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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인사이트] "화이자 · 모더나, 인류 목숨으로 도박"…전 CDC 국장이 분노한 이유

프리든 비판에 발끈한 불라 화이자 CEO…"우리만큼 한 기업 나와 보라 그래"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백신 기업들이 돈과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쥐었다는 데 미국 내에서도 별 이견이 없습니다. 특히 화이자 CEO 앨버트 불라는 거의 일국의 대통령급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 4월 일본의 스가 총리가 워싱턴에 왔을 때도 당시 담당 장관이었던 고노 다로를 만나주지 않아 스가 총리가 직접 전화해 화제가 됐었습니다. G7 회담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거의 국가 원수급으로 예우하며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그의 위상은 하늘을 찌르는 상황입니다. 우리도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뉴욕에 왔을 때 불라 CEO를 만난 바 있습니다.

코로나 백신 스타 제약사들은 CEO가 모두 이민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직접 만나봤던 모더나 CEO 스테판 방셀도 프랑스계였지만(모더나는 프랑스계가 주요 직책에 포진해 있습니다. 임원진 가운데도 불어로 된 성이 많습니다) 화이자 불라 CEO는 그리스계입니다. 수의사였던 그는 1993년 화이자의 그리스지부에 합류해서 밑바닥부터 다지고 올라가 유럽지부를 거쳐 2001년부터 뉴욕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화이자의 COO(Chief Operating Officer)까지 역임하고 CEO가 됐는데, 화이자 내부에 숟가락이 어디 있는지까지 훤히 꿰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부 사정에 밝은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화이자·모더나, 인류 목숨으로 도박

지난 달 26일, 불라 CEO가 ABC 방송의 조지 스테파노풀러스가 진행하는 '디스 위크(This Week)'에 출연했습니다(모더나 방셀은 언론 출연 빈도가 그리 많지 않은데, 화이자 불라는 CNBC 등에는 그래도 종종 나오는 편입니다). 여기서 화이자에 대한 비판에 불라가 발끈한 부분은 눈에 띄는 부분이었습니다. 진행자 스테파노풀러스는 인터뷰를 할 때 상대를 격동시키는 '기술'을 잘 넣는 영리한 앵커입니다. 얼마 전 바이든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하면서 아프간 철군 때 "나한테 아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다"고 고백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이 발언이 최근 청문회까지 계속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스테파노풀러스는 이 방송에 출연한 불라 CEO에게 톰 프리든 전 CDC 국장이 트위터에 올린 화이자, 모더나에 대한 비판을 들이밀며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습니다.

그 내용은 현재 모더나, 화이자가 만드는 생산량으로는 전 세계 백신 보급에 3년이 걸리는 상황인데, mRNA 기술 이전으로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 백신 회사들이 부자 나라에만 백신을 판매하는 데 집중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불라 CEO는 이 말을 듣고 "그의 발언은 불공평하다"고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불라는 "어떤 회사도 우리가 한 것만큼 인류를 위해 도움되는 일을 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이 원가에 백신을 공급해서 미국 정부가 전 세계에 백신 기부를 하고 있다면서, 이미 500만 회 백신이 저소득 국가에 분배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식재산권 면제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면서 지식재산권이 있었기 때문에 백신도 있고, 부스터샷이 있는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백신 제조사들이 기술 이전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지만, 백신 원가 공급 주장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자기들이 백신을 기부하는 게 아니었고 원가로 미국 정부에 주고 있다는 건데, 그건 백신을 판매하고 있다는 걸 좋게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백신 사업을 하는 사람이 원가로 주고 있다고 하면 그걸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술 이전을 주장하는 프리든 전 CDC 국장의 생각은 그동안 두 번이나 장시간 인터뷰하면서 어떤 맥락으로 한 건지 나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백신 업체들에 대해 미국 내에서 논의가 어디까지 진전된 건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했습니다.
 

발언 수위 높아진 프리든 "전쟁에서 폭리…인류 목숨으로 벌이는 도박"

지난 4월 처음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톰 프리든 전 CDC 국장은 한국을 백신 허브로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청와대에서 이 이슈를 한미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잡고 드라이브를 걸면서 국내에도 많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최근 워싱턴에 한국 정치인들과 관료들도 꽤 오는 편인데, 백신 이슈의 동향을 들어보기 위해 뉴욕에 있는 톰 프리든과 일정을 잡아 만나거나, 화상 회의를 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미국 전직 관료로 미국의 이해관계를 얘기하면서도, 팬데믹의 종식을 최우선 가치로 놓고 주장을 펼치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보건 분야에 있어서는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아 질문하기도 아주 편한 인물입니다(척하고 물어보면 척하고 알아듣는 느낌입니다). 프리든은 현재 Resolve to save lives라는 시민단체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블룸버그, 저커버그, 빌 게이츠 등이 슈퍼 부자들이 지원하는 곳이어서 그는 제약사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얘기도 용감하게 잘 합니다. 한국에서 온 한 정치인이 프리든을 만났다며 사석에서 말해줬는데, 그는 '우리 단체는 돈이 많아서 눈치 볼 거 없이 하고 싶은 얘기 그냥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화이자·모더나, 인류 목숨으로 도박

