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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값비싼 경차 캐스퍼의 인기 폭발에 숨은 함의

소득 3만 달러 시대의 소비 행태 인정해야

[깊은EYE] 값비싼 경차 캐스퍼의 인기 폭발에 숨은 함의
요즘 신차 출시에는 재미있는 패턴이 있다. 누군가 예상 가격을 올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 가격이면 쳐다도 안 보겠다는 반발이 빗발친다. 제조업체가 그런 반발을 반영해 가격을 예상보다 내려서 출시하는 게 소비자들의 상식인데 웬걸, 안 사도 된다는 듯 가장 비싼 예상 가격이 실제 가격이 된다.

상식은 뒤이어 다시 한 번 파괴된다. 비싼 가격을 보고 시쳇말로 소비가 '폭망'해야 마음이라도 후련할 텐데, 이런 기대와 달리 사전 예약 대수가 사상 최대라는 뉴스가 어김없이 흘러나온다.

이번에 나온 경차 캐스퍼도 그랬다. 현대차가 임금이 낮은 협력업체에서 위탁 생산했기에 기존 차들보다 훨씬 싸게 나올 거란 예상이 일관성 있게 빗나간 것이다. 그런데 사전 예약 첫날에만 1만 9천 대 가까이 예약돼 현대차 내연기관 역대 최다기록을 세웠다.

인터넷 댓글러들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그 가격이면 "쳐다도 안 본다."고 했던 인터넷 여론이 이번에도 무색해진 것이다.

캐스퍼 인기의 이유가 뭘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첫 번째는 디자인이다. 아무리 실용성과 가성비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보다는 고급스런 디자인과 톡톡 튀는 개성을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아진 것이다.

두 번째는 중대형 차에 들어가던 고급옵션을 대거 채용한 것이다. 캐스퍼에는 충돌 방지와 차로 유지, 스마트 크루즈 같은, 경차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을 선택해서 넣을 수 있다.

"경차에 그런 게 뭐가 필요하냐?"는 반문에 대한 대답은 엄청난 구매 대기자가 대신한다.

이 생각을 하던 중 언뜻 반대 측면에서 떠오른 게 주택 공급이다. 주택은 가격안정을 명분으로 주요 지역에서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고 있다. 가격거품과 건설업체들의 과도한 이익 챙기기를 억제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수요자의 주택 고급화 욕구를 막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받고 있다.

아파트

현 정부의 주거안정 핵심 정책인 임대주택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정부는 4년 전에 135만 가구였던 공공 임대주택이 올해 185만 가구가 되고, 전체 주택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OECD 국가 가운데 9위로 올라간다고 자랑한다.

이렇게 공공 임대주택이 많이 공급되면 극심한 전세난이 사라지고, 집값도 안정세를 보여야 할 텐데, 전셋값·집값은 급등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게다가 공공 임대주택 상당 부분은 비어 있고 특히 주거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소형일수록 그 상황이 심각하다.

왜 이럴까?

이쯤에서 우리 국민의 소비행태를 한 번 살펴봐야 한다. 흔히 소득 3만 달러는 소비패턴의 변곡점으로 불린다. 양적 소비에서 질적 소비로 넘어가는 길목이란 이야기다.

이 변곡점의 길목에는 실용성을 따지는 경차라고 해도 예쁜 디자인과 훌륭한 편의장치를 원하는 수요가 있고, 그냥 몸만 누이면 되는 임대주택이 아니라 잘 꾸며지고 자산증식 효과도 있는 좋은 내 집을 원하는 수요가 놓여 있다.

기본만 갖춘 양적 공급이 만족을 주던 삶에서 고품질 재화와 서비스를 누리고 싶어 하는 질적 향유의 삶으로 국민들의 소비패턴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생활필수품이든, 내구재의 대명사로 불리던 자동차든, 그보다는 다소 높은 공적 의미가 부여되는 주택이든, 이념적 색채가 너무 강한 정책이 관여하면 현실에서 괴리되는 재화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시장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외면하는 재화를 만들어 그것을 소비하길 강요하는 것은 기업에겐 몰락의 지름길에 들어서는 것이며, 국가 입장에서는 국민의 귀한 세금을 낭비하고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일이 된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 곧 4만 달러 시대가 다가온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바람직한 변화를 북돋울 현실성 있는 정책이 시장과 조화를 이룰 때의 이야기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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