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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비하인드] 백신 접종 예외자, 그 높은 '허들'

코로나 비하인드 4편
※ '코로나 비하인드'는 코로나19 취재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SBS 보도본부 생활문화부 박수진 기자의 취재기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사에는 담지 못했던 박 기자의 취재물과 생각들을 독자들께 풀어놓습니다. [편집자 주]

코로나 취재를 주로 하다 보니 관련해 많은 제보를 받습니다. 코로나 유행 초기에는 방역수칙을 위반한 집단이나 시설 등에 대한 제보가 많았다면,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에는 오접종 사고, 정책과 의료 현장의 괴리, 이상반응 증상과 정부의 피해 보상 기준에 대한 비판 등이 많았습니다(기자의 시각만으로는 미처 보지 못한 현장을 일깨워 주시는 제보자들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백신 접종 미완료자의 출입이 제한되는 방역패스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부턴 '접종 예외자' 또는 '접종 금기자'에 대한 제보가 많이 들어옵니다. 백신을 맞을 수 없거나, 맞기가 어려운 각자의 사정들이 있는데 정부가 허용한 예외자 또는 금기자의 기준은 제한적이라 그 '허들'을 넘기가 녹록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코로나 비하인드] 백신 접종 예외자, 그 높은 '허들'

정부에도 이런 민원들이 많이 접수됐습니다. 그래서 24일부터 의학적 사유에 의한 백신 접종 예외자 범위를 넓히기로 했습니다. 현재 '예외'가 인정되는 의학적 사유는 ▲아나필락시스, 심근염과 심낭염 등 접종 후 중대한 이상반응으로 접종 금기 통보받은 경우 ▲백신 구성 물질에 중증 알레르기 발생 이력이 있는 접종 금기자 ▲면역억제제 및 항암제 투여로 접종 연기가 필요한 경우입니다.

여기서 추가로 인정된 예외자는 ▲접종 후 이상반응 피해 보상을 신청한 사람 중 인과성 불충분 판정(4-1)을 받은 사람 ▲이상반응 의심 증상으로 6주 이내 입원 치료를 받은 사람입니다. 24일부터 예외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비하인드] 백신 접종 예외자, 그 높은 '허들'

백신 때문에 이상반응이 생긴 거라고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방역패스 확대에 따라 접종 미완료자의 생활에 불편이 커진 만큼 일부 대상자에 한해 편의를 봐준다는 취지입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현재 인과성 불충분 판정을 받은 사람은 382명(1.13 기준), 이상반응 의심 증상으로 접종 후 6주 내 입원 치료를 받은 사람은 1만 6천~1만 7천 명 정도입니다.

정부가 인정하는 접종 예외 범위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최소 1차 접종은 한 사람'입니다. 질병관리청은 "접종을 받으려고 노력했으나 이상반응으로 접종을 완료하지 못한 분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목적"이라고 취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판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외자의 허들을 넘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단순히 코로나 백신에 대한 불신 때문만은 아닙니다. "맞고 싶지만 맞기가 어렵다"는 호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어 제보자들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코로나 비하인드] 백신 접종 예외자, 그 높은 '허들'

"왜 희귀병이 걸렸는지도 모르는데, 백신은 괜찮다고 할 수 있나요?"

60대 A 씨는 희귀 질환성 말초 신경병을 오래 앓아왔습니다. 만성 손발 저림과, 빠르지 않은 속도로 20분 정도만 걸어도 앉아서 쉬어줘야 할 만큼 거동이 불편합니다. 당뇨병도 함께 앓고 있습니다. 유전자에 의한 희귀 질환이라 백신 접종과는 큰 연관이 없다는 전문가들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점점 생활에 불편이 커질수록 '백신을 맞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수십 년 앓아온 희귀병을 생각하면 결정이 쉽지가 않습니다. 점점 집에만 있는 아버지가 걱정된 A 씨의 딸은 최근 '백신 접종 예외확인서'를 받기 위해 보건소에 연락도 해봤지만 '현재 기준으론 인정되지 않는 질환'이라는 답만 들었습니다. 딸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희귀병이라는 게 어떻게 발병됐는지를 모르는 거잖아요. 내 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백신을 맞아도 된다고 하는 정부 설명이 환자들 입장에서 쉽게 납득이 될까요? 희귀병 환자들을 많이 만나는 의사들조차도 상담을 받으면 '환자 본인이 선택이다' '큰 연관성은 없지만 100% 확실한 건 없다'고 해요. 일반 사람들도 불안하다고 말하는데, 하물며 오랫동안 병을 앓은 사람들은 오죽하겠어요? 이런 사정을 좀 더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코로나 비하인드] 백신 접종 예외자, 그 높은 '허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A 씨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제보자들이 많습니다. 코로나 백신은 아니지만 10대 자녀가 어린 시절 다른 종류의 백신을 맞고 길랑바레증후군이 발생해 사지마비 증상과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앓았다는 어머니 B 씨. 자녀를 접종 금기자로 인정해달라고 보건소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코로나 백신 구성 물질'로 인한 중증 알레르기 발생 이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단 기준 때문입니다.

