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라이프] 길, 책을 만나다 ③ '인생이란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바로 그것' - 해남 달마고도

-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 / 셰릴 스트라이드, <와일드>

해남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거리도 거리지만 그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 것, 그 자체부터가 먼 여정이었다.

아득히 먼 곳,
그곳


언젠가 한 번쯤 그 길을 걷고 싶었다.

이름만 들어도 아득히 먼 느낌의 땅끝마을이 있는 그 곳. 가고자 하지만 더 나아갈 수 없는 육지의 끝자락에 서서 누군가 마지막이라는 이름을 붙들고 마냥 눈물짓고 있을 것만 같은, 그래서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느껴질 것만도 같은 그곳으로, 왠지 가고 싶었다. 그리고 끝이면서 새로운 시작이기도 한 그 칼날 같은 경계를 딛고 땅이 바다로 이어지고, 바다가 땅으로 이어지는 그 순간을 누리며 걷고도 싶었다.

전남 해남의 '달마고도'가 그 길이다.

해남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거리도 거리지만 그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 것, 그 자체부터가 먼 여정이었다. 한반도의 끝이라는 땅끝의 상징성은 가고자하는 마음을 자꾸만 붙들었던 것이다. 길을 걷고, 그 고을을 느끼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곁눈질이라도 할라치면 하루 이틀로는 엄두조차 나질 않으니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길을 걷고자 한다면 그 길 위에 서는 것 말고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인가. 그러니 어쩌랴. 그 길이 땅 끝에 있으니 땅끝으로 가는 수밖에... 벼르고 별러 결국, 그곳엘 갔다. 아니 꼭 가봐야 할 것 같은 질긴 그리움이 느껴졌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을 연인이라 여기며 제 혼자 그리워하며 잠 못 이루듯 참으로 별난 호기심이면서 그리움이었다. 가는 날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달마고도 2
미황사와 대웅보전 현판. 미황사의 대웅전은 다른 절집에서는 흔한 단청마저도 벗어버린 채 그저 수수한 모습이다.

미황사
산 아래 절집


그렇게 닿은 미황사(美黃寺).

한반도의 끝이자 소백산맥의 기맥이 흐르다 멎은 마지막 돌산인 달마산(達摩山) 자락 아래에 미황사가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구례 지리산부터 곡성, 화순, 영암, 강진, 해남까지 남도 오백리 역사숲길로 이어진 맨 마지막 자락이다. 신라 시절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싣고 온 돌배가 갈두항(땅끝항)에 닿았으니, 돌배에 실린 경전과 불상을 지고 가던 소가 누운 자리, 그 자리에 들어선 절이 미황사다.

미황사의 너른 대웅보전 뜰에 서면 갈기를 잔뜩 세운 수십 마리의 말들이 질주를 하듯 달마산의 웅장한 봉우리가 신장(神將)처럼 미황사를 호위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간간이 오가는 관광객들의 작은 기척조차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절은 깊은 고요 속에 엎디어 있었다.

미황사의 대웅전은 다른 절집에서는 흔한 단청마저도 벗어버린 채 그저 수수한 모습이다. 색으로 드러내지 않으니 세월의 더께가 앉은 나무 원래의 색이 되려 잔잔하면서도 깊다. '원래 그러한 것'은 원래 그 자체로도 훌륭했음이라. 어쩌면 드러내고자 했던 수많은 작위(作爲)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음보다도 못할 때가 많음을 알려주고 있는 중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인지 절집의 처마 끝을 맴돌다 산에서 내려온 바람에 꼬여 바다로 떠나는 풍경소리마저도 은은하고 깊은 무채색이다.

풍경소리를 따라가다 깨닫는 바다는 아득한 적요(寂寥)의 공간.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사이로 침묵의 강이 흐른다. 새삼 미황사는 눈앞에 바다를 펼쳐놓았고, 달마산으로 오르던 바람이 쉬었다 가는 곳임을 깨닫는다. 오래 전 매월당 김시습이 일출은 낙산사, 일몰은 미황사가 최고라 했다더니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으로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이라는 이름의 달마고도는 달마산 일원에 조성한 17.8km의 둘레길이다.

