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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들은 소년을 키웠다' 그립소 [북적북적]

'이렇게 소들은 소년을 키웠다' 그립소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02 : '이렇게 소들은 소년을 키웠다' <그립소>
 
소의 등에 탄 것은 딱 한 번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줄곧 소의 등에 타고 오늘까지 살아온 기분이다. 소의 등에 탄 것은 한 번뿐이지만 나는 한 번도 그 등에서 내리지 않은 것 같다. 소가 나를 등에 태우고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교에 간 것 같다. 나를 태우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따듯한 등」中, 『그립소』

8월의 첫 날이자 첫 번째 일요일 '북적북적'에서 소개하는 책은 『그립소 (유병록 지음, 노석미 그림, 난다 출판사)』입니다. 부제는 '이렇게 소들은 소년을 키웠다', 표지엔 어미소와 송아지 그림이 있습니다. 네, 이 책은 소 이야기예요. 어미소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일하는 소로, 한 집안의 식구이자 소중한 재산으로 자라나고, 그 소들 덕분에 읍내로 서울로 공부하러 갈 수 있었던, 이제는 어른이 된 소년이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소년을 소를 키우고 소는 소년을 키웠습니다.

지금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고향에는 할머니와 부모님이 살고 있습니다. 소들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밥 때가 되어 소에게 여물을 주고 나서 물끄러미 바라보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소들은 그 깊고 순한 눈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그 눈동자에 얼핏 지금의 제 모습이 비치기도 하는데 오래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의 저도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이 책은 제 눈에 비친 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소의 눈에 비친 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문을 열다- 소년과 소」中, 『그립소』

소에 관한 에세이는 흔치 않습니다. 어떤 책의 한 두 편이 소 얘기일 수는 있어도, 이렇게 '이 책은 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라고 말하는 책을 읽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머리말만 읽고도 궁금해서 얼른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어집니다.

이 책을 쓴 유병록 시인은 1982년 충북 옥천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읍내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어요. 지금은 시인이자 편집자로 일하고 있고요. 쓴 책으로는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그리고 어린 아들을 먼저 보내고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써낸 산문집 『안간힘』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 『그립소』는 1부 '소와 함께 살았소', 2부 '소를 타고 왔소', 3부 '소가 그립소',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1,2,3부의 시작과 끝마다 저자의 시가 독자를 맞이하고 배웅해줍니다.

이 책은 소년의 눈에 비친 소, 소가 키운 소년의 이야기뿐 아니라 부모님의 이야기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농사일이 으레 그렇듯 소년의 부모님도 무척 바빴는데요. 소를 몰고 함께 일하러 나가도 막상 많은 말을 나누지는 못했던 아버지, 그리고 소는 물론이고 닭과 돼지와 길고양이 같은 동물부터 벼와 고추와 들깨와 콩과 파와 토마토를 기르고, 무엇보다 4남매를 기른, 책 속 표현처럼 '기르는 방면에서의 달인'인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새끼와 떨어지고 나면 어미소는 새끼를 생각하느라고 밥을 먹지 않고 소리를 지른다. 3일은 지른다.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 일기」中, 『그립소』

이 책의 뒷표지에는 바로 이 어머님의 글이 실려 있어요. 이름난 작가들이나 유명인의 추천사가 아닌 아들에게 보내는 담담하고도 애정이 가득한 어머니의 글이 그 어떤 추천사보다 독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요즘 우리가 마음의 유순함을 유지하기 참 쉽지 않죠. 길어지는 코로나 팬데믹을 비롯해 여러 상황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신비롭게도 이 책을 읽으며 저는 덩달아 소처럼 순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지식을 얻는다든지 타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든지 위로를 받는 경험은 종종 있지만, 순해지는 느낌은 드문 경험이었어요.

이 책의 에필로그인 제일 마지막 글 「소문을 닫다」에서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추억을 되새기고 어린 시절을 찬찬히 되짚어보는 수확을 얻은 반면, 자신의 글이 너무 사람 중심이 아닌가 걱정돼 됐다고 했습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일만 했던 소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우리는 모르니까요. '그래도 소에게 고마워하는 마음만은 진심이다'라고 하며, 저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살아오면서 소에게 많은 빚을 졌습니다.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소가 저를 태우고 여기에 왔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너무 서정적입니다. 저는 소의 피와 뼈를 밟고 여기에 왔습니다. 이것이 진실에 가깝습니다.

-「소에게 전하는 미안함」中, 『그립소』

소에 얽힌 똑같은 추억이 있는 독자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도 누군가의 등에 타고, 지금 있는– 서로 다르지만- 이 곳까지 왔습니다. 소는 아니어도 모두들 '내 마음 속 소' 같은 같은 존재는 있게 마련이지요.

오늘 팟캐스트에서는 『그립소』 중에서 두 편을 맛보기로 읽어드립니다. 오늘 읽어드리지 못한 부분은 책으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삼복 더위의 한가운데인 이번 주는 특히나 더욱더 할머니가 부쳐주시는 부채처럼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 같은 책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더운 여름 시원한 곳에서 옥수수를 먹으며 이 책을 읽다 보면, 소의 해 신축년의 이 여름도 잘 통과해 갈 수 있겠지요.

*낭독을 허락해주신 유병록 작가님과 난다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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