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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로봇', 꿈을 꿀 수 있을까?

2022 CES 취재기

[취재파일] '로봇', 꿈을 꿀 수 있을까?
지난주 2022년 세계 최대의 IT·가전 박람회 CES가 막을 내렸다. 온 세상이 코로나에 갇혀 있다 2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되돌아온 만큼 가상이 아닌 실사에 목말라 있던 세간의 이목도 한층 더 집중됐다. 막이 오른 이번 CES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것 중의 하나는 현대차의 로봇 개 'SPOT'이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SPOT'을 데리고 무대에 올라 "로봇은 어린 시절 꿈이었고, 다른 세계에서 온 영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로봇은 현실이다."라고 말하며 CES 개막의 화두를 던졌다. 그런데, 이 'SPOT'을 만든 건 사실 현대차가 아닌 미국의 로봇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사다. 이 회사를 지난해 현대차가 인수하면서 'SPOT'이 이번 CES에서 현대차의 상징이 된 셈이다.

CES

'SPOT'의 조상은 'BIG DOG'


지난 2006년, 필자는 AI와 로봇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취재했었다. 그때 'BIG DOG'을 처음 봤다. 지금의 SPOT보다 몸집은 더 크고, 얼기설기 몸체에 전선이 드러난 조금은 볼품없는 모습이었지만, 발로 걷어 차도 넘어지지 않고, 돌길과 진창길, 언덕길을 가리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에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졌었다. 당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미국의 최첨단 연구를 주도하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의 지원을 받아 'BIG DOG'을 만들었고, 용도는 당연히 군사용이었다. 주 목적은 물자운반으로 돼 있었지만, 당시 필자는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적진을 향해 폭탄을 잔뜩 실은 'BIG DOG'이 뚜벅 뚜벅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우리가 초고속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며 IT 강국임을 자부하던 때, 인터넷 속도가 더럽게 느려 터졌던 미국은 그런 걸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취재 부서가 바뀌면서 자연스레 'BIG DOG'을 잊었고, 16년이 흐른 뒤에야 그 손자쯤 되는 'SPOT'을 만났다. 몸은 더 날렵해졌고, 노랑과 검정의 조합이 세련돼 보였고, 무척 반갑기도 했지만, 동시에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16년 전 나는 세월이 흐른 뒤 'BIG DOG'을 다시 만날 때쯤엔 사방을 식별할 수 있는 전자 눈에, 미세한 소음도 인지하는 전자 귀, 공격용이 아니더라도 실제 개와 닮은 입이 있는 AI로 중무장한 머리가 'BIG DOG'의 몸체에 달려 있을 거라 상상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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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휴머노이드는 다 어디로 갔을까?


지난 2005년 혼다의 '아시모'가 뛰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흥분했다. 2족 보행도 신기한데 시속 6Km 속도로 뛰기까지 하다니… 머지않아 인간과 100m를 겨루게 될 거라는 상상도 흔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카이스트 오준호 교수팀이 개발한 '휴보'가 '아시모'의 뒤를 쫓았다. 그때, 로봇을 보도할 때면 늘 등장하던 단어가 '디스토피아'였다. 점점 사람과 비슷해지는 로봇의 모습에 인간의 미래가 어떨지를 '터미네이터'나 '블레이드 러너'쯤을 상상하며 떠올려봤던 거다. 혹시 알고 계시는가?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과 레플리컨트들이 공존하는 미래는 2019년이고, '터미네이터'에서 기계와 인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시기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때라는 걸.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혼다는 후발주자였던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가 텀블링까지 선보이면서 추월하자 지난 2018년 '아시모'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아틀라스'를 개발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경영 악화로 인수에 인수가 거듭되면서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 CES에서 본 휴머노이드는 영국 업체가 공개한 'AMECA' 정도에 불과하다. 이 로봇은 얼굴이 매우 인간과 흡사하고, 다양한 감정 표현도 가능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 CES에서 필자가 가장 관심이 갔던 건 사실 'SPOT'이 아니라 그 많던 휴머노이드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로봇', 과연 꿈을 꾸게 될까?


다시 말하자면, 지난 2006년 필자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제목은 '로봇, 꿈을 꾸다'였다. 이 제목이 누구 입에서 먼저 나왔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제목을 내놓고 너무 좋은 제목이라며 작가와 무릎을 치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2부작 AI 다큐를 취재하고 제작하면서 머지 않아 인간과 모습이 비슷해진 로봇들이 생각을 하고, 마침내는 꿈도 꾸게 될 줄 알았다. 혼자 소설을 창작하는 로봇을 머리로 하고, 거기에 아시모의 팔다리를 붙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았다. 그런데, 16년이 지난 지금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로봇 산업의 방향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인간을 닮아가던 로봇들은 점점 사라지고, 팔 따로, 다리 따로, 인공지능 따로, 각각의 기능이 인간과 전혀 비슷하지 않은 모습으로 개별 제품에 투영되고 있다. 미국 UCLA의 저명한 로봇학자 데니스 홍 교수는 몇 년 전 "10년 간 진행했던 휴머노이드 연구를 접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지난 2014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재해 현장을 보면서 로봇의 무력함을 실감한 게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후 홍 교수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더 인간에 가까운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인간에게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로봇을 만들까'로 바뀌었다고 한다. 산업용 로봇으로 개발된 'SPOT'에게 굳이 개의 머리를 추가할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그렇다면, 우리가 상상했던 C-3PO(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외계어 통역 로봇)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날은 언제쯤 일까? 로봇이 언젠가는 과연 꿈을 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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