태고의 땅으로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求道)의 길


절문을 나와 오른편으로 꺾으면 달마고도의 들머리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으로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이라는 이름의 달마고도는 달마산 일원에 조성한 17.8km의 둘레길로, 2017년 11월에 개통했으니 어쩌면 젊은 길이다. 미황사에서 출발하는 달마고도는 큰바람재, 노시랑골, 몰고리재로 이어지며, 떠난 그 자리,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원점 회귀 코스다.

그런데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이란 소개 글이 의미심장하다. 그 자리에 늘 존재하지만 단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는 것이라 여겨지는 낮달. 그 보이지 않는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이라니... 그 의미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하지만 낮달이나 도(道)나 보이지 않는 것은 매 한가지이니, 그 이름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걷다보면 그 뜻하는 바를 다는 알지 못할 지라도 들어가는 문고리 정도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래 정말 귀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했으니, 눈은 감고 대신 마음의 문은 활짝 열고 걷다보면 무언가 마음의 그물에 파닥이며 걸려드는 게 있기는 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고, 다행히 일면식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마저도 행운일 것이다. 아마도 달마고도가 길을 걷는 이에게 권하는 가르침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달마고도는 다른 둘레길과 달리 중장비나 기계가 아닌, 호미와 삽, 괭이와 지게를 이용한 순수 인력으로만 시공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벼랑의 길마저도 그 흔한 데크(목제 길)가 없다. 밧줄과 난간도 없다. 그저 돌을 쌓아 경계석을 쌓고 길을 이었을 뿐이다. 해마다 쌓이는 낙엽이 스며들고 그 길을 걷는 발아래 편안함이 있도록 자연 속의 흙과 돌을 그대로 고집하였다는 설명이다. 그런 이유로 길은 방금 도배를 끝낸 신방처럼 단출하면서도 단정하다. '산을 정복하기보단 산과 함께하며 바다, 섬, 마을을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는 길을 낸 것"이라는 달마고도의 제안자이자 현장감독이면서 인부였던 금강 스님의 설명은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길의 초입은 그저 푸르름만이 흔들리며 손짓하는 숲길이다.

숲과 숨,
길과 걷기


길의 초입은 그저 푸르름만이 흔들리며 손짓하는 숲길이다.

동백나무와 굴참나무, 시누대가 자라는 숲을 지나면 편백나무가 제 몸의 향기를 길 위로 쏟고, 그 너머에서는 소나무가 넌지시 몸을 드러낸다. 길가 가장자리에는 저 있음을 알아봐주지 않는 행인의 무심함이 서러울 법도 하지만 꽃들은 수줍은 듯 살포시 고개 숙인 채로 싱긋이 웃는다. 그 꽃은 알까. 제 웃음 한 줌에 누군가는 마음 한 자락이 내려앉다는 것을...

비탈을 깎고 다듬은 길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단정하다.

길의 연륜은 오래지 않으나 마치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새 길이지만 새 길 같지 않은 오래된 길만이 품고 있을 법한 깊이와 푸근함이 있다. 비록 새로 난 길이라 하지만 그 옛날 스님들이 대흥사와 미황사를 오가던 옛길(1, 4코스)을 다듬어 연장한 길이라니 그 깊이야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그리고 괭이와 호미라는 세심한 장비와 길을 아는 이의 섬세한 노고까지 녹아있지 않은가.

길을 걸으며 역시나 이곳이 남도였음을 절로 깨닫는다. 지난 계절에 떨어져 길가에 누운 동백이 아직도 제 붉음을 어쩌지 못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꽃들이 휘황한 그 때에 오지 못했음이 새삼 아쉬워진다. 하지만 동백나무의 질기고 둥근 푸르름은 꽃 피는 계절에 다시 오마는 약속을 기어이 받아내겠다는 양 한참이나 따라나서며 걷는 이를 보챈다. 동백이야 남도의 숲길에는 지천이니 말이다.

