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북적북적]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21 :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제가 엄청나게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매일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뻐합니다."

2021년이 저물어갑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드는 생각이지만, 새삼, 시간의 속도가 믿기지 않습니다. [북적북적]과 함께 해주시는 분들의 올해는 어떤 1년이었을지도 궁금합니다.
제게는 여러 가지 큰 변화들이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이것도 해마다 이맘때면 늘 그랬듯) 올해에 맞닥뜨린 변화들을 아직 스스로 채 소화하지 못한 상태인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 아쉬운 시간 안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느낍니다. 뻔한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소중한 1년을 잘 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유달리 진하게 드는 연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제게는 올해의 마지막 낭독이 될 [북적북적]에서 '연말을 맞이하는 자세로 한 권'을 고르고 싶었습니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간을 시작하려 할 때 벗하면 좋을 만한 책을 찾다가 이 작품에 닿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믿고 읽는' 작가입니다. 글을 쓰는 삶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정여울 작가가 오늘의 책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터놓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심영구 기자가 2019년에 소개했던 [마흔에 관하여] 이후 두번째로, [북적북적]에서 정 작가의 작품을 낭독하게 됐습니다.
 
"저는 글을 씀으로써 해맑은 나의 정신으로 살아 있는 한,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렇듯 글쓰기는 제 안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선물해주었지요. 복권에 당첨되거나 새 자동차를 사지 않아도 좋아요. 내 안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바로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은 내 안의 또 다른 나, 더 눈부신 나'와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글쓰기야말로 지금 우리가 당장 이룰 수 있는 오랜 꿈의 실현법입니다."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한 순간' 中)

[끝까지 쓰는 용기]는 작년 겨울과 올해 봄에 정여울 작가가 최인아책방에서 진행했던 글쓰기 수업을 바탕으로 펴낸 책입니다. 글쓰기 수업을 책으로 응축해 놓은 만큼, 어떤 글이든 조금씩 써보고자 하는 단계의 사람부터 전업작가의 길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두루두루 참고할 수 있는 구체적인 팁들이 물론 알차게 들어 있습니다. 특히 앞부분은 아예 Q&A로 구성해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을 쏙쏙 포인트 잡아 정리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라, 어느 쪽으로든 자신이 나아가고 싶은 방향으로 자기 삶을 끌어가 보려고 애쓰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격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요령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기보다, 글을 쓰는 삶을 살아나가기 위한 자세, 작가 본인이 꾸준히 유지하려고 애써온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인기 작가의 입장에서 말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결국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을 만큼 글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얼마나 온몸으로 그 삶을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 있어서, 내 삶에 대해서도 '끝까지 쓰자!'는 용기를 자연스럽게 전달받는 기분이 듭니다.
 
"고립된 고통은 아무런 힘이 없어요. 하지만 고통을 누군가와 교감하면 고통마저 기쁨이 될 수 있어요. '아, 누군가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내가 저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아'라는 그 느낌이 결국에는 기쁨이 되는 거죠. 그게 글쓰기의 힘이에요. 원래 처음 시작할 때는 고통이었는데, 그 고통에 대해서 글을 쓰니까 누군가와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예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읽은 독자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저와 비슷한 체험을 해서, '혹시 이분 나와 비슷한 동네에 살았나? 같은 학교에 다녔나?'라는 궁금증이 들더래요. 그래서 제 출신 학교나 이런 것들을 검색해보셨나봐요. 그런데 하나도 겹치는 게 없었다며 아쉬워하셨어요. 그러니까 환경은 전혀 달랐지만 경험의 본질이 같았던 것이지요.
공감이란 그런 거예요. 서로 환경도 성격도 다를지라도,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인간적 감정의 본질은 비슷하거든요. 우리는 서로 닮은 고통이라는 보이지 않는 고리를 통해 강력하게 연결된 존재예요.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르다 해도, 글쓰기를 통해, 그 속에 표현된 고통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려면 반드시 내 삶을 오픈해야만 해요. 내 삶의 굳게 닫힌 문을 활짝 열어야만 독자들은 나에게 다가와요. 어쩌면 '글을 너무나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 자신의 삶의 문을 활짝 열 준비가 덜 되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조금 더 마음의 문을 열어보세요. '이런 것을 글로 써도 될까'라는 질문의 담장을 좀 더 낮춰보세요. 바로 그런 것을 써야 하는 거예요. 이런 걸 정말 써도 될까, 걱정스러운 것. 그것이야말로 분명히 글쓰기의 소중한 재료가 될 거예요." (교감: 누구의 마음을 어떻게 두드릴 것인가' 中)

