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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비하인드] 유족은 장례식장에서도 눈치를 봐야 했다

[코로나 비하인드] 유족은 장례식장에서도 눈치를 봐야 했다
※ '코로나 비하인드'는 코로나19 취재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SBS 보도본부 생활문화부 박수진 기자의 취재기 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사에는 담지 못했던 박 기자의 취재물과 생각들을 독자들께 풀어놓습니다. [편집자 주]

장례식장이 마련된 병원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었습니다. 수도권의 한 병원이었는데, 도심과는 많이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이동을 하면서 '이런 곳에 병원이 있으면 사람이 어떻게 찾아오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왼쪽에는 논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잡초와 나무가 무질서하게 자라난 맹지가 있었습니다. 주변에 드문드문 주택과 학교가 보였지만, 비포장도로라 이동 자체가 쉽진 않았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만나기로 한 분은, 이틀 전 코로나로 어머니를 잃은 아들 김 씨였습니다. 그날은 장례 첫날이었습니다.

이 병원은 코로나 사망자의 장례를 받아주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코로나 사망자가 장례를 치르러 갈 수 있는 병원이 거의 없더라"는 게 아들 김 씨의 이야기입니다.
 

"죄송한데, 밖으로 나갈까요? 눈치가 보여서"

지하에 마련된 3번 장례식장. 장례 첫날 낮이기도 했지만, 사람은 거의 없었고 공기는 을씨년스러웠습니다. 김 씨와 매형, 두 사람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망자의 사진 앞에 국화꽃을 놓고 조문을 했습니다. 제가 놓은 국화가 첫 국화였습니다.
 
"전화 주셨으면 제가 나갔을 텐데, 일단 밖으로 나가시죠." (김 씨)

"아직 사람도 별로 없는데, 이 식당 안쪽에서 인터뷰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기자)

"아니요. 이 안에선 좀… 밖으로 나가시죠." (김 씨)

장례식장 밖 주차장에 세워진 취재진 승합차를 보고 김 씨는 놀랐습니다. "아휴. 방송사 로고가 붙어있네요." 김 씨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혹시나 누가 볼까 긴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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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죄송한데, 아예 밖으로 나가시죠. 눈치가 보여서요. 병원에서 코로나 사망자가 여기 와 있다는 걸 외부로 알리지 않았으면 하더라고요."

나중에 추가 취재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병원은 인근 코로나 거점전담병원과 인연이 닿아서 그곳에서 사망한 코로나 환자들의 장례를 받아주며 입소문이 난 곳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경상도나 전라도에서도 장례를 치르러 오는 코로나 유족들이 있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김 씨의 말처럼, 많은 병원들이 코로나 사망자의 장례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유족에겐 귀한 병원이지만, 이 병원마저도 외부에 티 나지 않게 조용히 장례를 치르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유족은 감염병으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지만, 장례를 치르는 순간까지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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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눈치를 봐야 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 이게 소문이 나면 안 좋다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인식들이 그렇다 보니까 저도 같이 눈치를 보게 되네요. 주변에 의해서 저도 눈치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확진자가 아니었다

차를 타고 병원에서 떨어진 인근 학교 근처로 갔습니다. 벤치가 몇 개 놓여 있었는데, 그곳에 도착해서야 김 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 씨는 어머니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만 69세였던 어머니는 12월 21일 사망했는데, 2주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에 감염도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치매와 당뇨 증상으로 어머니는 6년 전부터 요양원에서 지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와상 환자였지만, 인지는 명확했다는 게 김 씨의 이야기입니다.

비극이 시작된 건 11월 25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입원 중이던 요양원에 있던 간병인이 코로나에 확진됐습니다. 감염이 확산되며 확진자가 하나둘 늘어가면서 어머니가 머물던 요양원 한 층 전체가 코호트 격리조치됐습니다. 고위험군의 확진자들은 감염병 전담병원 등으로 빨리 이송이 되는 게 원칙이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병상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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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병상은 재택치료 중 중증으로 악화되는 사람에게 먼저 배정됐고,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은 '의료적 케어가 가능한 곳'이라는 이유로 병상 배정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게 요양원 측의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유 증상 확진자는 요양원 내 같은 공간 안에서 비닐막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김 씨의 어머니는 사실상 확진자와 제대로 분리되지 못한 채 요양시설에 2주 가까이 머물러야 했습니다.
 