철 지난 동백이 아직도 붉다.

숲을 걷다보면 걸음마저 느려지게 하는 깊은 숨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 숨은 살아내기 위해 몰아쉬는 숨이 아닌, 눈을 감게 하고 저 먼 곳에서부터 천천히 다가와 안기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음미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대상을 천천히 느끼고, 또 누리는 완상(玩賞)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것은 숲을 가득히 채운 생명들을 깨닫는 것이면서, 그 생명들의 숨을 내가 들이켜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숨은 생명의 움직임이었고, 때론 향기였다.

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구나.
네 숨을 마시며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

어디 향기뿐이랴. 숲에는, 또 길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무시로 아는 체를 한다. 이른 여름날이면 수줍게 피어나는 붓꽃이며 엉겅퀴, 구절초, 개망초, 나리꽃은 저 있다고 하염없이 손을 흔들고, 산새들은 파닥이며 찌르르 노래하고 떠들썩하니 장단을 맞춘다. 다만 아직도 짝을 찾지 못한 산비둘기만이 저만치서 홀로 구구구~ 애처롭게 운다.

걷다보면 숲의 모든 것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가 또 어디론가 제 갈 길을 간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을 따라 그들이 왔다가 간다. 발바닥을 통해 건너온 땅의 기운마저도 허벅지를 지나 가슴으로 와 담기다가, 이내 사라져 간다.

마치 산사태가 난 듯 산의 경사면이 온통 바위투성이다. 너덜겅이다.
'천천히, 기쁘게, 편안하게 걷는 발걸음'으로 길을 누려보라는 금강스님의 안부이자 인사다.

천천히, 기쁘게,
편안하게 걷는 발걸음


길을 가다 만나는 팻말 하나.

'천천히, 기쁘게, 편안하게 걷는 발걸음'으로 길을 누려보라는 금강스님의 안부이자 인사다. 한편으론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당부이기도 하다. 서두른다고 17.8km에 이르는 이 길을 금방이야 걸을 수 있겠는가. 그저 서두르지도 말고, 욕심내지도 말고, 길과 내 발걸음의 보조만 맞추면 충분할 것이다. 가다보면 그곳이 어디든 내가 가고자 했던 그곳은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숲길의 아늑함에 지쳐갈 무렵 갑자기 시야가 열리고, 마치 산사태가 난 듯 산의 경사면이 온통 바위투성이다. 너덜겅이다.

너덜겅은 오랜 세월 동안 산을 이루는 규암 덩어리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다 부서져 산의 사면을 따라 흐르다 멎은 돌무더기를 말한다. 그런데 그 규모가 놀랍다. 길이는 수백 미터에, 폭은 수십 미터에 이른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돌무더기를 헤치고 길을 냈다는 사실이다. 중장비가 들어올 수 없는 지형이니 당연히 사람의 손으로만 이 집채만 한 바위를 깨고 다듬었을 것인데, 길을 낸 그들의 노고가 얼마였을지 짐작조차 쉽지 않다. 하물며 달마고도에는 이러한 너덜겅이 20여 곳이나 된다 하질 않던가.

길을 내고 다듬는 일 자체가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여정'은 아니었을지... 산꼭대기를 떠난 바위들이 흐르다 멎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그래서 결국 제가 멈춘 자리를 보금자리로 삼고 누워 있는 그들의 땅에, 사람들은 수행을 하듯 기어이 오솔길 하나를 낸 것이다.

멀리 해남의 벌판과 바다가 보이고, 다른 육지의 끝을 다리(완도대교)가 안간힘을 쓰며 붙들고 서 있다.

너덜겅의 길 위에 서서 남해의 바다를 바라본다.

