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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베를린 필 수석이 연주한 '사랑의 불시착' 음악

클래식 명가 도이치그라모폰, 한국 드라마 사운드트랙 음반 발매

알브레드히트 마이어(베를린 필 수석), 리처드 용재 오닐, 필립 윤트 (오른쪽부터)

도이치그라모폰, 1898년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클래식 음반사입니다. '노란 딱지'로 유명한 도이치그라모폰은 카라얀, 번스타인 같은 거장의 음반을 발매하며, 정상의 클래식 레이블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현재 도이치그라모폰과 전속계약을 맺은 한국인 음악가로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소프라노 박혜상 등이 있습니다.
 

DG '한국 드라마 사운드트랙' 음반, 유명 음악가 총출동

그런데 이런 도이치그라모폰에서 한국 드라마 음악을 연주한 음반이 나왔습니다. 참여한 아티스트의 면면도 화려합니다. 도이치그라모폰 대표 아티스트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보에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 그리고 플루티스트 필립 윤트와 제임스 골웨이,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피아니스트 제바스티안 크나우어 등이 참여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다비트 필립 헤프티가 지휘하는 취리히 챔버 오케스트라. 편곡은 유럽의 유명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마르코 헤르텐슈타인이 맡았습니다. 또 그가 작곡한 '셰이드 오브 러브-블루와 레드, 2곡이 추가로 수록됐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낸 한국 드라마 사운드트랙 음반 'DG Shades of Love'

이 음반은 도이치그라모폰 독일 본사에서 발매됐습니다. 수묵화에 한국에서 탄생한 손가락 하트가 그려진 앨범 자켓은 한국적 느낌이 물씬한데요, 도이치그라모폰이 소속된 유니버설뮤직 한국 지사는 이 음반 제작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이례적인 이 음반 탄생의 주역은 스위스 출신의 플루티스트 필립 윤트입니다. 그는 한국 강남대학교의 바이마르 음악학부 프로그램 교수로 한국에서 12년동안 가르치며 연주 활동도 활발하게 했습니다.
 

앨범 탄생 주역, 스위스 플루티스트 필립 윤트

필립 윤트는 지금은 이 프로그램이 끝나 유럽으로 돌아갔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고, 이 음반은 그의 애정이 낳은 결실입니다. 독일에 있는 필립 윤트와 줌으로 화상 인터뷰를 했습니다.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 피아니스트 제바스티안 크나우어도 각자 있는 장소에서 줌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플루티스트 필립 윤트
"한국에 오면 시차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곤 했는데, 그 때 수많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봤어요. 그리고 드라마 음악에 빠졌죠. 공연 때마다 앙코르로 제가 편곡한 한국 드라마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좀 더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제 한국 매니지먼트사인 봄아트프로젝트에서 '그럼 드라마 음악만 갖고 콘서트를 한 번 해보자' 해서, 실제로 공연을 열기도 했어요. 이 프로젝트가 몇 년에 걸쳐 커졌고, 여기까지 왔네요." (필립 윤트)

편곡자인 마르코 헤르텐슈타인과 그는 앨범에 수록할 곡을 고르기 위해 몇 달 동안 2천 곡 이상을 들었고, 각자 고른 곡들을 180곡으로, 그리고 30곡으로 줄이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원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은 15곡이 앨범에 실렸습니다. 복잡한 저작권 관계를 모두 푸는 데에는 1년 반 정도 걸렸다 하네요. 편곡은 모차르트 곡의 오케스트라 편성에 약간의 퍼커션만 더해, 아주 클래식하게 했습니다. 최종 수록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01. Beautiful '도깨비'
02. 무이이야 '육룡이 나르샤'
03. 미스터 션샤인 주제가 '미스터 션샤인'
04. Always '태양의 후예'
05. 걱정말아요 그대 '응답하라 1988′
06. 그대라는 세상 '푸른 바다의 전설'
07. Stay With Me '도깨비'
08. Shades Of Love – Blue
09.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도깨비'
10. B Rosette '하얀 거탑'
11. 좋은 날 '미스터 션샤인'
12. 눈의 꽃 '미안하다, 사랑한다'
13. 무이이야(Rock Version) '육룡이 나르샤'
14. Shades Of Love – Red
15. Brain(Main Theme) '브레인'
16. 시간을 거슬러 '해를 품은 달'
17. 형을 위한 노래 '사랑의 불시착'

