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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쉽] 주4일제 하면 회사가 망할까?…'월화수목토토토'를 위한 실험들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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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주5일제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한때는 1주일에 이틀을 쉬면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던 시대도 있었다. 필자가 20대 막내 직장인이던 90년대, 토요일은 출근하는 날이었다. 토요일도 저녁먹을 시간까지 회사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 법정노동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하는 주5일제가 도입된 건 월드컵 4강의 감동이 지나고도 2년 뒤인 2004년 7월의 일이다. 주5일제는 공공기관부터 시작해 사업체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도입됐다. 2011년 7월에야 20명 미만 사업체까지 적용됐다. 연장근로와 휴일근무를 포함한 최대노동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제한된 건 모두들 아는 바와 같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그에 따른 후유증과 논란도 적지 않다.

2004년 주5일제 시행을 앞두고 당시 한국사회에선 격론이 일었다. 월급을 주는 자와 월급을 받는 자의 세계관 투쟁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놀다간 회사(또는 가게)도 망하고 경제도 망하고 나라도 망할 거라는 위기감 같은 것이 월급을 주는 사람들과,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했다. 신의 뜻에 반하는 일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하나님은 주6일 일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2001년 8월 모 신문 외부필자 기고
그러나 당시에도 세계에는 1주일에 2일 쉬는 나라가 많았고, 한국도 그런 대세에 동참했다. 결과적으로,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2004년~2011년의 데이터를 분석한 2017년 연구에 따르면, 5일제 실시 이후 10인이상 제조업체의 노동생산성(1인당 실질 부가가치 산출)은 1.5% 증가했다. 당시 KDI는 비효율적으로 오래 일하는 것보다는 효율적으로 짧게 일하는 것이 더 많은 성과를 낸다며 그에 맞게 임금체계를 개편할 것을 제안했다.

주5일제 시행 이후 17년, 이제 우리 사회에는 근무일수를 하루 더 줄이자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과연 가능할까? 국내외에서 먼저 이를 시행해본 사례들에선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뉴스쉽] 주4일제 대표 이미지-주 3일 놀자?!

의외로 오래된 국내의 주4일제 실험

국내에도 주4일제를 선도적으로 실시해 정착시킨 기업들이 있다. 충북 충주에 있는 화장품 제조기업 에네스티가 가장 먼저, 가장 오래 4일제를 성공시킨 회사로 거론된다. 이 회사는 수안보온천 물을 이용해 피부개선 화장품을 만든다. 2010년 아이를 키우는 여성 사원 3명을 대상으로 시작해, 3년간 직원 80%에게 주4일제를 시범운영했다. 이후 문제점을 보완해 2013년부터 전 직원에게 확대했다. 30여 명인 전 직원이 주 38시간씩 일한다. 2013년 매출은 60억원 2016년 매출은 약 100억원으로 회사 실적도 좋아지고 이직률도 낮아졌다고 한다.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은 도시 근로자들에게 더욱 많이 알려진 사례일 것이다. 2019년 6월 '드림데이'라는 제도를 도입해,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 더 쉰다. 하루 8시간씩 주 32시간 근무하는 시스템이다. 일괄적으로 금요일에 쉬는 게 아니라, 각자 휴무일을 정한다. 휴무일을 잘 고르면 팀장 얼굴을 주3일만 봐도 된단다.
에듀윌 공식 유튜브 캡처
성장을 위한 장시간 고강도 근무가 문화로 통하던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우수인재 유지 및 유치를 위해 4일제 또는 그와 유사한 근무시간 단축제도가 확대되고 있다. 게임회사 '엔돌핀커넥트', 독서 플랫폼 회사 '밀리의 서재' 등이 주4일제를,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숙박 플랫폼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위드이노베이션은 매주 월요일 오후 1시에 출근하는 '주4.5일제'를 도입했다. 복합 핀테크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금요일 조기퇴근형 4.5일제를 도입했다.
[뉴스쉽] 주4일제 스타트업들의 홍보 이미지 -카카오게임즈 등
대기업 중에서는 SK그룹의 컨트롤타워라 할 수 있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격주 주4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SK텔레콤도 매주 셋째 금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했다.

이런 경우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전향적으로 4일제를 시도한 경우지만,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하자 생존 차원에서 4일제를 실시해야 했던 경우도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해 '빈폴스포츠' 브랜드를 접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며 7월부터 연말까지 주4일제를 했다. 고용인원 감소, 임직원 급여 일부 반납, 일부 무급휴직 등이 동반된 그야말로 '비상조치' 차원이었다. 코로나19로 매출 타격이 컸던 신라호텔, 롯데면세점 등도 임금을 동결하고 주4일 혹은 주3일 유연근무를 적용하면서 위기를 버텼다.