길랑바레증후군은 코로나 백신 접종과 인과성이 아직 인정되진 않았지만, 이번에 방역패스 접종 예외자로 확대 인정된 '인과성 불충분 판정(4-1)'에는 포함되는 증상입니다. 하지만 같은 증상을 앓았어도 B 씨 자녀의 사례는 코로나19 백신에 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정이 안 되는 겁니다.

"마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데 이걸 감수하고 백신을 맞을 수 있을까요? 일단은 맞고 이상 증상이 나타나야 보상을 하거나 예외로 인정을 해준다는 건데, 실제 아파본 사람들은 이런 결정이 쉽지가 않습니다."

스웨덴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질병청이 지정한 '표현'이 아니라 인정 안 된다(?)

앞선 두 사례는 사실 무조건 방역당국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단언'하긴 어려운 경우들입니다.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라면 코로나에 감염의 위험이 더 크고 중증으로 이행될 가능성도 높은 '고위험군'에 속할 수 있어서입니다. 고위험군이 백신을 맞지 않으면 그 면역력은 일반인보다 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모를 부작용'과 '고위험군의 감염 우려'라는 두 가지 상황을 놓고 어느 쪽이 더 옳다, 중요하다고 판단 내리긴 어려운 부분입니다.

다만 이런 사례와 달리 방역당국의 행정 편의적 대처가 아쉬운 경우도 있습니다. 정부가 인정한 예외자 기준을 충족하고, 백신을 맞기 어려운 의학적 상태라는 의사의 진단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외확인서를 발급받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코로나 비하인드] 백신 접종 예외자, 그 높은 '허들'

C 씨는 간암 말기 환자입니다. 얼마 전 대학병원에서 '더 진료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호스피스 병동으로 전원을 권고했습니다. C 씨의 가족들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짧은 일상을 함께 보내기 위해 접종 예외자 신청을 했습니다. C 씨의 주치의는 보건소에 제출하기 위한 진단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의학적 용어가 섞여 이해가 쉽지 않지만 그대로 써보겠습니다.

상환 HCC, M/intrahepatics, LNs, peritoneum 진단받은 분으로 3rd line lpi/Nivo 항암 치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진행하는 소견을 보여 더이상 further CTx plan이 없고 호스피스 완화 의료 의뢰된 분입니다. 이와 동반되어 HCC rupture 및 compression of CBD stent by metastatic LN 소견 동반된 분으로, 상기 소견을 고려했을 때 COVID-19 백신을 접종할 만한 medical condition이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암이 빠르게 진행됐고 지금 백신 접종을 할 만한 의학적 상태가 아니다'라는 의사의 판단입니다. 하지만 보건소는 이 진단서를 첨부한 C 씨 가족의 예외확인서 발급 신청을 거부했습니다. C 씨는 항암 치료를 받는 사례로 정부가 인정하고 있는 예외 기준 '면역억제제 및 항암제 투여로 접종 연기가 필요한 경우'에 부합하지만, 문제는 '표현'이었습니다. 보건소는 예외확인서 발급을 거절하면서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보건소입니다. 많이 힘드신데 이런 안내를 드리게 돼 안타깝습니다. 예외확인서는 소견서나 진단서상에 '진단명'과 항암제, 면역억제제 투여로 인해 백신 접종 연기가 필요'라고 명시된 경우 가능합니다.

[코로나 비하인드] 백신 접종 예외자, 그 높은 '허들'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떠신가요? '암으로 인해 백신 접종할 만한 의학적 상태가 아니다'는 의사 소견과 '항암제 투여로 인해 백신접종 연기가 필요하다'는 질병청의 예외 기준이 다르다고 생각되시나요? 사실상 같은 이야기인데, 결국 행정적 처리의 편의를 위해 정부가 지정한 문구를 써오라는 요구입니다. 탁상행정이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암환자 가족의 경우는 의사 진단서에 '항암제 투여 중'이 아닌 '항암 치료 중'이라고 적혀있어 발급을 거부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질병관리청은 SBS 취재팀의 관련 질의에 대해 "보건소에서 진단서를 일일이 해석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려는 조치"라고 해명했습니다. 개별 해석으로 인해 기준이 서로 다르게 적용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예외확인서를 발급받으려는 민원인의 상황과 사정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당사자의 의학적 상태를 자세하게 명시해놓은 의사 소견서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관련 기사 < "질병청 문구로만" 소견서 있는데 예외확인서 거절됐다 (지난 11일, SBS 8뉴스 리포트)>

모든 개인의 사정을 정부가, 제도가 품어내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코로나 백신 접종과 관련한 취재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줄 주체가 분명치 않다는 점입니다. 백신 접종 또는 부작용과 관련해 일선 병원은 책임 있는 답변을 해주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의료 상황을 전담하고 있는, 이를 테면 '코로나 백신 관련 전담 상담 창구'가 있지도 않습니다(현재 정부의 '코로나 상담 창구'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질병관리청 콜센터 1339지만 상대해야 할 민원도 많은데다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뻔한 말 같지만, 국민이 허공에 대고 하소연하는 허무함을 느끼지 않도록 방역당국이 좀 더 세밀한 소통을 해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또 개인적으론, 백신 접종의 개인별 선택권을 주기가 어렵다고 본다면, 접종을 미루거나 꺼리는 일부 국민들의 불안감을 다독일 수 있는 좀 더 내실 있는 소통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취재 : 박수진, 정다은, PD : 김도균, 일러스트 : 김정연,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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