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로 열차 후진 지시…1시간 넘게 승객 대피 작업 중단
정저우 지하철 5호선이 침수되기 시작한 것은 7월 20일 오후 4시쯤이었습니다. 갑자기 불어난 빗물에 지하철 주변 가림막이 무너진 것입니다. 오후 5시쯤 빗물은 지하철 출입구 물막이 담장마저 넘어뜨리고 지하철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지하철 전로기에 고장이 발생하면서 지하철 역으로 들어온 열차가 멈춰섰습니다. 이때 승객들만 하차시켰어도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열차는 전로기 고장 원인을 모른 채, 위험 상황을 모른 채 5시 46분 다시 출발했습니다. 1분 뒤 레일이 물에 잠긴 것을 발견한 기관사는 규정에 따라 정차했습니다. 비로소 위험을 감지한 통제센터는 열차에게 후진을 지시했습니다. 이게 또 화근이었습니다. 열차는 30m 정도 후진하다 전기가 나가면서 또다시 멈춰섰습니다. 열차가 멈춘 곳은 처음 정차했던 곳보다 지대 높이가 75cm 낮았습니다. 열차 안으로 물이 빠르게 밀려들었습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녁 6시 4분에야 열차 정지령이 내려졌고, 승객 대피 작업이 진행됐지만 돌연 6시 37분 대피 작업이 중단됐습니다. 열차에 타고 있는 승객은 모두 953명. 이 중 400여 명의 승객이 아직 열차에 남아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지하철 운영 지사는 저녁 7시 48분까지 지하철공사 당직처에 보고하지 않아 400여 명이 1시간 넘게 물이 찬 열차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14명이 숨졌습니다.
도로에 물 40cm 고였는데도 터널 폐쇄 안 해…중고생 2명도 참변
물빼기 작업이 끝난 뒤 터널에서 발견된 차량은 모두 247대였습니다. 터널 안에서 18대가 발견됐고, 터널 경사로 구간에서 87대, 출구 도로에서 142대가 발견됐습니다. 사망자 중 2명은 탈출하는 과정에서 익사했으며, 1명은 경사로 구간에서 미끄러져 숨졌습니다. 다른 1명은 정저우시 교통센터 직원으로 터널 안에서 근무하다 사망했고, 다른 2명은 중·고등학생으로 전기자전거를 함께 타고 터널로 들어갔다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정저우시 당국은 사망·실종자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이 7월 29일 97명이라고 보고했다가 이튿날인 7월 30일에는 322명으로 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하루 사이 세 배 이상 증가한 것입니다. 그러더니 다시 이틀 뒤인 8월 1일엔 339명이라고 수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된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중앙정부 조사팀이 이번에 밝힌 사망·실종자 수는 380명입니다. 조사팀은 정저우시 당국이 일부러 통계를 조작해 은폐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초기 대응 책임을 덜 지기 위해서 허위 보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관영 매체, 보고서에 찬사…"인명 존중에 감동"
보고서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발언도 함께 실었습니다. 시 주석은 회의 때마다 위기 관리 대응을 강조해 왔다며 주요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선 "열 번 예방 조치를 했다가 아홉 번이 허탕으로 끝나더라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과도한 예방 조치로) 인민들의 불만을 들을지언정 (재난 사고 사망에 따른) 울음소리는 듣지 않겠다"고 발언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시 주석은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중앙정부가 미리 지시를 했는데 지방정부가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취지입니다. 오롯이 지방정부의 책임이지, 중앙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취지이기도 합니다. 물론 땅이 넓고 인구도 많다보니 우리와는 통치 체제가 다릅니다. 지방정부의 책임이 우리보다 훨씬 큰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국의 이런 허술한 대응으로 많은 인명 피해가 났는데,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희생됐는데, 이런 상황에서 '인명 존중' 운운하는 것은 유체 이탈 화법으로 들립니다. 적어도 중앙정부가 잘했다고 자찬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