주4일제를 정치적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인 건 올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섰던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선거가 이른바 '생태탕 논란'의 진흙탕으로 휩쓸려갔고, 4일제 논의는 큰 탄력을 받지 못했다.
[뉴스쉽] 주4일제 띄운 정치인들- 시대전환 조정훈, 정의당 심상정
이번에는 정치권 '네임드'인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주4일제를 '1호 공약'으로 밀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재택근무가 확산된 상황이어서 반향이 다르다.

하루 더 쉬고 그만큼 덜 받으라고 한다면?

여기서, 밸런스 게임을 하나 해 보자. 1) 지금처럼 근무하고 지금과 같은 액수의 급여를 받는다. 2) 하루 더 쉬고 20% 적게 받는다. (기사 맨 아래에 '투표하기' 링크가 있으니 다 읽고나서 재미삼아 참여해 보시라.)
[뉴스쉽] 주4일제 밸런스게임, 그대로 받고 5일? 하루 더 쉬고 20% 삭감? 인스턴트 폴
각자의 처지와 가치관에 따라서 다른 답을 할 것인데, 당신이 고용주가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이런 질문 자체가 달갑지 않을 것이다. 피고용인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현재 유럽 각국과 일본, 뉴질랜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주4일제는 급여가 줄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자면 하루 덜 일하고도 성과가 나서 일터가 망하지 않아야 하는데...

과연 직원들은 놀 생각만 하는 존재들일까? 미국에서 이와 관련해 종종 인용되는 설문조사가 있다. 인사관리 전문기업인 크로노스(Kronos)와 노동시간 효율화 전문가 댄 쇼벨이 8개국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인도, 멕시코) 3천여 명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물었다. 급여를 그대로 준다면 당신은 1주일에 며칠 일하고 싶은가?

0일? 그렇게 대답한 사람은 4%에 불과했다고 한다. 가장 많은 답변은 4일 (34%). 지금처럼 5일 일하겠다는 답변도 28%나 됐다.
[뉴스쉽] Kronos, 급여 그대로라면 주 며칠 일할래?
미국 공영라디오 NPR인터뷰에서 쇼벨은 이렇게 말했다. "이 조사는 중요하다. 사람들이 일하길 원한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4일제: 어떤 직장은 되고 어떤 직장은 어려울까?

주4일제를 할 수 있으려면 자신들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야 한다. 기업활동의 상대가 되는 고객(개인 또는 기업)에게 '우리가 하루 더 쉬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할 수 없으면 주4일제는 어렵다. 예를 들어, '갑'인 대기업의 납기 독촉과 잦은 변덕에 시달리는 '을'인 중소기업이 4일제를 실시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앞서 언급한 SK수펙스추구협의회의 경우 SK 각 계열사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같은 역할을 하므로 4일제를 도입하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업무 자체가 많아서, 임직원들이 실질적으로는 4일을 초과해 일하는 경우가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공서나 공공기관도 민간기업에 대해 갑의 위치에 있으므로 유리하다. 우리나라에 주5일제(토요 휴무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되던 2004년에도 시작은 공공기관부터였다.

경쟁이 심한 업종의 작은 기업이라도, '워라밸'을 따지는 우수인재를 확보해야 하는 경우라면 주4일제를 시도하는 것이 득이 될 수 있다. 게임 개발사 엔돌핀커넥트는 올해 4월에 사업자 등록을 한 신생 기업이다. 이름대면 알만한 대형 IT회사들이 돈으로 엔지니어 인재들을 쓸어담는 요즘, '4일 근무제'는 회사가 돈 대신 내밀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
신생 게임회사 엔돌핀커넥트의 근무조건 -회사 티스토리 캡처
서비스나 소매업 등 매장에서 계속 일정규모의 접객이 필요한 경우, 또는 시간대별로 일정한 양의 서비스나 콘텐츠 생산이 필요한 경우라면 추가 인원채용 없이 4일제로 이행하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카리스마가 강한 창업주 또는 CEO가 경영의 전권을 휘두르며 성장이나 혁신을 주도하는 경우라면 4일제 같은 얘기를 꺼내기도 어려울 수 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의 대표 기업들은 스타트업이 아닌 지금도 업무 강도가 세고 밤낮이 따로 없는 걸로 유명하다. 최근 주가 급등으로 '천슬라' 별명을 얻은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창업자,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도 일컬어지는 일론 머스크는 2018년, "(겨우) 주 40시간 일해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느냐!"고 일갈했다.
[뉴스쉽] 일론 머스크, 주40시간 일해서 어떻게 세상을 바꾸냐 일갈
아마존을 창업해 거대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지금은 우주개발을 추진하는 제프 베이조스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란 말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건 당신을 약하게 만드는(debilitating) 단어다. 일(work)과 삶(life)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관계가 아니다."
-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회사의 수장이 이런 마인드라면, 그와 같은 꿈을 꾸고 성장과 혁신에 동참하든지 얼른 떠나든지 둘 중의 하나를 빨리 선택하는 게, 기약없는 주4일제를 기다리는 것보다 낫다.

