긴 글이 될 것 같아 미리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선거 당일 돌아다닌 출구조사 관련 찌라시는 다 '가짜뉴스'였습니다. 이번 대선 SBS 출구조사 담당자인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관련해서는 말입니다. 출구조사 결과는 지상파 3사 본방송으로 직접 확인하시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제가 받았던 찌라시 중에 몇 개 골라서 시원하게 팩트체크 한 뒤에, 출구조사 관련해서 좀 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출구조사 시간대별 중간 집계를 알 수 있다? 정답은 "불가능"

 
정혜진 취재파일 출구조사 찌라시
 
출구조사 발표 서너 시간 앞두고 '받은 글'입니다. 시간대별 윤석열-이재명 후보의 득표율 차이를 구체적으로 썼는데요. 사실이 아닙니다.

지상파 3사는 "출구조사의 보안 유지 및 공직선거법 위반 방지를 위해 출구조사 진행 중 조사회사로부터 출구조사 결과에 관한 어떠한 형태의 중간 현황 보고도 받을 수 없다"는 보안 합의 이행 각서 내용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사회사는 조사결과가 대외적으로 유출될 경우에 유출 시점에 관계없이 전체 용역 금액의 '상당 부분'을 위약벌로 부담한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들어가 있습니다. 조사회사 입장에서는 수억에서 수십억 원대 벌금도 문제지만,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이 글 후반부에 설명드릴 '초대형 유출 사건'으로 모 조사회사가 출구조사 풀에서 퇴출된 일도 실제 있었습니다. 여론조사기관으로서의 신뢰도가 바닥을 친 건 당연지사고요.

출구조사는 지상파 3사의 파트너 조사회사 3곳이 공동으로 수행합니다. SBS의 협력사는 입소스, KBS는 한국리서치, MBC는 코리아리서치입니다. 출구조사 결과는 각 방송사의 선거팀 기자와 전산담당자 등 2명 내지 3명의 사전 지정자만 받을 수 있습니다. SBS의 경우 저와 전산 담당자 2인이 출구조사 결과를 수신합니다.

선거 당일 약속된 출구조사 결과 수신 시간 전에는, 제가 입소스 담당자에게 전화해도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조사회사 3곳의 출구조사 데이터가 모이는 '본부'에 입실하는 극소수의 담당자들은 휴대전화를 밖에 놓고 들어가도록 돼 있습니다. 출구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지상파 3사의 노력 못지 않게, SBS의 오랜 파트너사이자 출구조사 주간사 역할을 하는 입소스도 보안 유지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출구조사 초기에는 지상파 3사가 파트너 조사회사로부터 시간대별 득표율 데이터를 받아 본 적도 있었고, 지상파 출구조사 담당자가 조사회사 본부에 가서 직접 실시간 데이터를 보기도 했습니다. 십여 년도 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거법 위배 소지도 있고, '초대형 유출 사건' 영향도 커서 중간 집계는 알 수 없는 현재의 보안 규정에 이르게 됐습니다. 앞으로 다른 선거에서 '중간 집계' 형식의 찌라시가 또 돈다면, 그것은 '가짜 뉴스'입니다.
 

사전투표 전화조사 결과라고? "수치도 틀렸고 결과도 미리 안 받았다"

 
정혜진 취재파일 출구조사 찌라시
 
언론사 취재정보 형식의 글인데요.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관련인지 다른 방송사 얘기인지 불분명합니다만, 3사 출구조사 얘기라면 '가짜뉴스'입니다.

지상파 3사 사전투표 보정용 전화조사 전체 결과는 이재명 후보 42.1% 대 윤석열 후보 46.5%로 나타났고요. 이 중에서 사전투표를 한 경우만 보면, 이재명 후보 50.9% 대 윤석열 후보 41.9% 였습니다. 이를 출구조사 결과에 반영하기 위해 실제 사전투표자의 성, 연령, 지역별 비중 대로 가중치를 준 보정값은 이재명 후보 51.7% 대 윤석열 후보 44.7% 였습니다. 10%p차로 나타난 결과는 없습니다. 조사는 이틀에 걸쳐 진행됐고, 7일 하루에 해당하는 결과는 별도로 없습니다. 출구조사 결과 전달 시점도 정확히 밝히긴 어렵지만 19시 20분은 아닙니다.
 
정혜진 취재파일 출구조사 찌라시
 
무엇보다 사전투표 예측을 위한 전화조사 결과는 출구조사 결과와 함께 투표 당일 같은 시간에 지상파 3사로 넘어왔습니다. 투표 종료 전 결과가 유출될 경우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지상파 3사가 사전투표자 전화조사 결과도 미리 받지 않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입니다.
 