멀리 해남의 벌판과 바다가 보이고, 그 바다 위로 섬인지 육지인지 구분조차 어려운 다른 육지의 끝을 다리(완도대교)가 안간힘을 쓰며 붙들고 서 있다. 산에서 바위들이 수억 년의 시간과 다투며 깨지고 부서지는 동안 산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바다와 흙과 씨름하며 그들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산다는 건 어쩌면 모진 일이었을 것이다. 그 무언가를 극복하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극복하여야 할 대상은 주어진 환경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자기 자신일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알을 깨고, 세계를 무너뜨리면서 산도, 바위도, 사람도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영화 <와일드><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의 포스터" data-captionyn="Y" id="i201573862"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10723/201573862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v_height="2000" v_width="1349">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


길을 걷는 한 여자가 있었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느꼈던 순간, 매일매일 깊은 우물 바닥에 쳐박혀 머리 위의 하늘만 바라보고만 있는 것만 같았던 그때, 스스로가 감당하지 못해 망가져 버린 자신의 삶을 일으켜 세우고픈 한 여자가 있었다. 그 방법은 감당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며 길을 걷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일이 이전과 달라지기를 바랐다. 내게 부족한 것은 황무지였고 나는 내 자신의 길을 저 숲 속 너머에서 찾아야 했다." -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Wild)>

그녀는 셰릴 스트레이드. 19살에 결혼을 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었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의 마지막 후원자였던 엄마가 암 투병 끝에 죽자, 그녀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이혼을 하고 마약에 빠졌으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원하는 누구와도 섹스를 하는 방탕한 생활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절망이 삶을 망가뜨려 버린 것이다.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가슴에 구멍이 뚫린 여자'로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무려 4년하고도 7개월. 아직도 20대 중반의 나이일 뿐인데... 더 이상 자신의 삶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다 서러워서, 울었다. 엄마가 죽고 난 뒤 내 스스로를 망쳐버린 이 더러운 시궁창이 싫어서, 어느새 내 자신의 모습이 되어버린 이 바보 같은 몰골이 싫어서 울었다. 나는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으로 살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Wild)>

그러던 차에 거리의 가판대에서 발견한 PCT(Pacific Crest Trail) 안내 책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눈 덮인 거대한 바위산들과 호수, 그리고 그 사이로 이어지는 길, 그래! 이 길을 걷자.

책 <와일드><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의 표지" data-captionyn="Y" id="i201573863"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10723/201573863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v_height="2329" v_width="1651">
PCT를 걸어야 한다는 그녀 안의 목소리는 할 수 있는 일이서가 아니라, 스스로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숙명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 변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 나은 모습이 아니라, 단지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강한 의지와 책임감, 맑은 눈을 가진 사람, 의욕이 넘치며 상식을 거스르지 않는 그냥 보통의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그녀가 걸어야 할 PCT는 캘리포니아의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아홉 개의 산맥과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과 황무지를 건너야 하는 약 4,300km의 대장정. 그녀는 자신의 키보다도 더 큰 배낭을 메고 그 끝이 언제일지도 모를 황야의 길로 떠났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밝은 세상이 있을 거라 믿으며... 그렇게 한 걸음을, 내딛었다.
"괜찮아, 나는 안전해. 강하고 용감하지. 어떤 것도 날 무너뜨릴 순 없어.(......)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만들어낼 뿐이야. 반면에 의지는 또 다른 의지를 낳는 법이지." -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Wild)>

그녀의 여정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로 흘러가는 길 위에서 헤매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 스스로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 길 위에서 걸어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했다. 길의 끝에 서면 자신도 변해있을 거라 믿으며....

보행자의 열반은 걸으며 깨닫는 무아의 상태가 아닐까.

길 위에서 깨닫는
보행자의 열반(涅槃)


길을 걷는 이에게는 '보행자의 열반(涅槃)'이라는 말이 있다.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가 열반의 의미다. 그러니 보행자의 열반은 걸으며 깨닫는 무아의 상태가 아닐까 싶다.