하루 더 쉬는데 성과가 오히려 오른다고?...국내외 사례

주4일제를 도입하면 직원들의 피로도가 줄고 만족도가 높아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하루 일을 덜 해도 성과가 그대로 나올 것이냐다.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야 4일제 전환시도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주4일제 모범사례로 알려진 기업들은 대체로 경영성과와 사내 반응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충주의 화장품 제조기업 에네스티의 매출은 2013년 83억원이었으나 주4일제 시행 뒤 점차 늘어 2016년 100억원을 돌파했다. 교육업체 에듀윌의 매출은 주4일제 시행 전 815억원에서 시행 후 1193억원으로 늘었다.

에듀윌 공식 유튜브 채널의 영상에 출연한 직원은 주4일제 때문에 더 집중해서 더 빨리 업무를 처리하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말한다.
에듀윌 공식 유튜브 캡처
아이슬란드는 복지국가 모델을 추구하는 인구 34만의 작은 북유럽 섬나라다.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주4일제 실험을 실시했다. 작은 나라지만 어쨌든 국가 단위 실험이어서, 흔히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주4일제 실험'으로 회자된다.
[뉴스쉽] 아이슬란드의 주4일제 실험 요지
수도 레이캬비크 시의회와 중앙 정부 주도로 4년간 약 2,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유치원 교사와 병원 종사자, 사무직, 사회 복지사 등 공공부문의 다양한 직업군이 참여했다. 일은 덜해도 공공서비스는 유지해야 하니, 이를 위해 아이슬란드 정부는 매년 2,420만 파운드(우리돈 약 392억원)를 들여 채용을 늘렸다고 와이어드 매거진 영국판이 보도했다. 인원을 늘린 덕에 민원 1건당 해결에 걸리는 시간, 서비스 제공 건수 등 성과지표들은 떨어지지 않거나 약간 상승했다.

실험결과에 대한 평가가 좋아서, 이제 아이슬란드 근로자의 80% 이상은 근무일수를 줄였거나, 그럴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주4일제 찬성론자들에겐 좋은 결과지만, 다른 나라나 민간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뉴스쉽] 일본 마이크로소프트의 주4일제 실험 요지
일본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Japan)는 2019년 8월 한달간 금요일마다 쉬는 주4일제 실험을 했다. 이 사례는 유명 글로벌 기업인데다 그 성과를 명확한 숫자로 밝혀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워크-라이프 챌린지 2019 여름'으로 명명된 실험프로젝트에서, 일본 마이크로소프트는 40% 가량의 생산성 향상 효과를 거뒀다고 발표했다. 이를테면, 온라인 등 '스마트 회의' 비율은 21% 늘었다. 인쇄용 종이 사용은 무려 60%, 전기 사용은 23% 감소했다. 2019년 8월의 노동생산성( 직원 1인당 매출)이 4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국내언론은 "일본MS가 주4일제를 해 봤더니 매출이 전년대비 40% 늘었다"고 지나치게 단순화해 보도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일본MS측은 과잉해석을 경계했다. 직원1인당 매상이 해당기간에 전년 대비 40% 많게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4일제 실험만으로 달성된 건 아니고 다른 여러가지 요인으로 실현된 결과라고 자체 뉴스센터에서 밝힌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MS는 4일제 실험을 추가 실시하긴 했지만 전면적인 4일제 채택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주4일제 실험에서 성과가 나는 이유

주4일제를 시범 도입한 기업에서 업무성과가 오히려 오르는 이유는, 직원들이 짧아진 시간에도 불구하고 더 집중해서 일하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유산 신탁 관리회사 퍼페추얼 가디언(Perpetual Guardian)은 2018년부터 주4일제를 실시해 20%의 생산성 향상 효과를 본 것으로 자주 소개되는 기업이다. 이 회사가 주4일제에 나서게 된 계기는, 창업자 앤드류 반즈의 눈에 띈 이코노미스트 지(The Economist) 기사였다. 사무실 근로자들이 생산적으로 일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뉴스쉽] 바우처클라우드,  열심히 일하는 시간은 하루 2시간 -노동시간 어떻게 쓰는지 설문- 엄한 일에 허비
비슷한 조사가 2017년 영국에서도 나왔다. 할인쇼핑사이트인 바우처 클라우드 닷컴의 조사결과,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하루에 이메일 쓰고 답하는 데 한시간 반,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뉴스 등을 보는 데에 2시간을 허비하고, 실제로 생산적인 일에 집중하는 시간은 2시간 23분에 불과했다.

