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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갈 길 먼데 헤매는 '고발 사주' 수사

[취재파일] 갈 길 먼데 헤매는 '고발 사주' 수사
"만약에 그(=고발 사주) 의혹이 의혹대로 인정이 된다고 그러면, 누가 봐도 아주 우리나라 헌정질서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생각이 된다."

김진욱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이하 공수처) 처장이 지난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수처 국정감사에서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 착수하게 된 배경 등을 설명하며 밝힌 내용이다. 맞는 말이다. 김 처장이 말한 해당 의혹이 인정되면 매우 부적절한 범행이다. 다만, 답변 내용을 보면 '의혹이 인정이 된다면'이라며 조심스럽게 단서를 달아 놨다. 사실 관계를 파악해 범죄 혐의를 입증하겠다는 원론적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뒤집어 보면 아직 사실 관계를 파악해 나가는 중이거나 또는 구체적 사실 관계나 제대로 된 범죄 혐의점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된다.

김진욱 처장 답변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당시 공수처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손준성 검사에 대해 이미 소환을 통보(소환 통보 시점 : 10월 4일) 한 상태였다. 그런데 손 검사가 변호인을 선임하는 등의 이유로 여러 차례 소환 일정 변경을 요구했고, 공수처는 이러한 과정을 '수사 비협조'로 받아들였다는 게 공수처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김진욱 처장은 12일 국정감사장에서 사실상 손 검사를 겨냥해 "이 사건과 본인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관계가 없고 무관하다면 출석을 해서 무관하다는 사실을 떳떳하게 밝히시면 됩니다"라며 출석을 촉구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의 자신감과 조심스러움"


김진욱 처장의 첫 국정감사를 지켜본 일부 법조인들은 엇갈린 감상평을 내놨다. ' 첫 국정감사에 나선 기관장치고 자신 있고 여유로워 보였다. 말실수할까 봐 걱정되더라'라는 의견과 함께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답변 내용을 보면 조심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의견도 있다. 영장이 두 차례 기각된 지금 시점에서 공수처 국정감사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고발 사주 의혹 수사의 필요성과 공수처 수사 의지와는 별개로), 공수처 수사팀이 고발 사주 의혹 범죄 관련 사실관계 구성을 다져 놓지 못한 터라 김진욱 처장의 자신감 있어 보이는 태도 이면에는 조심스러움이 묻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의혹이 사실로 인정된다면'이라는 말도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인 것이다.

우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 시절 손준성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이 범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을 사주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손 검사를 소환하려면 공수처는 이에 앞서 범죄로 의심되는 사실 관계를 탄탄하게 다져 놓아야 한다. 공수처 조사실은 손 검사를 불러 조언을 얻거나 설명을 듣는 곳이 아니라, 사실 관계를 토대로 수백 개의 질문을 만들어 놓고 피의자를 추궁해 해명을 듣고 조서에 반영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 영장 단계에서 공수처 주장이 거듭 인정을 받지 못한 점에 비춰보면, 이런 기초 작업들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한 소환 조사에 지나치게 방점을 두다가 자충수를 뒀다는 분석이 많다. 위에 언급했던 김진욱 처장의 국회 답변으로부터 8일 뒤인 지난 20일,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한다. 이는 법원에서 기각됐다. 당시 법원은 피의자 신분의 손 검사가 ' 출석요구에 불응할 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그러자 공수처는 지난 23일 토요일 손 검사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제(26일) 영장실질심사에서 또 기각됐다. 이번엔 ' 구속 필요성이 부족하고 현 단계에서 사실상 범죄 혐의도 소명되기 어렵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서울에 근무하는 한 현직 판사는 "범죄 혐의 소명 여부와 피의자 방어권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이다. 영장판사가 피의자 방어권을 언급했다면 이는 범죄 혐의가 제대로 소명되지 않았다는 취지"라고 부연했다. 연이어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영장 청구에 대한 신중론도 있었다는 변소도 뒤늦게 들린다. 수사 과정에서 영장과 관련된 법원의 판단은 공소제기 이후 이뤄질 본안 판단에 앞서 수사의 중요한 동력이 되기 마련이다. 영장 발부 여부가 수사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아니지만 쉬운 말로 영장이 꺾이면(=기각되면) 수사 동력도 주춤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구속영장이라는 초강수에 대해서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공수처가 핵심 물증을 확보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리 반전은 없었다. 공수처는 핵심 물증을 제시하기는커녕 영장심사 법정에서 범죄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의심되는 검찰 고위 간부들이 누구이고, 이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공모한 것인지 등을 분명히 드러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은 문제가 되는 고발장의 최초 작성자가 누구이고, 해당 고발장과 함께 텔레그램 메신저에 첨부된 실명 판결문을 열람하고 출력한 것으로 의심되는 검찰 내부자는 누구인지 특정해야 하는 건데, 이 역시 공수처가 제대로 소명하지 못했다. 영장 범죄사실 부분에 등장하는 '성명불상 검사와 공모하여'라는 표현도 구속영장 심사에 공수처가 과연 충분히 대비했는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해당 문구가 영장에 적시됐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현직 판사들은 "아무리 법원이 정치화돼 있다고 조롱을 받아도 어떻게 저렇게 구성된 영장을 발부해주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손준성 검사

'손준성에게 소환을 구걸했다'…판사에 읍소했나?