▶ 음반 소개 영상

알브레히트 마이어와 제바스티안 마이어는 한국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흥미로운 프로젝트라고 생각해 앨범에 참여하게 됐다며, 녹음 과정이 정말 즐거웠다고 회상했습니다.
 
"필립 안 지 몇 년 됐어요. 어느 날 그가 전화해서 '우리 한국 드라마 음악 프로젝트 하는데 같이 할래? 다니엘 호프, 제임스 골웨이 등등 좋은 사람들이랑 같이 할 거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장 '오케이, 음악 좀 보내봐' 했죠. 음악이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하게 됐죠. 저는 '형을 위한 노래'(사랑의 불시착 사운드트랙)를 특히 좋아하지만, 앨범 전체가 다 좋습니다. 사랑스럽고 잔잔하고 서정적인 음악들 사이에 아주 강렬하고 일렉트릭한 음악들도 나옵니다. 저는 이 앨범에 매료됐어요." (알브레히트 마이어)

▶ '형을 위한 노래'
 
"처음에 악보를 받았을 때는 제 파트만 있어서 어떨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스튜디오에서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음악이 바로 제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한국 드라마를 본 적은 없어요. 한국어도 잘 모르고. 하지만 음악은 국제적이잖아요. 번역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말합니다. 이 음악들은 즉각적으로 제 귀와 마음에 파고들었고,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제바스티안 크나우어)
(왼쪽부터) 리처드 용재 오닐, 다니엘 호프, 제바스티안 크나우어, 필립 윤트

'하얀 거탑'부터 '사랑의 불시착'까지

도이치그라모폰에서 한국 드라마 사운드트랙 음반이 나오기는 '당연히' 처음입니다. 클래식 음반사에서 드라마 음악이라니? '엄격한'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정작 참여한 연주자들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뮤지션으로서 모든 종류의 음악을 사랑합니다. 저는 하드코어 재즈, 팝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기도 했어요. 항상 새로운 걸 배우는 일은 흥미롭습니다. 독일인들은 30, 40년 전에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 엄격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클래식 음악은 아주 개방적이고 계속 변화하고 있어요. 독일인들이 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어요. '클래식 음악이냐 대중음악이냐, 이런 분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한테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좋은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한국 드라마 음악들은 정말 아름다웠어요."(알브레히트 마이어)

이 앨범에 등장한 한국 드라마는 비교적 오래된 '하얀 거탑'부터 최신작인 '사랑의 불시착'까지 아우릅니다. 필립 윤트는 이 중에서 특히 '응답하라 1988'에 삽입됐던 '걱정 말아요 그대'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또 사극인 '육룡이 나르샤'도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면서, 한국인의 문화가 어디에서 왔는지 사극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독일에서는 몇백 년 전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드는 경우가 별로 없다면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태앙의 후예' 삽입곡인 'Always'도 좋아한다면서, 이 드라마 촬영지인 그리스 자킨토스섬에 고등학교 다닐 때 여행 갔던 기억도 털어놨습니다. 이 드라마는 자킨토스섬의 난파선이 있는 나바지오 해변에서 많은 장면이 촬영됐는데, 필립 윤트는 드라마를 보면서 줄곧 자신의 추억을 떠올렸다고 하네요. 또 이 앨범에는 '도깨비' 사운드 트랙이 세 곡이나 실렸는데, 그는 '도깨비'가 요정이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같다며, 드라마도 좋지만 음악도 멋지다고 했습니다.

독일에서도 이 앨범에 대한 관심이 커서, 참여 음악가들이 현지 언론들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는데요. 어땠냐고 물으니 필립 윤트는 '젊은 언론인들이 이미 놀라울 정도로 한국 드라마와 음악, 한국 배우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더라'며,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 문화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전했습니다.

