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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현장 얼마나 달라졌나

<제희원 기자>

이곳은 지난 2008년 1월, 40명이 목숨을 잃은 이천 냉동창고 화재 현장입니다. 당시 참사 후에 사업주가 받은 처벌은 벌금 2천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제 뒤로 보이는 화마의 흔적만큼이나 당시 사고는 우리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14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요?

조금씩 줄고는 있지만, 아직도 매년 8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2018년 발전소에서 혼자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고, 불과 2년 뒤인 2020년에는 이곳 근처 또 다른 물류창고 화재로 38명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이 내일(27일)부터 시행되는데요, 1명 이상 숨지거나 6개월 이상 치료해야 하는 부상자가 2명 이상이 발생한 경우 중대산업재해로 분류됩니다.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도 포함됩니다.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의무를 지키지 않아 재해가 발생했다면 형사 처벌을 받습니다.

이 가운데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고,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지난해 법 제정 후 1년 동안 산업 현장은 얼마나 안전해졌을까요. 확인해보겠습니다.

통행에 방해되는 전신주를 옮기는 작업.

22.9킬로볼트, 특고압선을 끊지 않은 채 진행됩니다.

감전사고 위험이 큰 만큼 작업 구간의 전기를 우회시키는 장비가 투입됩니다.

추락사고 방지를 위해 고소작업차도 배치됐습니다.

두 달 전 혼자 작업하던 30대 협력업체 직원이 감전사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한전이 안전 대책을 마련한 것입니다.

[안유정/한국전력공사 배전운영처 : 작업 환경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경우 작업자 스스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한전에 요청하는 제도인데요. 확대 시행하게 됐습니다.]

법 시행을 앞두고 이렇게라도 안전 대책을 공개한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대기업은 원래 없던 최고안전책임자 자리를 신설하거나 법률 자문을 구하는 등 제도 정비에 힘쓰는 분위기입니다.

대표 구속 같은 상황만큼은 막겠다는 것입니다.

자칫 '처벌 1호'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산재가 잦은 건설회사들은 설 연휴 기간 아예 공사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중소기업은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돈도 사람도 부족해 안전 대책을 세우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정한성/볼트 제조업체 대표 :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했을 때 중대재해법 처벌 대상이 되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중소기업이 준비할 기간이 너무나 짧았죠.]

시행이 2년 유예된 50인 미만 사업장은 사정이 더 열악합니다.

급한 대로 안전 관리 앱을 활용해 현장 점검을 하는 정도입니다.

[진종훈/중소 건설업체 현장소장 : 인력을 충원해야 가능한 부분도 있고 안전시설물을 그만큼 철저히 하려면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데 실제로 중소기업 도급 단가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제 하루 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됩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법이 비현실적이다', '준비할 여력이 없다'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김균종·박진호·박현철, 영상편집 : 황지영·이승희, CG : 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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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현장

<조윤하 기자>

하지만 노동자들 생각도 그럴까요, 일터에 나왔다가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이 법 취지인데 그래서 그만큼 무엇인가 노력을 했나, 노동자들 걱정을 들어본 적은 있나, 되묻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저와 함께 노동자 입장이 돼서 현장으로 가보시죠.

몇 미터 되는 허공에서 안전장치 하나 없이 아슬아슬하게 일하고, 흔들리는 자재 더미 위에 올라가기도 합니다.

안전줄은 있지만 채 걸지도 못하고 사다리에 겨우 몸을 기대 작업을 벌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하루 전, 오늘도 작업 현장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양진권/공장 노동자 : 생산을 많이 해야 이윤이 많이 남기 때문에 그리고 저희 노동자 같은 경우는 솔직히 하나의 부속품으로밖에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그래도 혹시 바뀐 것이 있지 않을까.

[현진우/공장 노동자 : 아니요. 현장에서 바뀌는 건 없어요. 회사에서 스스로 나서서 위험한 상황을 고치고 해주는 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법에는 '안전 문제에 대해서 노동자들 의견을 듣고, 문제를 고치라'고 돼 있지만, 이렇게 하는 회사는 별로 없습니다.

[오동영/공장 노동자 : 대형 사고가 한번 터지겠다. 쇳덩어리가 다 밑에 있는데, 거기 그 위로 추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전혀 개선된 것이 없고. 아까 말했듯이 회사에서는 '비용이 없다. 돈이 없다' 이런 논리로 해서…]

이런 소리까지 하는 곳도 적잖습니다.

[김상윤/건설업 노동자 : '다치더라도 119에 먼저 신고하지 말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부 치료 비용만 지불하고 나서 일을 안 시키는 그런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안전 관리는 요식행위입니다.

[김상윤/건설업 노동자 : 사실 노동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지도 몰랐고, 오늘도 갑자기 교육을 잡아놓은 상황이고요. 사진만 찍고 가는 경우도 있고. 형식적으로 15분 정도? 저도 여기서 한 6개월 정도 일하면서 한 두 번 정도 받은 것 같아요.]

작은 것부터 안전을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영상취재 : 한일상·정성화, 영상편집 : 전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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