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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인사이트] "핵전쟁 안 해" 중국에 귀띔해준 밀리 장군…구원자인가 반역자인가

트럼프 말기 합참의장의 고뇌 담은 밥 우드워드의 신간 '위기(Peril)'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한 출입처를 오래 출입하는 전문기자들이 즐비한 미국에서도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는 발군의 취재력을 가진 독보적인 특종 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1943년생으로 클린턴부터 트럼프까지 현직 대통령을 모조리 인터뷰해서 책을 내놨습니다. 취재해서 만든 책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디테일이 생생해 읽다보면 소설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밥 우드워드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번에 밥 우드워드가 워싱턴포스트의 후배 기자 로버트 코스타와 함께 쓴 책 '위기(Peril)'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말 광기의 시대를 담고 있습니다. 트럼프 말기는 코로나 폭증에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으로 시작된 인종 차별 반대 시위까지 겹치면서 미국이 크게 휘청거렸던 시기입니다. 게다가 대선에 지고도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승리를 주장했던 트럼프는 당시 여차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 정도로 시한폭탄 같은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아직 책이 정식 출간되지 않아 전체 내용을 보지는 못했지만, 벌써부터 주요 내용이 미국 매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 언론들이 이 책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제목으로 잡은 내용은 밀리 합참의장이 트럼프가 핵전쟁을 벌일까 우려해 중국 합참의장에게 귀띔을 해줬다는 것이었습니다. 임기 말 대통령의 큰 헛발질을 걱정한 합참의장이 이런 일까지 했다는 취지인데, 당시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어서 기사로 주요 내용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
 

"우리는 중국을 공격하지 않는다"…밀리 합참의장이 건 전화

밥 우드워드는 밀리 합참의장이 2020년 10월 30일과 2021년 1월 8일 두 차례에 걸쳐 중국 리줘청 합참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기술했습니다. 첫 번째 통화는 대선 나흘 전 시점이고, 두 번째 통화는 의회 폭동이 발생하고 이틀이 지난 날이었습니다. 첫 통화를 했던 2020년 10월 30일에는 밀리 합참의장이 중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코로나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트럼프의 호전적인 언사가 극에 달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남중국해에서 항공모함이 깔리면서 긴장도 높아졌는데, 밀리는 리줘청에게 "미국이 공격하거나 적대적인 훈련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미리 언질을 줬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미국이 공격을 한다면 미리 알려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의회 폭동 이틀 지난 뒤에 한 통화에서는 밀리 합참의장은 "미국은 안정적인 상태로 모든 것이 문제없다"며 리줘청 합참의장을 안심시키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리줘청도 당시 격앙된 상태여서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밀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 상태가 온전치 않다고 의심하고 있었는데, 펠로시 하원의장이 전화해서 트럼프가 미쳤다고 펄펄 뛰었을 때,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합니다. 밥 우드워드는 이런 내용을 담은 녹취록까지 입수해 보도했습니다(이런 녹취록은 펠로시가 주는 것 외에는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텐데, 현직 의장에게 자료를 받고, 현직 대통령까지 인터뷰해 책으로 내왔던 밥 우드워드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밀리는 인도태평양사령부에 전화해서 중국을 자극하는 훈련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사령관이 그 지시를 따랐습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핵 발사 명령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밀리 합참의장 본인이 관여해야 한다는 걸 관련 장교들에게 주지시키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전례가 있기는 했는데, 슬레진저 전 국방장관은 닉슨 탄핵 과정에서 핵무기 사용을 할 때 자신과 합참의장의 의사도 체크해야 한다고 군에 지시했다고 합니다.

"밀리는 반역자…해고는 기본, 아예 처형해야" 들끓는 공화당

이 책의 예고 기사가 나가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충성파들이 밀리 합참의장을 험악하게 공격하는 있습니다. 트럼프 본인이 뉴스 맥스에 나와 "뉴스가 사실이라면 밀리는 반역자"라고 대놓고 공격했고,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밀리를 해고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강경 공화당원 가운데는 군사법정에 세우거나 처형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국방부 내부에서도 밀리의 처신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합참의장이 극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군 최고 수뇌부와 비선 채널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두 강대국 사이 우발적인 사고로 시작된 교전이 핵전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대장끼리 사전정지 작업을 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만약 두 강대국이 무력 충돌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트럼프는 대선 판을 흔들 수 있다면 전쟁도 불사할 분위기였습니다. 트럼프는 정교하게 판을 읽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가볍게 도발을 시작했다가 중국이 과잉대응하기라도 하면 전면전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예민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대통령도 모르게 적과 내통했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는 충분해 보입니다. 군 수뇌부가 적국에 전쟁 전에 사전통보를 한다는 건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비판에도, 혹은 처벌을 각오하고라도 밀리 합참의장은 불필요한 핵전쟁을 막기 위해 절박하게 행동을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오늘 밀리 합참의장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함으로써 당장 그의 거취 문제가 더 커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측불허 트럼프 때문에 북한과 핵전쟁이 벌어질지 몰라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도 워싱턴 대성당에 퇴근길에 들려 기도를 했다는 얘기도 밥 우드워드가 직전에 낸 '격노'에서 공개한 적 있습니다. 현대전을 가장 잘 수행하는 장군 가운데 한 명으로 표현되는 매티스까지도 트럼프를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대단히 불안한 사람으로 생각한 건 분명합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트럼프의 불안한 부상…재집권한다면 충성파 군인 대거 기용 가능성

준비 안 된 아프간 철군으로 바이든의 지지율이 빠지면서 트럼프가 언론에 등장하는 빈도가 확실히 늘었습니다. 직설적이고 황당한 발언을 워낙 잘해 화제성으로 보도했다가 결국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미국 언론들도 일방적인 확성기 역할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그 인내심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등장시키면 이목을 끌고 시청률이 오르는 트럼프의 치명적인 매력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9·11 때도 경찰관 등을 만나서 자기 장사를 하고, 권투 중계 해설을 한 트럼프는 기존 대통령들과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트럼프가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올 건 거의 확실한 상황입니다. 물론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이미 트럼프당이 된 공화당에서 다른 대항마조차 내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그가 만약 또 대통령이 된다면 1기 집권 시기 헌법에 충성하겠다며 자신에게 충성심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군인들은 절대로 요직에 앉히지 않을 건 분명합니다. 오로지 자신에게 충성심을 기준으로 측근들을 주요 군에도 쫙 깔고 국정을 운영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예측불허의 트럼프가 흥분할 때 그걸 가라앉히지 못하고 오히려 부추기는 예스맨들이 따라들어올 텐데 생각만 해도 오싹한 일입니다. 평화롭다 못해 심심한 바이든 정부를 몇 달 겪다보니, 워싱턴 일대 방화와 약탈을 목격하고, 전투 헬기가 날아다니는 야간 통금을 경험한 트럼프 시대 끝자락이 불과 일 년도 안 된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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