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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부모의 짐 짊어지는 유령 아이들…"아파도 말 안 할래요"

뉴스 10초 정리
 

"아이는 잘못한 게 없잖아요"

[취재파일] 부모의 짐 짊어지는 유령 아이들…'아파도 말 안 할래요
 
앙상한 생후 30일 된 아기. 인큐베이터에서 호흡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가녀린 팔에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습니다. 이 아기는 6개월 만에 태어난 조산아입니다. 하루에 드는 병원비만 수백만 원. 엄마가 미등록 이주민이라 의료 보험이 없습니다. 한 달 새 병원비는 수천만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엄마는 아기 병원 치료비가 필요해 산후조리 할 틈도 없이 일터로 나갔습니다. 공장에서 배관을 깎고 다듬는 일을 하며 치료비를 벌고 있습니다. 가시지 않은 산후증에 아픈 배를 움켜쥐기도 합니다.
 
[취재파일] 부모의 짐 짊어지는 유령 아이들…'아파도 말 안 할래요
 
취재진이 만난 이 아이의 엄마는 필리핀 국적의 20대 A 씨. A 씨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 처음으로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했습니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사진으로만 보다가 한 달 만에 마주한다는 얘기에 설렘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카메라 앞에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말도 아꼈습니다. 이내 곧 아이에 관해 할 말이 있는 듯 속에 있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이어갔습니다. 옷 소매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아기가 잘못한 거 없잖아요.
사실은 10개월 정도 뱃속에 있어야 하는데 빨리 나온 거예요.
저는 이 아이한테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어요.
여기(한국) 있을 때 병원 갈 때 치료받을 수 있고 정말 간절히 원합니다"

A 씨의 아기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비유하자면 마치 '유령'과도 같은 아기입니다. 자신의 아이가 가엾다는 듯 아이가 잘못한 건 없다는 말을 A 씨는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취재파일] 부모의 짐 짊어지는 유령 아이들…'아파도 말 안 할래요
 
"불법 체류자들의 도덕적인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선택권이 없는 아이들에게까지 미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A 씨와 아기의 치료를 위해 도움을 주는 천주교 이상협 신부의 생각입니다. 이상협 신부의 설명에 따르면, 주변에 A 씨 말고도 남몰래 출산하고 아이를 기르는 부모 사례가 더 있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이 자란다면?…"아파도 참는다"


문제는 A 씨의 아이처럼 미등록 이주 아동의 경우 출생 단계에서부터 아파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 아이들은 자라서도 숨어 지내느라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못 합니다. 할 수 있는 건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는 것입니다. 설령, 병원에 가더라도 치료비 감당하기가 녹록지 않습니다. 또 부모들 대부분이 맞벌이로 장시간 노동에 종사하고 있어서 진료 받으러 함께 병원 갈 시간도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서툰 한국어 실력 탓에 진료받기까지 수많은 허들을 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까 걱정이 큽니다.

취재진이 만난 두 명의 10대 청소년 대화를 잇달아 소개해 봅니다.
 
-(기자)◌◌아, 아프면 어떻게 했어?
=(아이)아프면 약 먹었죠.

-병원엔 안 가고?
=그냥 집에서 약 먹었어요.

-병원 가자고 말하기 그래?
=아니요 그냥 안 말해요.
 
이 아이는 민감하다는 듯 고개를 돌리더니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감기만 걸려도 5만 원가량의 진료비를 내야 했다 합니다. 다른 미등록 이주 청소년을 통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청소년은 발목이 삐어서 일주일간 걷기 힘들 정도였는데 진통제로 버텼다고 합니다.
 
[취재파일] 부모의 짐 짊어지는 유령 아이들…'아파도 말 안 할래요
 
-(기자)지금도 조금씩 아파?
=(아이)네. 가끔씩 아파요.

-그러면 병원 가서 제대로 엑스레이도 찍어보고 진단을 좀 받아보고 싶은데. 그게 좀 여의치 않은 거지?
=네 좀 여유가 없어가지고요.

-실례가 안 되면 병원비가 얼마가 나왔는지?
=엑스레이 찍는 것만 해도 한 70만 원 나오더라고요. 보험이 외국인이라서 보험이 잘 안 돼가지고.

-그런 거 되게 엄마 아빠한테 말하기도 미안하겠다.
=네 말을 잘 못합니다.

-엄마 아빠한테?
=네.

-혹시 뭐 얘기를 꺼내본 적은? 병원에 좀 가야되겠다?
=병원에 가야겠다고 얘기는한 적은 없어요. 그냥 약만 달라고.

-좀 참고 지냈던 거네요?
=네.
  
[취재파일] 부모의 짐 짊어지는 유령 아이들…'아파도 말 안 할래요
 

논의의 전제…아동의 생존권 보장 차원


부담되는 병원비에 기본적 생존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 부모로부터 불법 내지는 미등록이라는 신분을 물려받아 학교를 가고 병원을 가고 살아가는 매 순간이 생존이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1년 국적과 무관하게 아동의 생존권과 교육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비준했습니다.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에 대한 논쟁은 우리나라가 마주해야 할 해묵은 과제가 됐습니다. 반발 여론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부모가 법을 어겼다고 해서 제도권 밖에 있다고 해서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아이들이 부모의 짐을 짊어지고 또 기본적 생존권마저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 주시고 글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취재 : 김아영, 배준우, PD : 김도균,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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