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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깨알같이 돌아온 '상절지백'!…'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북적북적]

더 깨알같이 돌아온 '상절지백'!…'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17 : 더 깨알같이 돌아온 '상절지백'!…'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나에겐 시간이 너무 부족하지만 당신에겐 시간이 있다. 편하게 자리를 잡았으면 근육의 긴장을 풀고 오로지 우주만 생각하라. 그 속에서 당신은 그저 하나의 티끌일 뿐이다.

시간이 아주 빠르게 흘러간다고 상상해 보라. 응애, 하고 당신이 태어난다. 흔해 빠진 하나의 버찌 씨처럼 어머니 몸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쩝쩝거리면서 당신은 수천 끼의 갖가지 음식을 먹어 치운다. 수천 톤의 식물과 동물이 이내 똥으로 변한다. 억, 하고 당신이 죽는다.

당신의 삶이 그런 것이라면 그 삶은 얼마나 덧없는 것이랴.
물론 당신은 그런 삶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서

개미,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 뇌, 신, 제3인류... 이런 소설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랑스인 작가가 아닐까 합니다. '프랑스가 낳고 한국이 키웠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는데 원래는 저널리스트였습니다. 소설 <개미>로 데뷔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과학기자 출신 답다고 할까요, 탄탄한 과학 지식과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이 버무려져 일찍이 없었던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정도로만 소개하면 될 것 같습니다.

베르베르의 소설에는 에드몽 웰즈라는 연구자가 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종종 나옵니다. 이 웰즈는 물론 베르베르가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이며 이 사전 역시 그렇긴 하지만 또 실제로 존재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베르베르입니다. 끝내 소설로 탄생한 여러 아이디어를 비롯해 꽤나 잡다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식들이 담긴 이 책은 1990년대에 출간됐는데 2021년 11월에 개정증보판이 한글로 번역돼 출간됐습니다. 오래 묵었지만 또 따끈따끈한 이 책이 이번 주 북적북적의 선택입니다.
 
"백과사전을 구성하는 일은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연상시킵니다. 꽃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골라서 자르고 다듬어 어울리게 섞는 게 플로리스트의 일이죠... 열세 살부터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어느덧 수백 개가 되었습니다. 이 특이한 이야기들 대부분은 전통적인 지식 습득 경로(학교 공부나 신문, TV, 일상 대화) 밖에서 누구한테 들은 것입니다." -<프롤로그>에서

"1601년, 현대 천문학의 창시자인 덴마크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는 황제 루돌프 2세와 같은 마차에 탑승하는 영광을 누렸다. 황제 앞에서 열성적으로 행성의 운행을 설명하던 그는 방광이 터질 듯한 요의를 느끼면서도 차마 마차를 세우라고 하지 못했다. 그는 오줌의 독성이 혈관으로 퍼져 결국 사망했다."
-<엉뚱해서 유명한 죽음들>에서

"미국의 기자 웬디 노스컷은 인간의 멍청함의 사화집을 만들기 위해 <다윈상>을 제정했다. 이 상의 수상자로는 매년 가장 멍청한 실수로 죽음으로써 열등한 유전자를 스스로 제거하여 인류 진화에 이바지한 사람이 선정된다... 1994년의 다윈상은 한 테러리스트에게 수여되었다. 그는 개봉하면 터지게 되어 있는 폭탄을 넣은 소포를 보내면서 우표를 충분히 붙이지 않았다. 소포는 집으로 반송되었고, 그는 소포를 뜯어보았다."
-<인간의 멍청함>에서

약간은 '믿거나 말거나' 같기도 하지만 재미있습니다. 대표작인 <개미>도 그렇고, 사후 세계를 탐사하는 원정대를 그린 <타나토노트>라든가, 인류 진화의 비밀을 추적한 <아버지들의 아버지>... 일견 황당하면서도 과학에 기반한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한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까지, 왜 베르베르의 소설이 인기 있고 또 재미있는지 그 비결을 엿볼 수 있는 게 이 책인 듯합니다.

저는 여러 신기묘묘한 이야기들 말고도 작가가 역사와 사회, 문명 등 전반에 대한 생각을 펼쳐낸 항목들도 꽤 재미났고 공감가기도 했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지대넓얇', '알쓸신잡'처럼 '상절지백'-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고 줄임말을 만들어 소개했는데 ㅋㅋㅋ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장구한 세월을 두고 돌이켜 보면 인류의 역사는 그런 식으로 진보한다. 3보 전진했다가 멈추고 2보 후퇴한 뒤에 다시 3보 전진함으로써 결국 한 발짝의 진보를 이루어 낸다. 그런데 어찌 보면 뒤로 돌아가는 그 두 걸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 사회의 전위들은 나머지 구성원들에 비해 너무나 빨리 나아간다. 따라서 가장 뒤떨어진 구성원들과의 격차를 줄이고 인류가 함께 나아가자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3보 전진, 2보 후퇴>에서

"우리 중에서 가장 의심이 많은 사람들조차 막연하게나마 외계의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그래서 지구의 지적 생명체인 우리 인류가 실패를 한다 해도 다른 지적 생명체들이 성공할 것이므로 우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우리에게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만약 우리밖에 없다면? 정말 우리밖에 없다면? 만약 무한한 우주 공간에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오로지 우리뿐이라면?... 이런 가정들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만약 우리가 실패한다면, 만약 우리가 우리 행성을 파괴한다면, 그 뒤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리라는 것이다." -<만약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면?>에서

제가 더 어렸을 때 심심해서 사전을 읽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인터넷 서핑을 할 수도 없고 집에 많지 않던 책은 다 읽어서 읽을 것도 없고 TV도 볼 게 없고 그럴 때면 사전을 꺼내 아무 데나 펼쳐 읽곤 했습니다. 백과사전의 묘미는 앞에서부터 읽을 필요도 없고 궁금할 걸 찾아 읽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읽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죠. 인터넷 시대의 하이퍼 링크를 오프라인 시대엔 '사전 꼬리물기'로 했던 것이었네요. 세계 최고이자 최대였던 브리태니커 사전이 인쇄본 출간을 거의 10년 전에 중단했듯이 이제는 백과사전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져 버렸지만 이런 베르베르식 '상절지백' 사전은 앞으로도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당신은 71퍼센트의 물과 18퍼센트의 탄소, 4퍼센트의 질소, 2퍼센트의 칼슘, 2퍼센트의 인, 1퍼센트의 칼륨, 0.5퍼센트의 황, 0.5퍼센트의 나트륨, 0.4퍼센트의 염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당신은 단순히 그런 물질들을 합쳐 놓은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하나의 화학적 구조물이며 훌륭한 건축물이다. 구성 물질들이 적절히 배합되고 한정되게 평형을 이루면서 완벽하게 기능하고 있다... 그 절묘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당신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다. 명심하라." -<당신>에서

*출판사 열린책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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