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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 전투기, 한국전쟁 때 북한 전투기로 위장…이유는?

지난 15일은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지 71년 되는 날입니다. 작전의 성공으로 유엔군과 국군은 서울을 수복하고 평양을 거쳐 압록강 인근 중국 국경에까지 다다릅니다. 하지만 1950년 10월 19일 중국군 병력 26만 명이 압록강을 건너 한국전쟁에 개입하면서 전세는 다시 역전되고 맙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국군의 정규군 병력이 6만 5천여 명,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유엔군 병력이 7만 5천여 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중국군이 참전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중국 공군이 한국전쟁 당시 자국의 표식이 아닌 북한군의 표식을 달고 참전한 사실이 처음 확인됐습니다. 전투기에 북한 표식을 달고 출격한 것인데, 그렇다고 북한 땅에서 이·착륙을 한 것도 아닙니다. 북한과 인접한 중국 단둥에서 뜨고 내렸습니다. 당시 중국군의 참전 사실을 전 세계가 알고 있었고, 중국 땅에서 이·착륙을 하면서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베이징대 역사학과 김동길 교수가 이끄는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가 이런 사실과 그 이유를 처음으로 밝혀냈습니다. 이번 연구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해외 한국학 중핵대학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 단둥 비행장에서 출격 대기 중인 중국 전투기들 (출처=중국 CCTV)

중국 전투기, 중국 표식 대신 북한 표식 달고 출격

연구팀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 전투기 사진 다수를 입수했습니다. 이 전투기들은 하나같이 파란색과 빨간색 동심원 안에 빨간색 별이 새겨진 표식을 달고 있습니다.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 사용되는 북한 공군기 표식입니다. 중국이 자체 제작한 기록을 보면, 전투기 중에서도 '미그-15기'를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의 주력 전투기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역시 북한군 표식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미그-15 전투기. '한국전쟁(항미원조)의 주력 전투기'로 묘사돼 있는데, 전투기 뒷부분과 날개에 북한군 표식이 새겨져 있다. (출처=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전투기(사진 위)와 1996년 이철수 대위가 몰고 귀순한 북한 미그-19 전투기(사진 아래). 표식이 동일하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북한은 야크 전투기와 IL폭격기 200여 대를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 공군과의 전력 차이가 워낙 컸기 때문에 전쟁 초반 제공권만큼은 유엔군이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전투기 지원이 절실한 상황. 북한이 소련과 중국에 공군 지원을 지속적으로 요청한 이유입니다. 전쟁 초기 참전하는 대신 중국에 전투기와 공군 훈련을 지원했던 소련도 인천상륙작전 이후인 1950년 11월 공군을 직접 참전시킵니다. 이때 소련 전투기도 북한군 표식을 달고 참전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러시아 국방부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옛 소련 전투기. 역시 북한군 표식을 달고 있다.

중국군이 보유하고 있던 전투기는 물론, 중국군이 소련에서 지원받은 전투기도 북한군 표식을 새겼습니다. 원래 중국 공군 표식은 숫자 8과 1이 한자로 새겨져 있습니다. 중국군 창군의 계기가 됐던 1927년 8월 1일 '난창 사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난창 사건은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의 반공 정책에 대항해 장시성 난창에서 일으킨 무장폭동을 말합니다. 이런 자신들의 표식이 있는데도 버젓이 북한 표식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중국 전투기 표식. 건군기념일을 상징하는 숫자 8과 1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중국, '인민지원군' 명칭 사용…"스스로 자원해 참전"

중국군의 공식 명칭은 '인민해방군'입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는 이 명칭 대신 '인민지원군'이란 명칭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지원'은 '돕다'는 의미의 '支援'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여 나선다는 의미의 '志愿'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자원(自願)'에 가깝습니다. 중국말로 '지원자(志愿者)'라고 하면 자원봉사자를 말하며, 중국 매체들은 인민지원군을 영문으로 'People's Volunteers'라고 표기합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볼런티어라는 뜻인데, '의용군'이란 말과 유사합니다. 다시 말해, '인민지원군'은 '북한을 돕기 위해 파견한 군대'라는 뜻이라기보다 '인민들이 스스로 자원해서 나선 군대'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정부가 공식 파견한 군대가 아니라는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이런 중국 정부의 태도는 당시 공식 자료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1951년 1월 24일자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는 당시 저우언라이(주은래) 외교부장이 한국전쟁에 관해 언급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당시는 중국군의 참전 이후 유엔군과 국군이 밀리면서 서울을 다시 내준 뒤 반격을 준비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저우언라이는 '모든 외국 군대가 한반도에서 철수하면 중국 정부는 인민지원군이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책임지고 설득하겠다'고 말합니다. 마치 인민지원군의 참전이 중국 정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뤄진 것이라는 뉘앙스입니다. 유체이탈 화법을 보는 것 같습니다.

1951년 1월 24일자 중국 인민일보 기사. 모든 외국 군대가 한반도에서 철수할 경우 '중국 정부는 인민지원군이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책임지고 설득하겠다'고 돼 있다.

"본토 확전 피하기 위한 위장술"…인천공항서도 '지원군' 호칭 사용

여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는 중국이 자국 전투기에 북한 표식을 단 이유를 '미국이나 유엔군과의 확전을 피하기 위한 위장술'로 봤습니다. 중국 전투기가 공개적으로 참전할 경우 한국전쟁이 중국 본토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또, 중국이 참전군의 성격을 자발적으로 참전한 '지원군', 즉 '의용군'으로 규정한 이상 중국군 표식을 달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으로 봤습니다. 탱크나 다른 무기는 전쟁 도중 노획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의용군이 전투기를 몰고 참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북한 전투기처럼 보이게 했다는 해석입니다. 연구팀은 이번에 밝혀진 내용을 세계 유수 학술잡지 '콜드워 히스토리'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중국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 현판.

중국은 아직까지도 한국전쟁 참전 군인을 '인민지원군'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2일 한국은 한국전쟁에서 숨진 중국군의 유해를 중국에 송환했습니다. 이번이 8번째 송환입니다. 중국은 인천공항에서 진행된 유해 인도식에서부터 중국 선양공항에서의 도착·환영 행사, 이튿날 안장 의식까지 이틀에 걸쳐 생중계했습니다. 전투기가 유해 수송기를 호위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일 인천공항에서 열린 제8차 중국군 유해 인도식.

중국이 자국민의 애국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무얼 하든 크게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까지 한국전쟁 참전 자국 군인을 '인민지원군'이라고 부르는 건 귀에 거슬렸습니다. 2일 인천공항에서 진행된 유해 인도식은 한·중 공동 사회로 진행됐는데, 중국 측 사회자는 이 자리에서 "지원군 열사들이여, 조국이 당신들을 집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겪은 나라, 중국과 적국으로 싸웠던 나라임에도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유해를 송환하는 것인데, 그 자리에서까지 '인민지원군'이라는 호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분명 상대국에 대한 배려가 없어 보였습니다.

▶ [단독] "중국 전투기, 북한 표식 달고 한국전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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