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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도쿄의 '첫인상' 바뀌나…사라져가는 전철 잡지광고

'주간문춘', 전철 광고 중단 발표

[월드리포트] 도쿄의 '첫인상' 바뀌나…사라져가는 전철 잡지광고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한국에서 일본을 왕래하기가 쉽지 않지만, 예전에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일본에 와서 도쿄 등 대도시의 대표적인 대중교통인 전철을 이용해 보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일본에서 전철을 이용할 때 인상적인 첫인상 가운데 하나로 차내의 천장에 매달려 차량 진동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는 잡지 광고를 떠올리시는 분들도 꽤 계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전차나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의 중앙 통로 천장에 매단 광고를 '나카즈리(なかづり)' 광고라고 하는데요, 다양한 광고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이 바로 주간 잡지의 최신호 내용을 소개하는 광고입니다.

일본에서는 가장 유명한 주간 잡지 가운데 하나로 '주간문춘(週刊文春,슈칸분슌)'을 꼽습니다. 유명 출판사인 문예춘추(文藝春秋,분게이슌주)사가 매주 발행하는 주간문춘은 '신문 TV가 쓰지 않는 기사를 쓰는 주간지'라는 모토로 1959년 창간된 잡지입니다. 정치·경제 등 한 주간의 주요 이슈부터 연예계 소식, 스포츠까지 다양한 분야를 한 권에 담아내는 종합 주간지로 발행 부수가 52만 부에 달합니다(2021년 1~3월, 일본잡지협회 조사). 특히 주간문춘은 때때로 일본 사회를 뒤흔드는 엄청난 특종을 터트려 화제가 되곤 하는데요, 주간문춘의 이런 특종기사를 일본에서는 '문춘포(文春砲)'라고도 부릅니다. 출퇴근 시간 전철이나 지하철에서 천장에 매달린 주간문춘의 광고 내용을 훑어보며 '이번 주에는 어떤 특종이 터졌나'를 살피는 직장인의 모습은 일본에서는 일상적인 광경입니다.

주간문춘은 지금까지 이 '나카즈리' 광고를 도쿄메트로(지하철)의 5개 노선에 약 1천 7백 장, 오사카메트로에 약 천 5백 장씩 걸어 왔습니다. 광고 자체의 편집 방식도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돼 왔는데요, 세로쓰기의 경우 우측에서 좌측으로 읽는 일본 전통에 따라 우측에 주로 머릿기사가 되는 정치계의 비리나 인사 관련 기사로 시작해 글자가 점점 작아지면서 분야를 바꿔 갑니다. 가운데부터는 사건사고 등 사회성 있는 기사의 제목들이 배치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연예계의 가십성 기사나 스포츠계를 다룬 기사들의 제목이 나열됩니다. 주요 인사들의 얼굴만 오려낸 사진들, 특종이나 관심 기사인 경우 시선을 압도하는 커다란 글씨체도 주간문춘을 비롯한 일본 주간지 '나카즈리' 광고의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8월 19일 발매 예정인 주간문춘 최신호의 차내 광고 이미지 (출처 : 문예춘추사 온라인 홈페이지 bunshun.jp)
 
내일(18일) 배포되는 주간문춘 최신호(8월 26일호)의 '나카즈리' 광고입니다. 주간문춘의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번 살펴 볼까요. '스가 9월 6일 총리 해임'이라는 가장 오른쪽 제목이 일단 눈길을 끕니다. 그리고 해임이라는 단어 바로 왼쪽에 녹색 바탕으로 '요코하마 시장 선거, 패배로 인도'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아마도 스가 총리가 오는 22일 실시되는 요코하마 시장 선거에서 본인이 지지를 표명한 후보(오코노기 전 국가공안위원장)의 패배로 9월 초에 정치적 구심력을 잃을 거라는 내용으로 추정됩니다. 최신호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추정만 가능한 상황이죠. 그리고 이미지 하단 주간문춘이라는 제호 바로 왼쪽에는 '코로나 폭발, 철저 해명'이라는 붉은 글씨의 제목이 눈에 띄는데요, 최근 일본 내의 코로나 감염 폭발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른쪽에는 최근 이혼을 발표한 탤런트 시노하라 료코가 한류 아이돌과 불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는 제목이 보입니다. 기사 제목들만 봐도 주간문춘 최신호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대략 파악이 가능합니다. 제목에 관심이 갈수록 '한번 사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죠.

