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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고는 대표가, 사과는 후보가…'근자감'이 낳은 민주당의 민낯

미국 코넬대학교의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 교수는 1999년,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학부생들을 상대로 '이해력 평가'를 하고, 자신의 성적이 어느 정도 될지 스스로 예상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성적이 하위 25%인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이 상위 40% 안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스스로 '과대평가'한 셈입니다. 반면, 실제 성적이 상위 25% 이내인 우수한 학생들은 정작 자기 성적이 하위권일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마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우리 속담처럼 말입니다. 이런 경향은 이해력뿐 아니라 스포츠와 게임, 논리성 등 다른 실험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스스로를 더 높이 평가하고, 반대로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오히려 스스로 낮춰 평가하는 현상'을 일컬어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근거 없는 자신감, 소위 '근자감'을 학문적으로 입증해낸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송영길, 조동연 논란 관련 입장 발표 (사진=연합뉴스)

민주당과 '근자감'…그리고 송영길 대표

정치부에서 민주당을 출입하면서 저는 이 '더닝-크루거 효과'를 종종 떠올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저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란 생각이 자주 드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혹평을 받는 부동산 정책이었습니다. 쉴 새 없이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며, 동시에 '근자감' 역시 쉴 새 없이 뿜어냈습니다. '무지한 사람은 자신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라는 챨스 다윈의 지적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최근에도 이 '더닝-크루거 효과'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조동연 공동 상임 선대위원장의 사퇴였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1호 인재'로 영입한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이 영입 사흘 만에 자리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조 전 위원장의 '과거 개인사'가 있었습니다. 조 전 위원장 개인은 물론 대선을 앞둔 민주당 역시 '외연 확장' 전략에 큰 내상을 입었습니다.

왜 이런 안타까운 결과가 나왔을까요? 결국, 모든 문제는 '사람'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사태의 책임 역시 '자신감 넘쳤지만 무지했던' 송영길 대표에게로 귀결합니다. 영입부터 사퇴 까지, 모든 과정엔 송 대표가 있었습니다.

애초 조동연 전 위원장을 처음 추천한 이는 '송영길 대표 측근'으로 알려진 민주당 이용빈 의원입니다. 이 의원은 당 '우주항공 특위'에 있으면서 해당 분야에서 근무하는 조동연 전 위원장을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거기에 육군사관학교'란 공통점을 두고 더 가까워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의사 출신인 이용빈 의원은 의과대학 입학 전 조동연 전 위원장이 졸업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자퇴했습니다.) 실제로 이용빈 의원도 "육사 동기들에게 의견도 물어보고 송영길 대표에게 추천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공동 상임 선대위원장은 당 대표와 함께 당의 대선 전략을 이끌어가는 핵심 중 핵심보직입니다. 그래서 이른바 '투톱(TWO TOP)'으로도 불립니다. 대선을 최전방에서 진두지휘하는 자리, 당연히 철저한 검증을 거쳤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건 저희 기자들뿐 아니라 당내 의원들, 당직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비극의 씨앗'은 이미 이때 뿌려진 셈입니다.

"저도 오늘 아침에야 그 사실을 확인했다"

민주당 선대위에는 이재명 후보 직속의 국가인재위원회란 조직이 있습니다. 검사 출신인 백혜련 의원이 총괄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 국가인재위원회는 김윤기 AI 개발자, 김윤이 데이터 전문가, 송민령 뇌과학자, 최예림 인공지능 연구자 등 4인을 '1차 국가인재'로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선명합니다. 당 선대위에는 영입할 '인재를 검증하는 공식 기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조동연 전 위원장은 이 공식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이지 않는 일입니다. 백혜련 의원은 조동연 전 위원장 사생활 논란이 불거진 지난 2일 CBS에 라디오에 출연해 "저도 오늘 아침에야 그 사실을 확인했다. 일단 객관적인 팩트체크가 필요한 부분 같다"고 답했습니다.

백혜련 의원은 그러면서 "저희 인재 영입위에서 주관해서 영입을 한 형태가 아니라 당 선대위 차원에서, 당 대표 중심으로 인재영입이 이미 추진됐던 부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지금 인재 영입위에서 관할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재차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조 전 위원장은 도대체 어떤 절차를 거쳐 영입된 것일까요? 바로 이 대목에서 송영길 대표가 등장합니다. 송 대표는 지난달 30일 SNS에 조 위원장 영입 소식을 알리면서 "삼고초려를 했다. 저와 함께 이번 대선을 진두지휘하실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한마디로, 송영길 대표가 자체적인 면담 등을 거쳐 영입한 것입니다. 169석을 가진, 차기 대통령 선거를 준비 중인 집권 여당이 보여준 검증 절차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빈약하고 또 허술합니다.