<나는 걷는다>라는 도보여행기를 쓴 베르나르 올리비에에 의하면, 보행자의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한다. 첫째로는 '완벽한 고독'이다. 이는 구름 속으로 날아오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조건이다. 그 다음은 '무한한 공간'이다. 고요 속에서 침잠하며 걸을 수 있는 드넓은 공간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육체와 정신 사이의 완벽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 조건들이 갖춰졌을 때, 걷는 이의 순수한 정신은 광야와 초원, 혹은 산꼭대기 위로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아직 보행자의 열반을 알지 못한다. 다만 비슷한 경험은 있다. 무량한 길을 홀로 걷다보면 걷고 있으되 걸음을 알지 못하고,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황망한 순간과 맞닥뜨리는 그 때가 있다. 그 순간, 내가 보이고, 가슴이 저리면서 아프고, 한편으론 슬프면서 기분 좋은, 그러다 마음이 맑아지는, 짧지만 명징한 그 순간 말이다. 내가 나이어도 충분한, 아니 어쩌면 내가 나이어서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임을 깨닫는 그 순간. 이만 하면 그래도 잘 살았다는 위로는, 아마도 덤이었을 것이다.

달마고도는 보행자의 열반을 경험하자면 경험할 수도 있는 길이다. 창검 같은 바위가 늘어선 달마산의 암릉은 오금이 저려오지만, 산의 중턱으로 이어지는 달마고도는 순하디 순하기 때문이다. 길은 더없이 고요하고,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배여 있는 길이라 단정하고 또 무난하다. 그렇다고 빼어난 풍경이 있어 풍경에만 눈이 팔리는 길도 아니고, 오르내림이 있지만 그마저도 순한 탓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찬찬히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달마고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알고, 또 수용하고, 그래서 그 앎이 가슴을 쿵 무너뜨리는 건, 결국 걷는 이 자신만의 몫일 것이다.

3구간은 달마산 중턱으로 나 있는데 맨 서쪽 도솔봉 아래까지 이어진다.

1, 2구간의 분기점인 큰바람재에 닿자 제 이름값을 하는지 바람이 제법 거세다. 이제부터는 무시로 나타나는 바다와 동행하는 길이다. 섬들이 들어앉은 바다는 초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그저 한가롭다. 멀리 땅끝마을과 진도 앞바다가 보인다. 좌측 끝에는 뛰어들고 싶도록 아름다운 섬과 바다, 해남 북평면과 완도를 잇는 완도대교가 이룬 풍경이 가슴을 활짝 트이게 한다.

산과 바다의 경계는 벼랑길이다. 암석이 많은 산허리를 따라가며 길을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계곡 지형을 따라 성을 쌓은 듯이 보일 터이다. 길의 도반은 처음부터 그랬던 양 오직 새소리와 바람소리뿐이다. 3구간은 바위가 많은 험한 길을 엿가락처럼 길고 부드럽게 만들었다. 노시랑골옛길, 웃골재, 편백조림지, 웃골, 도시랑골까지 감춰져 있던 골짜기와 연결되는 5.6km 거리다. 3구간은 달마산 중턱으로 나 있는데 맨 서쪽 도솔봉 아래까지 이어진다. 중간에 너덜지대가 있고, 완도와 해남 사이에 있는 바다가 발아래로 펼쳐져 있다.

가파른 벼랑 위에 조그만 암자 하나가 둥지를 틀고 있다. 그 위치가 절묘하고 한편으론 가혹하다.

도솔암,
절절함과 비장함으로 도(道)를 구하다


편안한 길도, 간간이 나타나던 섬들이 빠져있는 바다도, 암릉들의 질주에 가슴 떨려하던 기억도 반복되는 모습에 조금은 심드렁할 즈음, 길은 또 다른 선택지를 강요한다.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산으로 갈 것인가? 산 위에 도솔암이 있다는 것이다. 도솔암 300m.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호기심은 때때로 궤도를 벗어나게 하는 법이지 않은가.