"이건 한국에 감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12년 동안 한국에서 너무나 좋은 경험이 많았어요. 그래서 뭔가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한국에선 대부분 음악가들이 거의 서양 음악만 연주하는데, 그걸 거꾸로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서양의 음악가들이 한국의 현대 드라마 음악을 연주하면서 한국 문화를 기리도록 하는 거죠."

도이치그라모폰 한국 드라마 사운드트랙 음반 녹음 현장

"진짜 노래 할 줄 아는 나라? 한국!"

필립 윤트는 자신이 느낀 한국 문화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감정이 풍부하고, 빠르게 변화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와 음악에도 풍부한 감정과 표현이 담겨있다고 했죠. 저는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현듯 얼마 전 논란이 됐던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의 발언—'한국인은 노래할 줄 모른다. 그들의 DNA에는 그게(노래가) 없다'고 했던—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핀커스 주커만의 이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또 비슷한 맥락에서 아시안 음악가들은 '지나치게 기교적(Too technical)'이라는 평가를 종종 받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핀커스 주커만은 나의 영웅이며 멋진 음악가입니다. 하지만 그가 '한국인들은 노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면, 한국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한국인 음악가들이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들은 모두 훌륭하게 노래합니다. 그러니 만약 '진짜 노래 할 줄 아는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그건 한국이라고 하겠어요. 제 한국인 제자들도 정말 훌륭하고 표현력이 뛰어나요." (알브레히트 마이어)

"전 한국에 있을 때 '노래에 대해서는 한국인한테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인들은 노래를 즐기고, 잘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항상 노래하죠. 물론 악기로도 노래하고요." (필립 윤트)

"독일 음악가들도 '지나치게 기교적'으로 연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시안 음악가 전체에 대해 일반화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바스티안 크나우어)

처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는 생각지 않았던 핀커스 주커만 발언 얘기까지 나오고, 화상 인터뷰는 약속했던 시간을 어느새 넘겼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요청했습니다.

"눈을 감고 그냥 음악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드라마에서 친숙했던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음악 뒤에 있는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모른다 해도, 좋은 음악이라면 그저 듣고 즐기세요. 그거면 됩니다." (제바스티안 크나우어)

"함께 연주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저도 앞으로 한국 드라마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알브레히트 마이어)

"유럽의 많은 학생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합니다. 케이팝, 한국 드라마, 한국 문화 때문이죠. K팝뿐 아니라 클래식도 마찬가지에요. 많은 한국 클래식 음악가들이 활약하고 있고, 저도 한국에 12년 동안 있었던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커다란 감사의 선물을 한국 분들에게 드릴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필립 윤트)

도이치그라모폰 한국 드라마 사운드트랙 음반 녹음 현장

K팝, 한국 드라마, 영화, 클래식…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 반영

이 음반은 독일에 이어 한국에서도 발매됐습니다. 한국판은 독일어와 영어로 된 앨범 속지에 한국어 번역본을 끼워 넣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인지를 붙인 것 외에는 독일판과 똑같습니다. 한국 사랑 지극한 음악가 필립 윤트의 추진력과 인맥이 큰 몫을 하긴 했지만, 도이치그라모폰 본사에서 선뜻 이 음반을 발매한 것은 의미가 큽니다. 그만큼 한국 시장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 시장에서 이 음반의 수요층이 꽤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내내 이들은 한국 드라마 사운드트랙을 'K팝'으로 지칭했습니다. 'K팝'은 보통은 한국 아이돌그룹의 음악을 일컫지만, 넓은 의미에서 한국 대중음악(Korean Popular Music)을 뜻하기도 해서, 한국 드라마 사운드트랙 역시 'K팝'으로 부른 거죠. 클래식 명가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나온 한국 드라마 사운드트랙 음반은 K팝과 한국 드라마 등 한국산 문화 콘텐츠의 전 세계적인 인기를 방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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