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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오거돈 피해자에 선거 때 한 약속, 결국 안 지켰다

오거돈 피해자 인터뷰② : 선거 전 '2차 피해 방지' 약속, 선거 끝나자 감감무소식

*SBS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 강제추행 사건 피해자를 최초로 인터뷰해 8뉴스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피해자 또한 평범했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은 오 전 시장은 항소했고 법정 다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4·7 재보선을 전후로 정치권이 피해자에게 한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권력형 성범죄에 뒤따르는 2차 가해의 고리를 끊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도와야 한다는 취지에서 방송에서 채 다루지 못한 부분과 더 알려져야 할 사실을 여러 편에 걸쳐 전해드립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오거돈 전 부산시장 강제추행 사건 2차 가해 혐의자에 대한 심의 결과를 내놓았다. 2차 가해성 글을 올린 김두관 의원을 비롯, 변성완 전 부산시장 권한대행에 대한 징계를 윤리심판원에 청구하고 현재 당원이 아닌 3명에 대해 입당을 영구 불허하는 내용 등이다. 당 지도부의 결정만 기다리는 상황이다. 오 전 시장이 강제추행 사건으로 부산시장직에서 사퇴한 지 약 1년 6개월 만이다.
▶ 민주당, '오거돈 2차 가해' 김두관 의원 성인지 교육 권고 등 징계

사건 발생 1년 반 만에 갑자기 이런 조치가 나온 데는 사연이 있다. 오 전 시장 사퇴로 치러진 지난 4·7 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피해자 측에 관련 조치를 약속한 바 있다. 원래는 진즉 나왔어야 할 조치였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도부가 바뀌었고 조사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지난 몇 달의 과정은 민주당의, 나아가 정치권의 민낯과도 같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4·7 재보선 앞두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반성"…선거 끝나자 감감무소식


이야기는 4·7 재보선을 코앞에 둔 지난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당은 3월 17일 당시 김태년 당대표 권한대행 명의로 피해자에게 공문을 전달했다. 2월 말 피해자 측이 보궐선거와 관련, 2차 피해에 대한 해결 등 조치를 요구한 것에 대한 회신이었다.

이 공문에서 민주당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는데도 당의 조치가 너무 부족했다"며 사과했다. 이번 재보선이 어떤 배경으로 치러지는지 잘 알고 있다면서 '뼈아픈 심정',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선거에 임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2차 피해 발생에 사죄하고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 약속은 물론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 등 관련 기구 확대 재편, 공직선거 후보자 검증 기준 강화 등도 함께 약속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피해자에 전달된 공문

피해자는 당시 "두루뭉술한 답변이었지만 굉장히 감사했다"고 한다. 사건 이후 이렇게 성의 있는 답변과 약속을 받은 게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무렵 김영춘 당시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도 피해자를 찾아와 사죄의 뜻을 전했다. 피해자는 그런 김 후보를 보면서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위로를 전했다고 했다. 본인 잘못도 아닌데 고생하는 게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나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7 재보선이 끝나자 연락은 거짓말처럼 끊겼다. 당 지도부가 재보선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섰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피해자 측이 몇 차례 당 대표 비서실 등에 연락했지만 "확인해보겠다"거나 "담당자가 없다"는 무성의한 답변만 돌아왔다. 몇 차례 전화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진전은 없었다.
 

4달 지나서야 "인수인계 문제 있었다. 죄송하다"


기다림에 지친 피해자는 7월 13일, 공대위(피해자 공동대책위)를 통해 다시 민주당에 공문을 보냈다. 선거 전 했던 약속에 대해 묻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다음날 회신이 왔다.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그동안 조치가 없었음을 사실상 시인하고 있었다. 처음 피해자에게 공문을 보낸 지 약 4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귀 공대위에 2차 피해 조사를 약속해놓고 수개월이 지나도록 경과를 알려드리지 않은 점에 대해서 깊이 사과드립니다. (중략) 지속해서 경과를 문의하였는데 답변조차 제대로 드리지 않아 너무나도 답답하고 분노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대로 인수인계하고 신속하게 조치했어야 합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민주당 2차 공문 中


민주당은 또 1차 심의위원회를 열었다면서 그 결과를 회신에 첨부했는데, 대부분 이제 조사를 시작하겠다거나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등 부실한 내용이었다. 심지어 그 심의위조차 답을 보낸 바로 그날 (7월 14일) 개최한 것이었다. 유일한 조치는 사건 당시 피해자에 회유를 시도하거나 주변을 압박한 전 부산시 정무직 공무원 신 모 씨에 대한 복당 불허 조치였는데, 이 역시 당일 이뤄진 조치였다.