300m라는 짧다면 짧은 물리적 거리 개념은 거친 오르막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무용했다. 산에서의 거리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느끼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다로 갔던 바람이 제법 아우성까지 내지르며 땀이나마 닦아준다는 사실이다. 휴식 참에 산중턱에서 맞는 바람이 달다. 헉헉대던 숨소리도 이제야 정신을 차렸음인지 제법 누그러진다. 삼나무숲을 흔드는 거친 손길을 느끼며 마지막 힘을 짜낸다.

이유야 무엇이든 도솔암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구도를 향한 인간의 절절함과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가파른 벼랑 위에 조그만 암자 하나가 둥지를 틀고 있다. 그 위치가 절묘하고 한편으론 가혹하다. 무슨 염원이 있어 이 벼랑의 끝에 머물 생각을 했더란 말인가. 이유야 무엇이든 도솔암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구도를 향한 인간의 절절함과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무릇 도(道)를 구하는 일이란 외로움과 인내의 싸움이라 했었다. 소유를 향한 집착과 삶의 편리를 내려놓으며 진리와 깨달음에 주린 절절함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사로운 관계와 공명, 그리고 배부름에서 멀어지고자 이 거친 바위, 이 좁은 틈으로 들어와 홀로 스스로를 담금질했으리라.

자유는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나아가 얽매이지 않은 육신과 정신이 깨달음을 얻을 때 그는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세상 밖으로, 경계의 끝으로 나아가 홀로 존재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도솔암은 그 도구였음이 분명하다.

땅 끝 위 하늘 끝 아래에 자리 잡은 도솔암은 그저 고고하다. 그리고 소박하다. 새삼 세상을 등지고 기어오르듯 이 돌산 틈으로, 바로 저 자리에 들어앉아 미륵의 세계를 꿈꾸었을 그 옛날의 그가 그리워진다. 게다가 그 돌 틈 사이에 나무 하나 심어 암자에 그늘을 드리운 안목은 또 얼마나 시적인가. 시공을 떠나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비장함뿐만 아니라, 높은 곳에서 세상을 아우르며 나비인 양, 또 바람인 양 천지간을 훨훨 날아다녔을 그의 자유가 부러워지기도 한다.

달마고도 15
달마산(489m)은 소백산맥이 한반도 서남쪽의 해남 두륜산을 거쳐 최남단 땅끝을 향해 뻗어 내려가다 바다로 사그라지기 전 마지막 용트림으로 치솟은 긴 암릉의 바위산이다.

아! 달마산
잘못된 만남(?)


산을 넘어가기로 작정을 하고 올라온 도솔암이라 응당 산을 넘어가려 했다. 그러니 처음의 의도대로였다면 도솔암 바로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그대로 내려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 길이 왠지 어색해서, 그리고 몇몇의 등산객이 횡으로 뻗은 어떤 길로 가는 모습을 보고는, 그 길로 따라나섰다. 길은 평탄했지만 머지않아 그 길이 내리막으로 이어져 결국은 달마고도와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한 시간여를 걸어도 앞서가던 사람은 고사하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내리막조차 감감무소식이다. 아니 나올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돌아보니 벌써 도솔암은 까마득한데, 어쩐다? 떠오른 생각+결심은 '모르면 직진!' 이란다. 그래서 직진했다. 그런데 그 직진은 달마산의 거친 암릉의 능선을 타고 넘는 것이었으니 그저 안타까울 수밖에... 달마고도를 걸으며 저 까마득한 산은 차마 넘볼 수조차 없으리라 했던 그 산을 타고 넘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만 것이다.

달마산(489m)은 소백산맥이 한반도 서남쪽의 해남 두륜산을 거쳐 최남단 땅끝을 향해 뻗어 내려가다 바다로 사그라지기 전 마지막 용트림으로 치솟은 긴 암릉의 바위산이다. 그 봉우리만도 일만 개에 달한다는 달마산의 능선은 봉화대가 있는 달마산 정상인 불썬봉(*'불을 썼던(켰던) 봉우리'라는 의미)을 거쳐 도슬봉(421m)에 이르기까지 약 8km에 걸쳐 그 기세를 전혀 사그라뜨리지 않으며 나아간다. 그런데, 그 중간에 내가 끼이고만 것이다. 이런 황당함이라니... 원래 보기 좋은 산이 그 산에서 길을 재촉하는 이에게는 고난 그 자체라 했으니 어쩌랴! 갈 길이 그저 까마득하기만 하다.

