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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덩샤오핑 평가에 인색한 중국 역사결의…좌경화 예고?

창당 100주년을 맞은 중국 공산당이 지난 11일 100년 역사상 세 번째로 '역사결의'를 채택했습니다. 1945년 마오쩌둥 시절 1차 결의, 1981년 덩샤오핑 시절 2차 결의에 이어 40년 만에 채택된 이번 역사결의는 '시진핑의, 시진핑에 의한, 시진핑을 위한' 역사결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이번 결의를 통해 시진핑 주석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반열에 올리고,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을 기정사실화했다는 점에서 후자인 '시진핑을 위한' 역사결의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40년 만에 역사 결의를 채택한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 모습

시진핑 집권 시기, 공산당 100년 중 9년…역사 평가에선 절반 차지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의'라고 이름 붙여진 이번 역사결의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 197명과 후보위원 151명이 참석한 가운데 채택됐습니다. 표결 결과는 '물론' 만장일치 찬성이었습니다.

역사결의의 주요 내용을 담은 중국 공산당의 공보(公報)는 7천400여 자 분량으로 돼 있습니다. 마오쩌둥의 이름은 7차례, 덩샤오핑의 이름은 5차례 등장하는데, 시진핑 주석의 이름은 이 둘을 합한 것보다 많은 18차례나 거론됐습니다. 시 주석 직전 최고 지도자였던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이름은 각각 한 차례 언급하는 데에 그쳤습니다.

중국 공산당 회의에서 거수하는 중앙위원들. 중국 공산당 중앙위는 3차 역사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공보 내용 중에서도 공산당 100년 역사를 시기적으로 구분해 평가한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이 부분은 4천328자 분량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공보는 우선 100년 당사를 세 시기로 나눴습니다. 첫째, '신민주주의 혁명 시기 및 사회주의 혁명·건설 시기', 둘째, '개혁 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새 시기', 마지막으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 새 시대'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는 '시기'라는 표현을 썼지만 세 번째에는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세 번째 시대는 다름 아닌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를 일컫습니다. 시 주석의 지금까지 집권 기간은 2012년 이후 9년. 중국 공산당 100년 역사의 10분의 1도 안 되지만, 역사 평가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4천328자 가운데 2천91자로 절반에 가깝습니다. 반부패 투쟁과 홍콩·타이완 문제 성과 등 정치·경제·외교·군사·과학적 온갖 성과를 총망라했습니다. "시진핑 동지는 새 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주요 창시자"라며 "시진핑 사상은 중국 문화와 중국 정신의 시대적 정수"라고 한껏 치켜세웠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마오쩌둥이 이끈 시기로 서술 분량은 951자입니다.

1·2차 역사 결의를 채택했던 마오쩌둥(왼쪽)과 덩샤오핑

덩샤오핑 평가, 상대적으로 '인색'…좌회전→우회전→다시 좌회전?