정혜진 취재파일 출구조사 찌라시
 
이 외에도 출구조사 결과 발표 전후로 떠돌던 사전투표 보정 전후 수치라는 '받은글', 출구조사 원자료라며 돌아다닌 '정보글' 등 모두 수치가 틀렸거나, 출구조사 발표를 보고 결과값만 반영한 뒤 있지도 않은 보정 전 수치를 운운하며 출구조사 결과를 오독하게 하는 글들도 있었습니다.
 

미리 알려 달라고요? 못 알려 드리고 알려 드릴 방법도 없습니다. 왜냐면…

 
저는 2년 전 총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SBS 선거방송 출구조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석 달도 안 남은 지선도, 아마도… 그럴 거 같습니다. 간접적으로 출구조사 관련 업무를 했던 것까지 하면, 적어도 2010년 이후 선거 방송에서 출구조사와의 인연이 적지 않습니다.

출구조사 업무를 하다 보면 '이런 저런 이유가 있으니 결과를 미리 알려줄 수 없겠냐'는 권위에의 호소 내지는 인정에의 호소 앞에서 번민하는 순간이 없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인맥을 통해 연락이 왔었습니다만, 최근엔 정말 거의 없어졌네요.) 출구조사 초기에는 아주 일부지만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기도 합니다. 당시 업무 프로세스 상, 출구조사 발표시간 30분 훨씬 전부터 결과가 셀 수 있는 '구멍'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구멍이 커지다 제방이 터진 대형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법원 판결로도 많이 알려졌죠. JTBC가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를 입수해, 일부 결과를 지상파 3사 본방송보다 먼저 발표해 버린 건데요. 당시 "JTBC는 출구조사 결과를 미리 입수할 것에 대비해 선거 1주일 전 1천만원을 들여 선거방송 그래픽 시스템을 바꾸기까지 했다"는 검찰 수사 내용이 재판 과정에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JTBC 법인은 형사 재판에선 처벌을 면했지만, 지상파 3사가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선 최종 패소했습니다. 대법원은 JTBC가 지상파 3사에 각 2억원씩 지급하라는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조사 결과를 사전 동의 없이 사용한 것은 지상파 3사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 사용한 것"이라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출구조사의 보안 지침은 한층 더 강화됐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내용들이 되겠습니다. 지상파 3사의 지정 수신자 2~3인 만이 정해진 시간에 결과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미리 결과를 받아보거나 중간 보고를 받는 것은 시스템적으로 불가합니다. JTBC 사건에 연루됐던 조사회사는 출구조사 풀에서 배제됐습니다. 계약서와 보안유지 각서 조항도 한층 더 촘촘해졌고 위약벌도 강화됐습니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무엇보다 출구조사 사전 유출은 출구조사의 존립 자체를 위협합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좀 더 정확하고 신속한 선거 정보 전달 도구가 오히려 선거 질서에 악영향을 끼쳐선 안 될 것입니다.

지상파 3사가 제각각 해 봤다가 틀리고, 2개사 대 1개사가 따로 또 같이 해보다가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다 3사는 2010년 3월 KEP(Korea Election Pool, 방송사 공동예측조사위원회)를 결성했고, 지금 형태의 출구조사가 자리 잡았습니다.

이번 대선 초접전 상황 속에서도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의 정확성은 예술이라는 찬사까지 받았습니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는 어떠한 정치적 고려 없이 오직 과학적 방법론에 의거해 이뤄집니다. 정확한 예측을 위해 방송 3사와 더불어 조사회사, KEP 자문교수단, KEP를 주관하는 한국방송협회는 앞으로도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번 대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출구조사의 모든 것'을 풀어보겠습니다.
 
정혜진 취재파일 출구조사 찌라시
 
이 긴 글의 결론은, 출구조사는 지상파 3사 본방으로 확인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는 겁니다. 본방사수! 그리고, 가급적 SBS '국민의 선택' 개표방송으로 보시면 어떨까 하고 바라봅니다. 2022 국민의 선택, 지방선거 개표 방송이 석 달도 안 남았네요. 지선 개표 방송에서 또 뵙겠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지라시'만 등재돼 있습니다만, 원래 단어가 일본어 ちらし[chirashi]에서 오기도 했고 '가짜' 느낌을 살리는 게 어떨까 해서 본문에서는 '찌라시'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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