이유야 어쨌든, 설사 나의 처지가 성난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라 해도 호랑이가 맹렬히 질주하듯 남해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암릉의 파노라마는 그야말로 멋졌다. 그리고 아득히 펼쳐지는 다도해의 아기자기함은 또 어떤가. 달마산이야말로 '남도의 소금강'이라더니 빈 말이 아니었으니, 역시나 높은 곳에 오르면 풍경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진퇴양난의 처지를 즐기기로 한다. 어쩌면 길도, 산도, 다 경험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산 아래에서 바라보던 그 멋진 산에 지금 내가 올라와있으니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고려 때의 어느 시인은 달마산을 일컬어 '서정이 넘실대는 반도의 종점'이라 했으니, 그 서정이야 천천히 누리면 족할 것이다.

달마고도 16
전망이 좋은, 그래서 남해의 다도해가 푸르게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막상 능선을 따라 걸으니 걸을 만하다. 이런저런 꽃들이 피어 있고 길도 푸근하다. 그렇게 즐기며 걷다가 어느 봉우리에 닿았다. 그 이름도 복스러운 '떡봉'이다. 달마산 정상인 불썬봉까진 2.5km 정도가 남은 거리다. 그런데, 이제껏 온 길은 길도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눈앞에 펼쳐진 달마산 암릉의 기세가 그야말로 예사롭지가 않은 까닭이다. 눈으로 보는 모습은 장관이었으나, 지나가야 할 길로써는 천길 낭떠러지나 진배없었기 때문이다.

가는 길이 고단하다면 잠시 쉬어가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전망이 좋은, 그래서 남해의 다도해가 푸르게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내려갈 일이야 그마저도 가다보면 어떻게 되지 않겠는가. 어쩌면 내 살아온 날들이 그러했거늘, 딱히 걱정한다고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저 지금을 즐기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닿은 지금이라는 내 삶, 그렇게 중년이라는 나이조차도 지금처럼 길을 걸으며 세상을, 또 나를, 웅얼웅얼 독백하듯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향해 소리칠 일조차 없는 삶이고 보면 그저 이름 모를 어느 길 위에서 멍든 발가락 부여잡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갈 수만 있다면, 중년의 나이쯤이야 우스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걸어가는 여정 속에 피안(彼岸)도 정토(淨土)도 있지 않겠는가. 아니 어쩌면 지금 여기, 바로 이 자리가 피안이고 정토일지도 모를 일이다. 산은, 바다는, 섬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눈을 들어 바라본 북쪽으로는 남도의 명산 두륜산(701m)이 위풍당당한 자태로 서있고, 동쪽으로는 그 옛날 장보고의 꿈이 서린 완도섬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달마산의 바위 암릉이 도솔봉(421m)을 지나 멀리 땅끝까지 내달리고, 서쪽 해남반도 해안 너머에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진도가 육지처럼 버티고 서있다. 그 섬의 가운데에 첨찰산(485m)이 있다.

지나온 길이야 아득하지만 나름 뿌듯함도 생기기 마련이다.

자신을 잃어버린 후에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PCT를 걸은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셰릴은 네 개의 발톱을 길 위에 던져주었다. 사막을 지나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3천 미터가 넘는 고봉을 오르기 위한 통과의례이자, 당연한 비용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녀를 길 위에 있게 한 과거의 모든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도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이고, 그녀 스스로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발톱을 뽑으며 나는 PCT와 내가 대결 중임을 깨달았다. 발톱 네 개를 뽑아버렸으니 이제 점수는 6대4. 간신히 내가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래, 온 세상에서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은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도 뭐, 괜찮아." -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Wild)>

그녀에게 PCT를 걷는 일이란 '스웨터를 짰다 풀었다를 끝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을 때, 결국 다 잃게 되는 그런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혼자서 걷는 것뿐. 올라가면 내려가야 했고, 다시 올라가야 하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그저 전진하는 것 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힘들다고 느껴지는 그때에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해지고, 궁금증은 결국 나를 찾아 떠나는 길로 나서게 한다.