그런데 이 주간문춘이 전철과 지하철의 '나카즈리' 광고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위에 있는 8월 26일호 주간문춘 광고가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주간문춘 측은 전철 광고를 중단해 잡지 편집의 자유도를 높이고, 절약된 비용을 인터넷판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오늘(18일)자 아사히 신문이 전했습니다.

잡지 편집의 자유도를 높인다는 말은 일본에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인터넷 뉴스의 확산과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주간문춘은 매주 목요일에 가판대에 깔리는데요, 전날인 수요일에 잡지를 찍어야 하니 기사의 마감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화요일 밤이 됩니다. 기사는 적어도 화요일까지는 잡지에 반영되니 그렇다고 쳐도, 전철 광고는 잡지가 나오기 전에 미리 차내에 걸어야 의미가 있으니까 또 하루 전인 월요일에 마감을 해서 늦어도 화요일에는 찍어내야 합니다. 아주 급하고 큰 의미가 있는 속보나 엄청난 특종을 전철 광고에는 좀처럼 반영하기가 어려운 시스템이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급한 속보를 넣으려고 이미 광고로 나간 기사를 지면에서 빼게 되면, 미리 광고를 보고 잡지를 산 독자들의 불만이 들어올 수 있겠죠. 인터넷이라면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중요한 순서와 시간 순서를 적절히 선택해 기사를 배열하고 바로가기 배너 등을 통해 순차적으로 독자의 클릭을 유도할 수 있지만, 이미 찍혀 나온 잡지는 어찌할 수도 없으니 '편집의 자유권'을 위해 일단 전철 광고를 중단하겠다는 주간문춘 측의 설명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이미 찍어내 재편집도 불가능하고 독자 불만을 살 우려가 있는 전철 광고에 돈을 쓰느니 그만큼을 온라인 주간문춘으로 돌리겠다는 것이죠.

마침 주간문춘은 지난 3월부터 월정액으로 온라인 유료기사를 볼 수 있는 인터넷판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상황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는 이른바 '문춘포', 즉 특종기사의 '맛보기'를 무료로 인터넷에 공개한 뒤 뒷부분이 궁금한 사람들을 유료 결제로 유도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세력을 불리고 있습니다. 주간문춘은 다음달부터는 유료 인터넷판을 본격적으로 홍보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는데, 전철 광고 중단으로 남게 된 비용은 이쪽의 홍보에도 투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종합 주간지 업계에서 주간문춘을 바짝 뒤쫓고 있는 주간신조(週刊新潮,슈칸신쵸)도 마찬가지로 전철 광고를 조만간 중단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일본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주간지 광고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들 매체의 인터넷으로의 중심이동이 그동안 익숙했던 일본 도시의 풍경을 본격적으로 바꿔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도쿄 메트로 전차광고 판매 사이트(캡쳐)
 
마지막으로, 주간문춘이 절약하게 될 전철 내 '나카즈리' 광고비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져서, 도쿄메트로의 열차내 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업체의 홈페이지를 찾아봤습니다. 물론 홈페이지의 소개 내용은 일반적인 '적정 가격'으로, 광고주의 조건과 광고를 거는 노선에 따라 가격은 얼마간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단 공개된 정보로만 보면 도쿄 메트로의 긴자선, 도자이선, 지요다선, 난보쿠선과 사이타마 고속철도, 도요고속철도의 각 객차 1대에 1개씩, B3 사이즈 2개를 연결한 '와이드' 광고를 1주일간 거는 데 드는 비용은 기본 660만 엔, 우리 돈 약 7천만 원이네요. 주간문춘이 오사카 지하철에도 광고를 걸고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1주일 전철 광고비가 우리 돈 1억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니 적게 잡아도 한 달에 약 4억 원 이상을 절약하는 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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