'그럴 바에야 집중해서 일하고 하루를 더 쉬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앤드류 반즈는 자신의 회사에 주4일제를 도입했다. 반즈는 인사 전문 사이트인 SHRM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했더니 직원들 스스로 시간낭비를 없애고 일에 집중하더라. 그래서 성과가 더 났다."고 말했다.
[뉴스쉽] 앤드류 반즈, 뉴질랜드 퍼페추얼 가디언, 주4일제는 엄청난 인센티브, 올바른 근무태도 필요
주2일 쉬던 직장인이 3일을 쉬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혜택이 사라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일을 열심히 할 강한 동기로 작용하며, 또 그래야 한다는 말이다.

주4일제 실험이 실패하는 경우

그런데, 시범 운영중에는 4일만 일하고도 회사가 잘 돌아가다가, 점차 성과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미국 라스베가스에 있는 매트리스 비교 검색 사이트 '슬럼버 야드'는 직원 12명의 스타트업이지만 업계 1위 기업이다. 이 회사는 2018년, 두달 동안 주4일 근무제를 시범 실시했다. 회사 사정상 근무시간을 줄일 수는 없고 사람을 더 뽑을 수도 없어, 1일 근무를 8시간에서 10시간으로 늘리고, 대신 하루를 더 쉬는 형태로 근무했다. 그래도 하루 더 쉴 수 있다는 사실에 직원들은 흥분했고, 매우 열심히 일했고, 성과도 좋았다. 회사 공동설립자인 맷 로스는 SHRM 인터뷰에서 "처음엔 다들 이거 홈런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4일제 시도했다가 철회한 사례. 미 슬럼버야드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시일이 지날수록 직원들의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모여서 잡담하거나 딴짓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회사가 제공하는 각종 간식류 소비가 늘었다. 성과는 나빠지는데 부식비가 한달에 500달러 가까이 불어나자, 견디지 못하고 회사는 원래의 8시간 5일 근무제로 복귀했다.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가 작용해, 시범실시 기간에만 반짝 성과가 날 수도 있다. 호손 효과란, 자신의 행동이 관찰되고 있음을 인지할 때, 자신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정 또는 순화시키는 반응을 뜻한다. 어떤 직장에서 주4일제를 시범 실시할 경우, 직원들이 '시범'의 성공을 위해 처음에는 매우 열심히 일하다가 4일제가 일상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평소 수준의 근무 집중도로 돌아가버릴 수 있다. 고용주 측 입장에 선 전문가들은, 이런 호손 효과로 나타난 시범 결과에 현혹돼 섣불리 주4일제를 실시했다간 회사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출근했다고 다 열심히 일하나? - 직장인의 시간 소비 실태는

5일에 하던 일을 4일에 해내려면 시간 관리를 잘 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원들은 어떤 이유로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 인사전문기업 크로노스가 8개국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호주, 인도, 멕시코) 3천여 명의 전일제(1일8시간 주5일)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이들 중 45%는,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서 일한다면 하루 일 마치는데 5시간 반이면 충분하다고 답했다. 37%의 응답자는, 사실 주 40시간이라는 시간이 업무를 완수하기에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뉴스쉽] 크로노스-하루 5시간 반이면 된다
자신의 업무와 별 관계도 없고 조직의 성과에도 별 도움을 못 주는 잡일 때문에 일터에서 시간을 까먹게 된다는 답변은 86%에 달했다. 그런 잡일로 날리는 시간이 하루 1시간 이상이라는 답변은 41%였다.

직장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많았던 답변은 '남이 저지른 문제의 뒤치다꺼리(22%)' ,행정 잡무(17%) , 불필요한 회의(11%), 이메일(11% -우리나라로 치면 '카톡'을 포함해 생각해야 한다), 고객에게 시달림(11%)등이었다.
[뉴스쉽] 크로노스- 직장인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요인
이 질문에 대해서는 세대별로 다른 특성이 나타났다고 한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남이 저지른 문제의 뒷수습'이라는 답변이 26%로 높게 나타난 반면, 젠지(GenZ)세대에서는 직원간의 갈등(9%)이라는 답변이 높게 나왔다.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소셜미디어(10%)를 꼽았다.
국가나 업종, 기업규모, 세대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어느 직장에서나 상황은 비슷하지 않을까. 중요한 가치를 창출하는 일에 직원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시간 낭비 요인을 줄이는 것이 주4일제를 위해 가장 중요한 준비라는 시사점을 준다.

