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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독일 통일의 최대 피해자는 동독 여성?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독일 통일 이전 서독은 아버지가 일을 하고 어머니가 집안을 돌보는 가정을 이상적으로 본 반면, 동독에서는 남녀 모두 직장을 가지고 여성들이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동독 정권은 일과 가정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중요 과제로 삼았고, 이를 위해 여성들이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탁아시설과 어린이집 등을 확충했습니다. 또, 아이를 출산하면 휴가를 길게 쓸 수 있게 했고,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한 휴가도 가능했습니다. 가사노동과 육아를 남성과 여성 간 분담이 아니라 국가와 여성 간 분담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동독 정권이 이런 정책을 실시한 것은 여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서라기보다는 사회주의 여성 해방의 이념 아래 여성의 노동력을 활용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출산율을 높여 인구를 증대시켜야 한다는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출산율을 높이는 중요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러한 결과, 일하는 어머니는 동독의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이 되었고 출산도 증가했습니다. 1989년 당시 동독 여성의 평균 결혼 연령은 22.9세(남성은 25.0세)였는데, 25세 여성 중 70%가 자녀를 두었고 30세 이상 여성 중 90%가 자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2명 이상 낳아 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동독에서는 여성들이 경제적 자립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이혼도 비교적 자유롭게 이뤄졌는데, 독신모로 아이를 키우거나 결혼하지 않고 남성과 동거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동독에서는 혼외출생자들도 법적 결혼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고, 아버지가 자녀 부양을 위해 재정적으로 기여해야 했습니다.
 
반면, 가정주부를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본 서독에서는 아이를 맡기기 위한 보육시설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하기 위해 아이를 맡기는 어머니들은 ‘까마귀 엄마’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안정식 취파용 / 베를린장벽붕괴
  

독일 통일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 

이 같은 상황에서 서독 체제 위주로 통일이 이뤄지면서 동독 여성들은 큰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직장을 잃고 육아에 대한 국가 지원이 축소되면서 동독 여성들은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국가가 운영했던 탁아소는 자본주의적 경영으로 바뀌면서 아이를 맡기는 비용이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탁아소 운영시간도 하루 12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동독 지역 전반에 실업자가 증가하는 속에 여성들이 우선 해고되면서 실업자의 70%가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여성들은 재취업 기회를 갖기도 어려웠습니다. 통일로 자유가 생기고 향유할 수 있는 물자도 늘어났지만, 일자리가 없어지고 아이를 맡길 곳도 없어졌을 뿐 아니라 국가 지원도 줄어들면서 동독 여성들은 경제적 자립과 자아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됐습니다. 독일 통일의 최대 피해자가 동독 여성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동독에 ‘독일민주여성동맹’이라는 여성단체가 있기는 했지만, 이는 당에서 결정한 정책을 지지하고 실시하는 단체에 불과했기 때문에 여성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동독 여성들은 급박하게 진행되는 통일 과정에서 자신들이 누리던 권리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안정식 취파용 / 평양거리
 

남북 통일 시 일과 가정의 양립, 그리고 저출산

남북 통일 과정에서 이와 관련해 생각해볼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남녀 평등과 여성의 자아 실현, 둘째 저출산 문제입니다. 저출산 문제는 여성 문제로 보기는 어렵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봐야 하지만, 여성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같이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출산과도 연계돼 있다고 본다면, 이 두 가지 문제는 서로 연관돼 있기도 합니다.
 
남녀 평등과 여성의 자아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성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성들이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사회적으로 남녀가 균등한 기회를 갖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육아 문제를 해결해줘야 합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여성의 경우, 아이를 맡길 곳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 과정이 진행되는 전환기에 국가가 우선적으로 보육시설 유지와 확충에 힘을 쏟아 보육 인프라가 유지되도록 해야 합니다. 보육시설과 보육교사 확충, 급식비 등 지원을 통해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길 수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생활 능력이 없는 부녀자에게도 단순히 생계 보조를 실시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직업 재교육을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 능력을 높이는 방안을 고안해야 합니다.
 
저출산 대책은 통일 초기부터 북한 지역에서 실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한처럼 사회구조와 인식이 바뀌게 되면 출산율 높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독일의 경우 서독으로의 흡수통일이 이뤄진 통일 초기 동독 지역의 출산율이 급감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동독의 사회구조가 서독처럼 빠르게 변화했다기보다는 동독 지역의 불안정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독 지역의 불안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완화되었지만, 동독의 사회구조와 인식이 점차 서독식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통일 이전 동독 여성들은 20세를 막 넘기면 첫 출산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통일 이후에는 서독 여성들처럼 30세에 이르러 첫 출산을 하는 것으로 출산 연령이 늦춰졌습니다. 또, 동독 여성들이 서독 여성들처럼 출산과 육아보다 직업활동과 경력 개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출산율이 저하되기도 했습니다. 통일 이전에 비해 아이를 맡길 곳이 줄어든 것도 출산율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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