이틀 뒤인 7월 16일에는 민주당 젠더폭력 신고상담센터장을 맡고 있는 권인숙 의원이 피해자를 대리하는 부산 성폭력 상담소를 찾아왔다. 권 의원은 이 자리에서 "인수인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조사가 안 되고 있었다, 죄송하다."고 털어놨다. 3월 이후 넉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가 없었음을 시인한 셈이다.

이후에도 민주당의 조치는 지지부진했다. 권 의원은 지난 8월 피해자와 통화에서 2차 가해 혐의를 받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2차 가해 사실이 너무 명확하다"면서도 "당원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피해자 측에서 고발하는 게 어떠냐 제안을 드리려던 중"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는 당시 이 말을 듣고 "온몸에서 피가 모두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온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 그냥 가죽만 냉동창고에 걸려 있는 그런 느낌? 아, 애초에 그럴 거면 언론에 대고 말이라도 하지 말지. 자꾸 어떤 믿음을 가지고 호소하게 만들었잖아요."
- 피해자 인터뷰 中

그 사이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피해자에 한 차례 만남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피해자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3월에 한 약속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만나자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원하는 건 사과가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재보선 전에 대표 권한대행 명의의 약속을 받고 김영춘 후보도 만났는데 약속을 지키는 걸 못 봤다"고 말했다. 그러자 송 대표는 7월 29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일방적으로 "피해자가 원한다면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고 언론에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관련 조치는 없었다.

글 첫머리에 쓴, 민주당 차원의 '조치다운 조치'가 나온 건 지난 10월 14일이다. SBS가 오 전 시장 사건 피해자를 인터뷰하고 당의 공식 입장을 물은 지 이틀만이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 피해자는 "기분이 좋다기보다 씁쓸하고 허무하다"고 말했다. "7월에 받은 답변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구체적"이라면서 "이렇게 빨리 처리할 수 있었던 걸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말로 회피하고 정작 제 연락은 무시하면서 언론 앞에서만 책임을 다한 것처럼 연기하던 태도에 화가 나고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민주당의 오거돈 2차 피해 조치 관련 일지〉
- (2021년) 3월 17일 : 민주당, 피해자에 1차 공문 "2차 피해 사죄…진상조사·재발 방지 약속"
- 7월 13일 : 피해자 측, 3월 약속에 대한 답변 요구
- 7월 14일 : 민주당, 피해자에 2차 공문 발송, 2차 피해 관련 1차 심의위 개최 결과 통보
- 7월 16일 : 권인숙 민주당 젠더폭력 신고상담센터장 부산 방문 "인수인계 없었다"
- 8~9월 : 민주당 2차 심의위 개최
- 10월 12일 : SBS, 오거돈 피해자 관련 민주당 조치 등 공식 입장 질의
- 10월 14일 : 민주당, 3차 심의위 개최 결과 피해자에 통보

박원순·오거돈 사퇴 겪고도 개선 없는 민주당


민주당이 피해자 측에 보낸 3차 심의위 공문도 입수해 살펴봤다. 그 결과 7월 두 번째 회신에서 "2차 피해로 규정하기 어렵다"고 답했던 내용의 상당수가 10월 심의위에선 "2차 피해에 해당한다"고 바뀌었다. 김두관 의원의 SNS 글이나 변성완 전 부산시장 권한대행의 관련 조치 미흡 등에 대한 부분 등이다. 신 모 씨에 대한 복당 심의 절차도 미흡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7월까지 제대로 된 조사가 없었거나 진정성 있는 논의가 없었음을 사실상 자인한 셈이다.

책임자였던 권인숙 의원은 "그동안 계속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해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7월에 피해자 측이 서신을 보낸 다음날, 그리고 10월에 취재가 시작되자 그제야 심의위를 개최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원래 그때쯤 하려고 했었다"는 답을 내놓았다. 피해자의 2차 서신 발송 다음날인 7월 14일 신 모 씨에 대한 복당 불허 조치를 결정한 데 대해선 "마침 그날 복당 여부를 심사하는 당무위가 열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연의 일치'라는 설명이다.