두 번째 시기인 '개혁 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새 시기'가 덩샤오핑으로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덩샤오핑뿐 아니라 장쩌민과 후진타오 집권 시절을 전부 이 시기에 몰아넣었습니다. 덩샤오핑에 대한 평가 분량도 각각 장쩌민, 후진타오를 평가한 분량과 비슷합니다. 그렇다 보니 덩샤오핑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제외하고 오롯이 덩샤오핑 시절만 평가한 것은 272자 분량에 불과합니다. 시진핑 주석은 물론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에 비해서도 턱없이 적습니다. "덩샤오핑 동지를 주요 대표로 하는 중국 공산당원들은 전당 전국 각 민족을 단결시켜 신중국 건설 이후 정반(正反) 양면의 경험을 총결산했다"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정반 양면'의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는데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의 업적과 과오를 구분했던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덩샤오핑은 1981년 2차 역사결의를 통해 "문화대혁명은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좌절과 손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덩샤오핑을 지지하는 입장에선 이런 인색한 평가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 내에서 일반적으로 인식돼온 덩샤오핑에 대한 평가와도 결이 달라 보입니다. 주시하다시피 덩샤오핑은 중국의 개혁 개방을 이끈 인물입니다. 수천만 명의 아사자를 낳은 대약진운동(1958~1962년)의 실패, 17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되는 문화대혁명(1966~1976년)의 혼란을 딛고 중국을 부유하게 만든 인물입니다. 중국이 지금 G2(주요 2개국) 반열에 올라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데에는 덩샤오핑의 공이 컸습니다. 마오쩌둥이 혁명 정신을 앞세워 좌경화 일변도를 보였다면, 덩샤오핑은 과감한 우회전을 시도해 계급 투쟁을 유예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부의 축적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번 역사결의를 통해 중국이 다시 좌경화로 돌아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록 덩샤오핑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더라도 상대적으로 야박한 평가를 통해 덩샤오핑 시절에 대한 현 집권 세력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급성장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랬듯이, 덩샤오핑 시절 경제 급성장은 '부의 불평등'을 낳았습니다. 일부 산업이, 일부 기업이, 일부 계층이 부를 독점했습니다. 빈부의 격차는 날로 커졌습니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개혁 개방이 중국을 부유하게 만든 건 분명하지만 연안과 내륙, 도시와 농촌, 지방과 지방, 계층 간 격차를 심화시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가적 통합이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이번 역사결의에서 드러난 시진핑 주석의 문제 인식"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좌경화 기조는 이미 중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올해 들어 '공동 부유'를 국정 기조 전면에 내걸면서 부의 분배를 강조하고 나섰고, 이에 맞춰 중국 당국은 연일 규제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거대 IT 기업뿐만 아니라 부동산, 사교육, 게임, 엔터테인먼트산업 등 전방위로 규제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언론과 인터넷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대한 감시와 통제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공동 부유'가 내년 하반기 3연임을 노린 시진핑 주석의 인기 영합성 정책이 아니라, 중국의 물줄기 방향을 아예 돌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익명의 전직 중국 교수는 "마오쩌둥 시절 1차 역사결의를 통해 물줄기가 왼쪽으로 바뀌고, 덩샤오핑 시절 2차 결의를 통해 물줄기가 오른쪽으로 바뀌었다면, 이번 3차 결의를 통해 물줄기가 다시 왼쪽으로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지난 11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의 시진핑 주석 모습

마오쩌둥 · 덩샤오핑, 역사결의 이후 장기 집권…시진핑 집권 언제까지

이번 역사결의에서 자주 등장한 단어 중 하나는 '핵심'이라는 단어입니다. 공보에는 '시진핑 동지를 당 중앙의 핵심이자 전(全)당의 핵심'으로 여러 차례 명기했습니다. 이 말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닙니다. 시 주석 1차 집권 후반기부터 나오긴 했지만 시 주석의 공식 임기가 이제 1년 남은 것을 감안하면 이 문구가 지니는 무게는 달라집니다. 내년 하반기 당 대회에서 시 주석의 3연임 여부가 결정되는데 이보다 1년 앞서 사실상 3연임을 선언한 셈입니다.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 가능성은 앞선 역사결의 선례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오쩌둥은 1945년 1차 결의에서 이번 시진핑 주석처럼 '당 중앙의 핵심이자 전당의 핵심' 지위를 부여 받은 뒤 1976년 사망 직전까지 31년간 최고 지도자 자리를 더 지켰습니다. 1981년 2차 역사결의를 단행한 덩샤오핑도 1990년대 초반까지 최고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은 사실상 결정된 상황. 이제 관심은 시 주석이 4연임, 5연임까지 할 수 있느냐에 쏠리고 있습니다. 문일현 교수는 "이번 역사결의는 시진핑 1인 통치 제제를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 마무리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내년 당 대회 이후 중국 공산당은 집단 지도체제가 아닌 시 주석 중심의 집중 통일 지도체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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