"요양원에서 양쪽으로 병실을 분리해서 확진자와 비확진자를 관리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중간에 한 번 가봤거든요. 그런데 코호트 조치라고 하기엔 너무 허술하기 짝이 없었어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까 그냥 가림막 하나로 왼쪽은 확진자, 오른쪽은 비확진자로 구분돼 있었고요. 가운데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결국은 다 이어진 곳이었어요. 요양원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확진자를 케어하다가 나와서 다시 비확진자를 케어를 해요. 사람이나, 공기 중으로 바이러스가 확산이 안 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요양원은 요양병원과 달리 의료 관리가 사실상 어려운 곳입니다. 하지만 확진자들이 상급 병원으로 옮겨가지 못하면서 요양원 관계자들은 본인들이 확진이 돼가며 환자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감염 확산을 피하긴 어려웠던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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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의 어머니는 최초 확진자가 나온 지 2주 만인 12월 9일, 뒤늦게 확진됐습니다. 확진 판정을 받기 며칠 전부터 상태는 나빠졌고, 확진된 후엔 산소포화도가 80% 이하로 떨어지고, 입도 벌리지 못하는 상태로 악화했습니다.

인근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열흘도 되지 않아 감염병 전담요양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요양병원에 따르면 김 씨의 어머니는 옮겨질 당시에도 발열과 호흡 곤란 증상이 있었습니다. 요양병원 관계자는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층이라 렉키로나주(주사형 치료제)를 써도 호전이 되지 않았다. 이틀 만에 결국 운명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직접사인은 코로나19'. 어머니의 사망진단서에 남겨진 죽음의 이유는 매우 명확했지만, 아들 김 씨는 혼란스럽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확진자와 비확진자를 제대로 분리만 했어도 감염이 안 될 수 있었어요. 분리를 시켜주지도 않으면서 저희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오려 했을 땐 보건소에서 안 된다고 했어요. 아무리 음성이어도 감염 위험이 있어서 밖으로 나가면 안 되다는 거예요. 막을 수 있던 죽음이었어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아들 김 씨는 지난해 결혼했습니다. 자녀도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했고, 손주를 안아보지도 못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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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현대판 고려장이 아니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어머니의 죽음이 100% 인재라고 생각해요. 정부가 정말 반성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낮인데도 기온은 영하였습니다. 벤치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하니 손발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인터뷰와 촬영을 마치고 '차로 모셔다 드리겠다'고 제안했지만 김 씨는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패딩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린 그는, 병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김 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방송사 로고가 없는 차를 타고 올 걸'이라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김 씨 어머니의 사연은 지난 12월 23일 SBS 8뉴스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관련 기사 : 비닐 한 장 두고 확진자와 한 공간…"막을 수 있던 죽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28일 코호트 격리조치된 요양시설의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확진자 발생 시 감염병 전담요양병원 등으로 빠르게 이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코호트 격리가 불가피한 경우 재택치료처럼 관리 의료기관을 지정해 코호트 시설 내 확진자에 대한 모니터링을 1일 3회 이상으로 강화한다고 밝혔습니다.

격리된 비확진자에 대해선 계약된 의사가 원격 진찰을 할 경우 진찰 비용을 지원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확진자와 비확진자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감염이 확산된다는 지적에 대해선, 확진자의 전원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되 최대한 시설 내에서 분리 격리조치하겠다고 했습니다.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확진자가 아닌 사람 부분에 있어서는 정확하게 장소를 분리하고 동선을 분리하는 방역 시스템들을 세밀하게 보강하겠다"고 했습니다.

(취재 : 박수진, PD : 김도균, 일러스트 : 옥지수,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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