그동안 작가가 써낸 작품들과 그것들을 쓸 때 작가 본인의 성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서, 정여울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더욱 깊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집이기도 합니다. 정 작가의 작품들을 별로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작가 자신의 그간 작품들과 삶을 정리하는 마음을 진솔하게 나누고 있는 이 책을 읽어내려갈수록 그의 글세상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보고 싶다는 기분이 슬며시 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작가가 털어놓는 글쓰는 삶에 대해 읽으며 "환경은 달랐지만 경험의 본질이 같은" 대목들을 발견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는 전작 [빈센트 나의 빈센트]부터 일단 '이 다음 정여울 작품'으로 읽어보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제 마음 속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화가라 [북적북적]에서 고흐의 서간집을 소개한 적도 있었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제 나름의 '빈센트 투어'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여울 작가 역시 간절한 마음으로 '빈센트 투어'를 다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책까지 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부쩍 더 친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쓸 때는 그냥 직구를 던졌어요. 그냥 내 삶이라는 직구를 던졌어요. 평론이 커브라면 에세이는 직구예요.
때로는 커브가 필요하지만, 저는 직구를 던지는 체질이었어요. 그리고 직구를 잘 던지는 사람이 커브도 잘 던질 수 있지 않나요? 야구는 잘 모르지만, 삶은 그런 것 같아요. 직구라는 직설화법이 안 통할 때는 커브라는 에둘러 가기를 선택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공은 역시 직구잖아요. 삶도 역시 직구예요. 글을 쓸 때 내 삶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돌을 던지세요. 그것만큼 간절한 무기는 없어요.
……..(중략)……. 이렇게 소박하게 시작하면 됩니다. [마흔에 관하여]에서는 더욱더 나 자신을 열어 보였어요. 보여주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나 자신이 튀어나와 버렸어요. 제가 온전한 제 모습을 글로 쓸 수 있을 때, 독자들도 '나와 닮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끝까지 쓰는 용기]라는 제목이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이 친절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삶이 내게 불친절해서 쓸쓸하고 외로웠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어디서든 매끄럽게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자기 자신으로서 나아가는 길이 험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그 모든 순간들을 결국 자신의 글을 써나가는 힘으로 길어올릴 수 있었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직구를 던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많은 사람들 대신 작가가 이렇게 온몸으로 직구를 던져서 마음을 두드리고 어루만져 주는구나, 내 마음을 두드려 주는구나, 고마운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온몸으로 교감과 공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작가의 글들이 어쩌면 이 책을 소중히 읽은 사람들, 우리가 써나갈 글들로 연결될 것입니다. 읽고 쓰는 삶이란 정말이지 어쩌면 이렇게 마법처럼, 기적처럼 번져나가는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끝까지 쓰는 용기]를 읽으며 새삼 뭉클한 마음이 듭니다.
새해가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경우엔 곧 뉴욕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고 일도 다시 시작합니다. 달라질 환경이 기대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저 백지를 앞둔 사람처럼 막막하기도 합니다. 이 시점에 만난 [끝까지 쓰는 용기]가 적지않은 힘이 되어줍니다. 서두에 인용했던 이 책 서문의 구절처럼, 그래, '다만 매일 쓰는 사람'인 것을, 매일 내 삶을 제대로 살려고 노력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하자. 그리고 삶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들을 결국 내가 살아나가는 힘으로 길어올리자. 문득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에게 나의 글을 보여줘야 하는 거예요. 보여줘야 소통할 수 있거든요. 보여주기도 전에, '아무도 날 이해 못 할 거야'라고 생각해버리면 안 되죠. 우리가 글을 쓰면서 가장 멀리해야 할 감정 중의 하나가 자기혐오예요. 그런 것은 멀리 떨쳐버려야 해요. 그리고 신이 나서 자기 이야기에 자기가 도취되어 쓰다보면, 어느새 그런 감정은 달아나버려요. 누군가 단 한명이라도 내 이야기를 읽고 공감해주면, 어느새 그런 나쁜 감정은 사라져버리죠. 이것이 글쓰기의 치유적 효과예요. 저는 그 책을 쓰면서 제가 오랫동안 앓았던 자기혐오라는 마음의 질병을 극복했어요.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한 거죠. 뭔가 화려하고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것이 멋진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것. 그것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여러분의 이야기는 저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이야기라는 것. 그 독특함을, 그 눈부신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지금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그러려면 우선 '나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라는 마음가짐을 꼭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반드시 교감할 수 있는 존재들이고, 글쓰기를 통해 반드시 서로를 이해하고 그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요."

곰살맞고 서정적인 느낌이 물씬한, 이내 일러스트레이터의 삽화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끝까지 쓰는 용기]가 가득 담고 있는 정여울 작가의 진심을 만나면서 함께 짚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영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 <골룸: 골라듣는 뉴스룸> 팟캐스트는 '팟빵', '네이버 오디오클립', '애플 팟캐스트'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 접속하기
- '네이버 오디오클립' 접속하기
- '애플 팟캐스트'로 접속하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