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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테스형은 알까, 정치 · 종교 · 이념적 극단화의 종착지를

크고 은밀한 보상이 극단화 부추겨

철학자의 대명사인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이념 대립의 희생자다. 그는 대중 민주주의를 선동가의 궤변에 놀아날 수 있다는 이유로 불신했다. 고도의 판단력을 갖춘 소수의 지식인들에게 정치를 맡겨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당시 지배세력의 미움을 샀고, 결국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거행된 투표를 통해 죽음의 독배를 마셔야 했다.

정치 사상의 대립이 죽음을 부르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지금의 이념적 대립은 그때 못지않다. 정치든, 노조든, 종교든 극단적일수록 더 큰 세력과 힘을 형성하고, 그렇게 키운 압도적 힘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을 초토화시켜야 끝이 난다.

지금의 세계는 여론의 극단성이 어느 세기보다 심각하다. 그 가운데 특히 한국인의 이념적 극단성은 주요 40개국 가운데 4위에 오를 정도로 높다고 지난해 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양쪽으로 나뉜 국민의 극단성을 정치가 조율해야 할 테지만, 우리 정치는 오히려 일찌감치 국민 간의 갈등을 에너지로 삼고 있다.

강성 지지층의 비위에 맞추는 여론 영합꾼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정치에서 통합과 조율은 사라졌다. 당장 누구의 감성에 호소하고 어느 편에 이익이 되는가를 찾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극단성이 심한 한국인들은 세대, 성별, 계층, 지역 간에 더 깊은 갈등의 협곡으로 빠져들고 있다.

입법과 정책 결정에서는 합리성보다 여론 동향, 그 가운데 강성 지지층의 여론이 절대적 기준이 된다. 그 결과 온갖 과잉 입법과 시장 실패가 결과적으로 국민 생활을 피폐하게 만든다. 미래 비전을 보여야 할 대권 주자들 역시 여야를 막론하고 강성 지지층의 눈 밖에 날까 전전긍긍한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란 게 그나마 위안이다. 미국에서는 계층 및 인종 간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외교에서도 실리가 동맹에 우선함이 선포됐다. 통합과 동반 성장을 목적으로 했던 EU에서는 난민과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극우가 판치고, 중국은 국수주의를 한층 강화하며 주변국에 줄서기를 강요 중이다.

신에게 더 충성하기 위해 죽이고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탈레반 (사진=연합뉴스)

역사에서 강성 주기가 도래한 것인가. 사상도, 이념도, 종교도, 노조활동도 극단주의적 성향이 온 세계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극단성은 죽음도 불사하는 용기를 부여한다. 신에게 더 충성하기 위해 죽이고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탈레반을, 외세에 의존하던 온건한 정치집단이 이기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극단성이 힘을 얻는 이유는 은밀하면서 강한 보상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전사들에게 승전의 선물로 주기 위해, 점령지에서 미혼 여성 명단과 압류 자산을 분류하고 있다는 뉴스가 그런 것이다. 그 정도로 극단적이진 않지만 우리 사회 역시 모든 영역에서 강성 지지층이나 조직 내의 '찐강성'들이 보상을 독점하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 하나는 극단성으로부터 다수의 방관자가 얻는 이익 때문인 듯싶다. 때때로 강성 노조 지도부나 특정 이익집단의 요구가 상식과 합리성을 벗어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구성원들이 지도부의 결정을 따르는 것은 묵인에 따른 과실이 크기 때문이다. 마치 진상짓을 하는 손님을 방관하면서 그 가게에서 더 많은 서비스를 나오기를 짐짓 기대하는 고객들의 심리와 비슷하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반대편을 파멸시키는 극단성이 힘을 잃는 것은 언제일까. 아마도 조직, 기업, 국가의 지속성이 위협받는 때일 것이다. 비효율성과 대립 비용이 극에 달해 모두가 몰락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지하고서야, 비로소 극단적 대립을 멈추는 것이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테스형'을 부른 나훈아 씨의 작품 가운데, '공'이라는 가요가 있다. 그 가사를 보면, "잠시 머물다갈 세상…, 백 년도 힘든 것을 천 년을 살 것처럼…"이란 내용이 담겨있다.

역사는 항상 반복적으로 교훈을 남기는데, 그에 아랑곳없이 100년도 못사는 인간들은 여전히 1000년을 살 것처럼 갈등하고 싸우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2000년 전에 테스형은 과연 이런 한심한 인간사가 이처럼 질기게 반복될 걸 예상했을까.
 

(고철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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