이재명 조동연 송영길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몰랐다면 '무능'…알았다면 '직무유기'


당연히 '검증 실패'란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 한 민주당 의원은 "조 전 위원장 영입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나뿐 아니라 의원 대부분이 몰랐을 거다. 이른바 '투톱'을 어떻게 그렇게 뽑을 수 있느냐"라며 송영길 대표를 직접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민주당 의원도 "혼외자 문제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적어도 여론이 어떻게 움직일지, 또 그것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지 충분한 검토가 필요했는데, 팩트체크조차 제대로 안 됐던 거 같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당 중진 의원이자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노웅래 원장 역시 YTN 라디오에 출연해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과열된 인재영입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인사 검증 실수다, 실패다.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 꿰어 쓸 수 없는 거 아닌가. 내로남불, 꼰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새롭게 되기 위해서도 인사 검증 문제를 철저히 해야 된다."

송영길 대표가 조동연 전 위원장의 사생활에 대해 몰랐다면 '무능'한 것입니다. 만약, 알고도 당내 검증과 공론화를 거치지 않았다면 '직무를 유기한 것'입니다. 조 전 위원장 사생활에 대해 여론이 어떻게 반응할지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고, 그것에 대해 국민에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준비가 없었습니다. 조 전 위원장 사생활에 대한 가치 판단을 떠나, 당 대표로서 책무를 충실히 수행했는지부터 스스로 돌아봐야 할 대목입니다.

 

사고는 대표가, 사과는 후보가…


문제를 더 키운 것은 '부실한 대응'이었습니다. 시간상으로는 '제때', 방법적으로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조 전 위원장 영입 발표 뒤 이른바 '지라시'와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 등을 통해 혼외자 논란이 불거지자, 민주당은 '가짜 뉴스'라고 강경하게 대응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습니다.

안민석 의원은 지난 1일 YTN 라디오에서 나와 "사실이 아닌 걸로 확인했다. 문제를 제기한 본인이 책임을 지셔야 할 것"이라고 법적 조치까지 예고하며 반박했습니다. 안민석 의원이 확인했다는 사실,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역공부터 하는 모습, 그걸 지켜보는 국민은 그저 착잡해질 뿐입니다.

조 전 위원장이 직접 KBS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사실관계를 인정하자 당내 의원들은 그제야 패닉,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선대위 공보단은 "잘 모른다. 확인이 필요하다"라며 구체적인 답조차 내놓지 못했습니다.

한 중진 의원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시쳇말로 '뼈를 때리는' 자아성찰을 내놓았습니다. "한 기자 질문에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쯤 되면 정상적인 정치활동이라고 하긴 어렵다. '코미디'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기대하고 이렇게 많은 의석을 준 것인지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결국,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의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과한 화자는 송영길 대표가 아닌 이재명 대선 후보였습니다. 이 후보는 SNS에 "모든 책임은 후보인 자신이 지겠다"라며, "조 위원장과 조 위원장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썼습니다. 당장 이재명 후보와 가까운 의원들 사이에선 송영길 대표를 향한 볼멘소리가 나왔습니다. "사고는 대표가 치고 사과는 후보가 하는 이 상황이 정상적인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든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송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 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송영길 (사진=연합뉴스)

"무지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자신감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하고, 성취를 이루는 동력이 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데에도 자신감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감에 적절한 근거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 이른바 '근자감'은 자신과 주변만 피곤하고 힘들게 할 뿐입니다. 근거와 명분이 있으면 '소신'이지만, 그게 없거나 약하면 '고집'이 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흑인 인권운동가인 넬슨 만델라. 그는 27년간 감옥살이하면서 자신을 가둔 남아프리카 태생 백인들의 문화와 역사에 관해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럭비를 보면서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익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폭력운동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더닝-크루거 실험의 결론을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무지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2) 무지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3) 무지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능력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조동연 전 위원장의 사생활 논란에 대한 가치 판단과는 별개로, 민주당 그리고 송영길 대표는 위의 항목 가운데 스스로가 몇 개나 해당하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3개 항목 모두 해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리 고민하고, 그것에 대해 중지를 모아 국민이 가진 상식에 맞춰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 그것은 정치인이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 소양입니다. 당내 검증 시스템조차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인사를 결정해온 송영길 대표가 이런 소양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국민은 물음표를 달고 있습니다.

소설가 김훈의 조언을 끝으로 기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꼰대의 집단적 특징은 듣기(listening)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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