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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 펑솨이 안전하다지만…온라인에선 아직도 검열

실종설이 제기됐던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가 지난 21일 모습을 드러냈지만 펑솨이를 둘러싼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2013년 윔블던 대회 여자 복식에서 우승하고 2014년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복식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펑솨이는 최근 '미투' 폭로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다시 집중시켰습니다. 중국의 전직 부총리 장가오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수년간 부적절한 관계를 강요받았다는 내용의 글을 지난 2일 SNS에 올린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 최고위층에 대한 첫 성폭력 고발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물론 펑솨이의 계정까지 SNS에서 사라졌고, 펑솨이의 행방은 2주 넘게 묘연해졌습니다.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

석연치 않은 IOC-펑솨이 영상 통화…IOC도 비난 휩싸여


펑솨이가 공개 석상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19일이 지난 뒤였습니다. 지난 21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유소년 테니스 경기에 펑솨이가 참석한 영상이 공개된 데 이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바흐 위원장과 펑솨이가 영상 통화한 사실이 IOC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IOC에 따르면 영상 통화는 30분간 이뤄졌으며 펑솨이는 "베이징 집에서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다",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펑솨이는 또 "테니스는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고, 내년 1월 바흐 위원장이 베이징에 도착하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영상 통화에는 엠마 테르호 IOC 선수위원장과 리링웨이 중국 IOC 위원이 배석했습니다. IOC가 공개한 사진 속 펑솨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IOC가 22일 공개한 바흐 IOC 위원장과 펑솨이의 영상 통화 사진

펑솨이의 실종설은 해소됐지만, 이 영상 통화는 무성한 뒷말을 낳았습니다. 먼저, 영상 통화에 IOC 관계자들, 특히 중국 IOC 위원이 배석한 게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중국 측 위원이 배석한 상태에서 과연 펑솨이가 얼마나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었겠느냐는 취지입니다. 2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IOC의 영상 통화 공개에 대해 여자프로테니스(WTA) 대변인은 "펑솨이의 최근 영상을 보게 돼 다행이지만 펑솨이의 안전, 검열과 강압 없는 의사소통에 대한 우려를 누그러뜨리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펑솨이가 안전하다고 믿기에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WTA 스티브 사이먼 대표는 주미 중국대사에 보낸 서한에서 "펑솨이가 해외여행을 허가받거나 아무도 배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펑솨이와 생방송으로 영상 통화를 하고 싶다"며 "독립적이고 검증 가능한 안전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의 중국 담당 마야 왕 선임연구원은 미 CNN 방송과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는 과거에도 실종된 인사들의 영상을 통해 그들이 무사한 것처럼 보여줬다"고 지적했습니다.

IOC가 영상 통화 동영상을 공개하지 않고 달랑 사진 한 장만 공개한 점, 또 무엇보다 성폭행 여부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비난이 제기됐습니다. IOC가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을 진화하는 데만 급급해 중국 정부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휴먼라이트워치를 인용해 "IOC가 중국 정부의 위장 쇼에 참여했다"고 꼬집었고, AP통신은 "IOC 성명은 중국 당국의 악의적인 선전에 연루된 것으로 인권과 정의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내용의 스포츠 선수 권리 대변 단체 '글로벌 애슬리츠'의 성명을 전했습니다. 앞서 펑솨이의 실종설이 퍼지면서 노바크 조코비치, 오사카 나오미, 세리나 윌리엄스,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등 세계적 테니스 스타들이 펑솨이의 안전을 우려하고 나섰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보이콧 움직임도 확산했습니다.

펑솨이의 안전을 우려한 오사카 나오미의 트윗

중국 관영매체 편집인 "강압 속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나"


펑솨이의 모습이 공개된 이후 중국 정부도 처음으로 펑솨이를 언급했습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펑솨이 관련 질문에 "이것은 외교 문제가 아니다"면서도 "당신도 그녀가 최근 공개 행사에 참석한 것을 봤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펑솨이의 안전을 묻는 질문에는 "추가로 말해줄 수 있는 소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중국 외교부는 펑솨이 관련 질문에 "그 사건을 들어보지 못했다", "해당 부서에 질문하기 바란다", "외교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펑솨이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사건이 공산당 고위급에 대한 '미투', 여성 인권 문제, 나아가 동계올림픽 보이콧으로 비화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펑솨이의 안전이 전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하면서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IOC가 공개하기 직전, 펑솨이의 최근 근황을 잇따라 공개한 사람이 다름 아닌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편집인 후시진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후시진은 그동안 민족주의적이고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아 왔는데, 외교 관계 등을 고려해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는 발언을 대신 해 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비공식 대변인'이라는 별명이 따라붙는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후시진은 펑솨이에 대한 중국 당국의 강압은 없었다고 강변했습니다. 후시진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일련의 글을 통해 "펑솨이의 최근 모습은 그녀의 안전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기 충분하다"며 "어느 여성이 강압 속에서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공개된 영상과 사진 속 펑솨이가 웃고 있는 사실을 상기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중국 체제를 공격하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많은 진실도 통하지 않는다", "서구 언론의 기대와 일치하지 않는 한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나라에는 많은 강요된 정치적 연출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 편집인 후시진의 트윗. '어느 여성이 강압 속에서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느냐'고 적었다.

중국 SNS · 포털 사이트에서 아직도 '펑솨이' 검색 안 돼


이런 강변에도 불구하고 펑솨이에 대한 강압 의혹은 여전합니다. 펑솨이의 중국 SNS 계정은 아직도 폐쇄된 상태입니다. 23일에도 웨이보 계정에 '펑솨이'를 검색하면 '찾을 수 없다'고 나옵니다. 펑솨이 관련 최근 뉴스, 영상도 찾을 수 없습니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에서도 상황은 같습니다. 바이두에 올라와 있는 펑솨이 관련 가장 최근 뉴스는 지난해 9월 기사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펑솨이의 최근 근황은 환구시보 편집인 후시진이 트위터에 올린 것들입니다. 중국의 자체 인터넷 검열 시스템 때문에 중국인들은 VPN(가상사설망)이 없으면 트위터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펑솨이를 처음 언급한 외교부 대변인의 22일 브리핑 내용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누락돼 있습니다. 정작 중국인들에게는 펑솨이 관련 어떤 소식도 접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것입니다.

김지성 취재파일용-펑솨이
▲ 중국 SNS 웨이보에 '펑솨이'를 검색하면 계정을 찾을 수 없다고 나오고(사진 위), 포털 바이두에는 지난해 9월 기사가 펑솨이 관련 가장 최근 뉴스로 올라와 있다.

지금까지 '안전하다'는 펑솨이의 근황은 IOC나 중국 관영매체 편집인, 혹은 펑솨이가 보냈다고 하는 이메일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됐습니다. 펑솨이가 직접 나서 입장을 밝히거나 그런 내용의 펑솨이 육성이 공개된 적은 없습니다. 성폭행 폭로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 성폭행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고 있는지, 중국 당국의 압박이나 회유는 없었는지, 현재 실제 안전한 상태인지 펑솨이가 직접 얘기하지 않는 한 펑솨이를 둘러싼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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