주4일제를 도입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들

주4일제를 잘 정착시킨 회사들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충주의 화장품 제조회사 에네스티는 10년 넘게 4일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회사 규모도 커졌지만, 처음부터 안정적으로 정착됐던 건 아니라고 한다. 4일제 전환 초기에는 출ㆍ퇴근시간을 오전 8시 30분, 오후 6시 30분으로 늘려 근무시간을 연장하고. 2년 간은 임금도 동결했다는 것이다. 중소제조업 특성상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연차를 쓰면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다 함께 연차를 쓰는 공동연차(7일)를 도입해, 설이나 추석 연휴 앞뒤로 하루씩 더 쉬도록 했다.

에듀윌은 사람을 더 뽑았다. 주4일제 시행 전 470명이던 에듀윌 직원은 현재 780명 수준으로 늘었다. 2019년 1월 회사에서 주4일제 시행 방침을 공지하면서 추가 소요 인원을 부서별로 파악했고, 실제로 더 뽑았다고 한다. 누가 언제 쉬는지, 휴무 일정과 업무진행상황을 공유하고 불필요한 잡일을 줄이는 등, 업무 체계 합리화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일본MS는 주4일제 실험 자체 평가에서 아래와 같은 점들이 과제로 남았다고 밝혔다. 4일제 전환을 생각하는 조직이 있다면 사전에 고민해봐야 할 내용들이다.
① 사원은 "다양한 일 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부응해야 한다.
② (스마트하고 유연한 근무를 위한 도구를)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사원/부서와 그렇지 못했던 사원/부서의 격차가 나타났다. 이를 해소해야 한다.
③ 아직 일부 매니저/부문에서 일하는 방법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④ 우리 회사의 근무일수 축소 챌린지가 고객에게 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원/부문이 있었다. 고객에게도 이 챌린지를 공유하려고 긍정적으로 시도하는 사원/부문도 있었다.

주5일제는 '자연법칙'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

노동시간을 더 줄이면 큰일 나는 것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주5일 40시간제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진화의 한 과정일 뿐이다. 산업화 이후 노동시간은 꾸준히 줄어왔지만 그로 인해 경제가 망하는 일은 한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사실, 산업 역사상 노동시간 축소의 가장 큰 계기를 제공한 사람은 희대의 자본가, 자동차왕 헨리 포드였다. 그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은 시간과 돈을 가져야 포드 자동차를 더 많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노동시간 단축과 급여 인상에 선구적으로 앞장섰다.
[뉴스쉽] 노동시간 단축과 주5일제 도입 역사- 헨리 포드
고객의 구매력이 커져야 산업이 클 수 있다는 포드의 통찰은 자본주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까지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대부분 기업 또는 자본이 가져갔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직원의 실질임금 상승폭은 기업의 성장 또는 대주주들의 자산증식 폭에 훨씬 못 미친다. 주4일제 요구는, 이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몫을 좀 더 나눠달라는 뜻이다.

섣부른 법제화는 금물...'근무의 유연성'부터 해결해야

다만, 새로운 제도는 뜻이 좋더라도, 도입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에 무리가 간다는 걸 이번 정부의 경제정책들이 이미 보여줬다. 주4일제가 인기있는 정치적 상품으로 소비되다 경직된 제도로 섣불리 법제화된다면, 갑이 을에게 노동시간을 외주화하는 현상이 심해질 것이다. 근로계층간의 양극화는 더욱 깊어질 수 있다. 몇 시간 일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성과를 냈느냐에 따라 보상하는 방식으로 임금체계가 조정되어야 보다 많은 기업들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문제도 있다.

해외 논의들을 보면, 4일제 전환을 하는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논의를 하지, 4일제를 못하는 회사들을 어떻게 벌줄까 하는 논의는 하지 않는다. 4일제를 선택한 직장 안에서도 대부분 '가능한 부서 또는 원하는 사람에 한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주4일 플랜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재택근무 확대나 유연 출퇴근 같은 다른 옵션을 제시한 경우가 많았다.

이게 중요하다. 국내 기업 현실상 근로 일수 단축이 어렵다면, 직원들에게 유연성과 자율성이라도 늘려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업은 업무 프로세스 합리화, 효율화라는 성과까지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구성 : 이현식 선임기자, 장선이 기자, 김휘란 에디터 / 디자이너 : 명하은, 박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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