권 의원은 또 "조사 과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는데 애초에 조사 자체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인 부분도 있다. 권 의원은 지난해 4월 22일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합의를 종용한 이 모 씨에 대해 "당원이 아니라 신원 파악이 어렵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취재 과정에서 기자가 이름과 지역(부산) 등 정보를 바탕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니 해당 인물로 추정되는 남성을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해당 남성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자세한 해명을 듣는 데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쯤 되면 조사 의지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권 의원은 "결과적으로 조사가 늦어진 점에 대해 피해자께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최근 몇 년 동안 광역지자체장 세 명이 성 비위 사태로 불명예 퇴진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중도하차로 치러진 지난 4·7재보궐선거에선 서울과 부산 두 곳만 해도 824억 원 넘는 혈세가 들었다. 민주당은 그때마다 뼈를 깎는 반성과 쇄신을 약속했다. 그러나 오거돈 사건 피해자의 사례에서만 보더라도 나아진 건 거의 없었다. 인수인계는 없었고 조사는 차일피일 늦어지거나 부실했다. 선거 전에 했던 약속이 선거 끝나면 허공으로 사라지는 클리셰는 이번에도 여전했다. 정치적 계산과 정무적 우선순위 속에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는 온데간데없었다.

국민의힘 공문

"총선 후 사퇴 합의" 미래통합당 고발로 지연된 수사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야당인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4·7 재보선을 앞둔 지난 3월 24일, 국민의힘은 피해자 측에 보낸 공문에서 당 소속 일부 의원들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사과하고 대책 마련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면서 제시한 게 일명 '오거돈 방지법'이라 이름 붙인 '권력형 성범죄 은폐방지 3법'이었다. "오거돈 사건 피해자가 조속히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끝까지 함께 하겠다"며 낸 법이었다.

그러나 법안은 발의만 됐을 뿐 아직 별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1월 28일 발의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상임위 소위에 올라갔고 6월 2일 발의된 「선출직 공무원 등의 성범죄조사위원회 설치에 관한 법률안」 제정안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여가위, 법사위 등 상임위에 회부만 되고 이렇다 할 논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당의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의석 수를 탓했지만 법안 통과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의문이다. 민주당으로서도 딱히 반대할 명분이 없는 법안 아니었나.

피해자에게 더 큰 2차 피해를 준 건 지난해 오 전 시장 사퇴 직후 이뤄진 미래통합당의 고발 조치였다. 당시 미래통합당은 곽상도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까지 구성해 부산시청 관계자들과 피해자 측 대리인들을 각각 공직선거법과 비밀 엄수 위반 혐의 등으로 형사고발했다. 피해자 측이 당시 피해 여성의 상담 내용을 부산시 정무라인에 알리고 부산시 관계자들은 4·15 21대 총선 전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합의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피해자와 피해자 주변 사람들은 당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고 회상했다. 정치적 중요도가 높은 공직선거법 관련 수사가 함께 굴러가면서 정작 본 건이라 할 수 있는 오 전 시장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선 수사가 지연됐고 재판도 그만큼 늦어졌다. 피해자 변호를 맡은 변영철 변호사는 "전체 수사를 10이라고 한다면 공직선거법 관련 수사의 비중이 7이었고 강제추행 수사는 3 정도였다"고 말했다. 피해자 역시 두 차례 검찰과 경찰에 불려 가 10시간 넘는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아야 했다. 피해자의 가까운 지인과 공대위 측 관계자들도 스마트폰 포렌식을 당하고 수사기관에 불려 가야 했다. 피해자는 당시 "내가 피해자인데, 왜 자꾸 나를 가지고 그러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공직선거법 관련 수사는 결국 무혐의로 결론 났다. 국민의힘 측은 관련 입장을 묻는 SBS 질의에 "다시 한 번 피해자가 받았을 불편과 고통에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답했다. 또 이른바 오거돈 방지법과 관련해 "당 중점법안으로 지정해 법안 통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오거돈

피해자 "그냥 내가 잘못했다고 하면 괜찮아질까 생각도"


피해자는 보지 않으려 해도 가끔 어쩔 수 없이 자신과 관련된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본다고 했다. 그때마다 "이쯤이면 됐지 도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걸 바라냐"는 댓글이 항상 달린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자기 존재가 민폐인 것 같고 "그냥 내가 잘못했다"고 하면 다 사그라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피해자에게 주어진 것은 없다. 1년 반 넘게 집으로도 직장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게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은 (오 전 시장을 제외하고) 버젓이 잘 살고 있었다. 오 전 시장 사퇴 전날 자신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도 무섭고 두려운데, 한쪽에선 "조사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알 수 없다고만 했다.

그가 2차 피해에 대한 조치를 요구한 건 '살기 위해서'였다. 이제 반성 없는 사과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했던 약속이라도 지키라는 게 피해자의 호소다. 잘못한 사람은 잘못한 만큼만 벌 받고, 자신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 ③편에서 

[취재파일] 오거돈 피해자의 고통은 진행 중이다 : 오거돈 피해자 인터뷰① - 부산시장 성추행 사퇴 사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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