다섯 달 만에 다시 하는 인터뷰였는데, 프리든이 과거에 비해서 제약사들에 대해 각을 바짝 세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대단히 정제된 언어를 구사하면서 비판도 고급스러운 어휘로 에둘러서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트위터에는 제약사들이 '부끄럽다'고 썼지만, 직접 만나 속내를 물어보니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트위터에 전 세계 백신 보급이 3년 걸린다고 했는데 이게 얼마나 심각한 건지 물어봤습니다. 그는 내년쯤 백신 보급이 충분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신화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백신 생산량 자체는 늘어나겠지만, 델타 변이와 다른 변이 출현 가능성까지 감안한다면 지금 생산 속도는 수백만 명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도박이라고 날을 바짝 세워 비판했습니다. 그는 모더나와 화이자가 백신을 개발한 것에 대해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기술 이전을 통해 전 세계 생산량을 늘리는 데 협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화이자·모더나, 인류 목숨으로 도박
'화이자·모더나, 인류 목숨으로 도박

백신사들은 자신들의 생산 목표도 다 채우지 못했고, 다른 파트너들의 생산 목표도 다 채우지 못했다고 프리든 전 국장은 현황을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백신을 충분히 만들지 못해서 사람들이 죽어간다면, 기술을 이전해서 다른 제조사들이 백신을 만들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쟁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더나와 화이자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막대한 돈을 버는데 이용하고 있다고 날 선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두 회사는 내년까지 1천300억 달러, 우리 돈 154조 원을 벌어들일 예정인데도 저소득 국가에 공급한 백신은 화이자는 생산량의 1%, 모더나는 전혀 없다고 트위터에 현황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화이자·모더나, 인류 목숨으로 도박

그러면서 그동안 백신을 개발할 때 정부가 수많은 리서치를 하고 그걸 활용해 제약사들이 백신을 만들어도 정부가 소송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지 않냐고 반문했습니다. 정부 특허를 가지고 백신을 만들었다고 소송을 해버리면 백신사들은 파산을 해버릴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백신을 사서 배포하면서 의료진과 대중을 교육하기까지 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런 것을 해주는 대신 기업이 책임감 있게 행동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화이자와 모더나는 그동안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프리든 전 국장은 깊은 실망감을 표시했습니다.
 

심도 깊게 논의된 백신 생산 기술 이전 아이디어…화이자 · 모더나는 '감감 무소식'

그는 7개월 넘게 제약사들을 상대로 기술 이전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방식은 기술을 내놓으라는 식은 아닙니다. 어차피 백신 제약사들이 생산 능력이 안 돼서 만들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로열티를 받고 다른 백신 기업이 생산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입니다. 매출이 제로인 거보다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서 판매를 하면 그 자체로 제약사들도 돈을 벌수 있지 않냐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지금이 팬데믹이라는 특수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백신 생산 효율을 극대화시키며, 우리나라처럼 능력이 되는 특정 거점 국가를 활용해 생산을 빠르게 늘릴 수 있다는 게 그가 주장했던 백신 허브 국가였습니다.

뉴욕타임스에서 바이든 정부가 조인트 벤처를 구성해 거기에 화이자, 모더나의 기술을 넘기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참여를 설득하고 있지만 백신 기업들이 요지부동이라는 것입니다. 프리든에게 이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이 모델 말고도 실제 기술을 넘겨받아서 백신을 생산하게 하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백신 생산에 150~200가지 공정이 있다고 한다면 화이자, 모더나가 이 공정마다 품질 관리를 해주고 제대로 만드는지 확인해서 안정적인 품질의 백신이 나올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백신 업체들의 면허를 발급해 백신을 생산하면서 화이자, 모더나의 지식재산권은 철저히 보장하면서도 다른 생산업체들이 백신을 빨리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나중에 판매할 때는 시장이 겹치지 않게 서로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서로 시장 잠식을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 미국 내부에서도 기술 이전을 안전하게 하는 방식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던 건 분명해보였는데, 화이자, 모더나는 일말의 기술 유출 가능성까지 차단하기 위해 관련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걸로 이해됐습니다.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는 백신 제약사…백신 돈벌이의 한계는 어디?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미움 받는 인물'로 제약회사 튜링의 전 대표였던 마틴 쉬크랠리가 꼽힙니다. 그는 지난 2015년, 에이즈 치료제로 쓰이는 항생제 다라프림이 한 알에 13.5달러였는데, 이걸 느닷없이 750달러로 올려버렸습니다. 미국에서 비난 여론이 빗발치면서 의회 청문회까지 끌려나왔는데 거기서도 무성의한 태도로 답변을 거부하면서 국민 밉상이 됐습니다. 극도의 희소성을 가진 약제는 사실 부르는 게 값입니다. 제약 부문은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원칙대로 그냥 비싸다고 안 사면 그만 아니냐고 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코로나 백신은 인류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에 의존도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먹는 약이 머크에서 곧 나온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기는 하지만, 미국 전문가들은 백신이 근본 대안이고 먹는 약은 보조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성과를 이뤘다는 공로는 충분히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걸 부러워는 해도 비난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자본주의 원칙으로 돈을 짜내려는 태도를 좌시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전 세계 인류의 목숨이 사실상 화이자, 모더나의 의사 결정에 따라 바뀐다는 것은 국제 정세까지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내년이면 코로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서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화이자, 모더나 CEO 모두 말했지만 이 예상이 과연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소득 국가에서는 2024년까지 백신을 구경도 못하는 곳이 많을 텐데, 이들 국가에서 새로운 변이가 계속 출현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그때 가서 부스터샷 정도가 아니라 임상시험을 또 거친 완전히 새로워진 화이자 2.0, 모더나 2.0을 또 돈 주고 맞아야 하는 시기가 온다면 전 세계인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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