그렇게 길을 나선 지 93일째 되던 날. 그녀는 목적지인 캐나다 국경 근처 '신들의 다리'에 도착한다. 그녀가 지금껏 살아온 어리석은 인생이 목구멍을 통해 터져 나오는 벅찬 감동과 함께 말이다. '슬픔의 황야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린 후에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었다'는 그녀의 고백은 그래서 아프다. 그녀는 비로소 보통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진심으로 엄마가 원하던 그녀의 모습, 그 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녀는 신들의 다리 위에 서서 시(詩) 한 구절을 읊조린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바로 그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의 시, <공통된 언어의 꿈>

삶의 어느 순간, 스스로 가장 힘들다고 느껴지는 그때에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해지고, 궁금증은 결국 나를 찾아 떠나는 길로 나서게 한다. 그렇게 누군가는 슬픈 방황의 시간을 지나, 어느 길 위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과 조우하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이 끝난 것만 같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은 결코 꺼지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삶은 그렇게 힘듦 속에서도 그 빛을 발견하고 깨닫는 과정일는지도 모른다.

일찍이 니체는 '중력을 견뎌내는 정신은 많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며, 이 정신의 강함은 가장 무거운 짐을 갈망한다.'고 하질 않았던가. 결국 중력을 견뎌내는 정신은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아주 무거운 짐이 실려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 무게를 견디며 일어설 때 낙타는 사막마저도 두렵지가 않게 되는 것이다. 셰릴이 그랬다. 그래서 '낯선 곳을 향해 떠나지 않는 한, 그 꿈의 조각은 결코 찾아질 리 없다.'는 레비 스트로스의 말은 언제나 옳다.

낯선 곳을 향해 떠나지 않는 한, 그 꿈의 조각은 결코 찾아질 리 없다.

길을
걷는다는 것


길을 걷는다는 건, 특히 홀로 걷는다는 것은, 부유하듯 스스로를 길 위에 던져놓고 걸어가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과도 만나게 된다. 홀로 걷는다는 것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자신과 나누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아니라, 온몸을 던져 넣은 걸음걸음이 경험으로 쌓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 발, 두 팔, 아니 온몸을 버둥거리며 나아간 결과는 달마산의 정상에 두 발로 서는 것이다. 산의 정상에 올라 산 아래의 세상을 굽어본다. 긴 길의 끝이면서 또 다시 시작되는 어느 지점. 바로 그곳을... 이 길을 걸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길 위에서 우리는 지친 삶을 위로받거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할 수도 있으리라.

<와일드>의 그녀인 셰릴이 그랬듯 길이 꼭 고행의 이유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 새로운 전환을 요구할 때 길은 좋은 도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종점이 가까워지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마무리의 아쉬움에 눈물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달마고도에서의 내 마무리는 쌍화차였다. 다시 미황사에 들러 산사의 향기 좋은 차를 마시기로 한 것이다. 차를 달여 주시는 보살님께서 잔이 그득하도록 차를 마련해 주신다. 그런데 아뿔싸! 칠칠치 못한 내가 차를 조금 쏟고 말았으니 나보다 보살님께서 더 황망해 하신다. 보살님의 넉넉한 마음씨가 차라리 미안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곱고 고맙다.

'제가 너무 가득 담았지요.'

길을 걷다가 종점이 가까워지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마무리의 아쉬움에 눈물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달마고도 여정>

** 미황사 ~ 너덜지대 ~ 큰바람재 ~ 문수암 터 ~ 노지랑골 ~ 편백나무숲 ~ 몰고리재 ~ 부도전 ~ 미황사 <17.8km, 약 6시간 30분 소요>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