체포영장 청구 때와 달리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가리는 절차에서는 공수처 수사팀과 손 검사 양측이 법정에서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심리 하에 각자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공수처 측은 영장전담 부장판사에게 ' 손 검사를 소환 조사하려고 구걸하다시피 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상 읍소를 한 셈이다. 공수처 검사 입장에서 주요 피의자인 손 검사 소환의 어려움을 호소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사 비협조를 이유로 구속을 하겠다면서 그것도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거나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일종의 읍소를 했다는 공수처 측 전략에 대해 현직 검사와 판사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현직 판사는 "구속 수사를 주장하려면 도주 우려와 증거인멸의 우려 그리고 범죄 혐의가 소명된다는 점을 내세우면 되는데 내세울 게 마땅치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고발 사주 의혹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현 단계에서 충분치 않다는 방증이 아니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일련의 흐름을 짚어보면 손 검사 조사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비해 공수처가 침착하고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 같다"라며 "태도도 중요하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검사는 피의자와 소환을 협상해서는 안 된다. 오게 만들어야 한다. 범죄 혐의를 토대로 질문지를 다 구성해놓고 와서 소명하라고 해야 한다"라고 했다.

야당 대선 경선 일정이라는 정치적 변수를 이유로 들어 소환을 요구한 점도 법조계 일각에서는 비판적으로 본다. 수사 기관은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경선 일정과 같은 요소는 보호 법익이 없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공수처의 설득 방법은 손 검사 측이 조사를 받으러 가기 부담스러운 요소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공수처는 현직 검사에 대해 단 한 차례의 소환 조사 없이 구속 수사를 강행하려다가 영장이 기각됐다. 공수처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법정에서 첫 대면해 지켜본 손 검사와 손 검사 측 변호인의 진술을 얻은 것이라고 해야 한다면 얻은 것에 비해 잃은 것이 크다.
 

방어권 보장 지적에도 한 수 접은 공수처


수사 내용적 측면 뿐 아니라 수사 절차 상의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인권 친화적인 수사기구로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 12일 법사위 국정감사)
"공수처가 성찰적 권한 행사를 한다면 인권 친화적인 국가기관이 될 것"(지난 1월 취임사)

이는 모두 김진욱 공수처장이 공수처의 인권 수사를 지향하며 내놓은 말이다. 이러한 말이 무색하게 공수처는 구속영장을 청구한 당사자인 손 검사에게 영장 청구 사실을 뒤늦게 알렸다가 구설에 올랐다. 수사 기관으로서 보호해야 할 피의자의 방어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는 취지이다. 인신이 구속되느냐가 목전에 닥쳤는데 변론을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다면, 당사자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물론 법 상 수사기관이 영장 청구 사실을 즉각 통보해야 할 의무는 없다.

다만, 검찰의 경우 통상 피의자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법정에서 펼칠 변론을 준비하도록 영장 청구 사실을 즉각 통보하는 편이다. 소위 개혁되기 이전의 검찰도 이렇게 해오는 게 오래된 관행이었다. 공수처 관계자는 "수사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라고 하면서 "방어권 보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유념하겠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 개혁을 동력 삼아 탄생한 수사 기관이 이래도 되느냐'는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래와 같은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에 규정돼 있는 원칙을 제대로 지켰는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사건사무규칙 제8조는 " 강제수사는 필요한 경우 최소한 범위 내에서 사용하되, 필요한 경우에도 대상자의 권익 침해 정도가 낮은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 사건사무규칙 제8조 (임의수사의 원칙)
​① 수사처 검사 및 수사관은 원칙적으로 임의수사의 방법을 사용하고, 강제수사는 필요한 경우에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사용해야 한다.
② 수사처 검사 및 수사관은 강제수사가 필요한 경우에도 대상자의 권익 침해의 정도가 보다 낮은 수사의 방법과 절차를 사용해야 한다.

다만, 공수처의 무리한 수사가 고발 사주 의혹 수사 대상자들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공수처는 의혹의 진위 여부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내야 한다. 고발 사주 의혹 최초 제보자인 조성은 씨에게 문제가 된 고발장을 건넨 국민의힘 김웅 의원을 비롯해 '손준성 보냄'의 손준성과 동일 인물로 지목된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손 검사는 김진욱 처장이 국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떳떳하다면 추후 공수처에 출석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소명하면 된다.
지난 12일 국감 출석한 김진욱 공수처장(왼쪽)과 여운국 공수처 차장(오른쪽)

헤매는 공수처…'주임 검사' 여운국 역할 필요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이후 수사팀의 분위기에 대해 공수처는 "정상적으로 일 하겠다"는 말과 함께 " 전혀 영향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라며 영장 기각 여파에 따른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김진욱 처장의 수사지휘만큼이나 고발 사주 의혹 수사팀의 주임검사로 있는 '공수처 2인자' 여운국 차장검사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판사 출신인 여운국 차장은 이번 구속 영장심사 법정에 직접 출석해 손 검사 구속 수사 필요성을 피력했다. (물론, 공수처가 총력전에 나섰던 모양새에 비해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수사 내용과 절차를 놓고 잡음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분위기를 추스르고 수사를 이끌어 가는 데에는 수사팀 주임 검사가 제 역할을 해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과거 검찰의 경우 주요 피의자에 대한 영장 기각 이후, 일부 피의사실을 선택적으로 유출하는 일종의 '여론전'을 이용해 수사 흐름의 반전을 꾀하려는 시도도 없지 않았는데 이런 방식을 답습하는 것 말고 막힌 수사부터 뚫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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